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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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63: 루돌프 슈나켄부르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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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20 ㅣ No.423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3) 루돌프 슈나켄부르크 (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믿음 키우는 데 일조



슈나켄부르크는 은퇴 후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갔는데 1961년 「신약성경의 교회」란 책을 펴냈으며, 1985년과 1987년에는 사목적 성경 해석에 적합하다고 평가받는 에히터 비벨(Echter Bibel) 주석서 「마태오 복음」을 출간했다. 1990년에는 「예수의 길」(Der Jesusweg)과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파견하시다」(Gott hat seinen Sohn gesandt)를, 1995년에는 「예수와의 친교」(Freundschaft mit Jesus), 1998년에는 「네 복음서를 통해 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Die person Jesu Christi im Spiegel der vier Evangelien)을 출간했다.


전임 교황의 저서 중에서

특히 슈나켄부르크의 마지막 작품은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저서 「나자렛 예수」에서 교황이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가는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와 그리스도인 신앙에 대한 갈등이 함께 녹아든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임 교황의 책을 조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슈나켄부르크는 이 책의 의도를 ‘오늘날 학술적인 연구로 불안을 느끼는’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을 구원자와 세상의 구세주로 확고하게 믿을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고 했다(「네 복음서~」, 6쪽). 그리고 이 책의 끝에서 평생의 연구 실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나자렛 예수의 역사적 모습을 학술적인 노력으로, 역사비평적 방법들을 이용하여 신빙성 있게 보여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그 목표에 도달하기에 부족하다’(같은 책, 348쪽). 또한 ‘전승의 여러 층을 가려내고 거기서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을 얻어내기 위한 학술적인 노력은 전승사와 편집사를 둘러싼 문제로 늘 논란을 계속하는 상황으로 끌어들여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같은 책, 349쪽).

그러나 그 역시 예수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 방법론을 따르다 보니 다소 일관성이 없다.

슈나켄부르크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예수상은 여러 전승이 단계적으로 겹쳐져 이루어진 것이기에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진정한’ 예수는 그저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복음서는 역사적 기초를 전제하고는 있지만, 믿음의 관점에서 이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그는 술회한다(같은 책, 353쪽).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역사적 기초’라는 것이 도대체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지만 슈나켄부르크는 가장 결정적인 것을 지적하고 이는 역사적으로도 확실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의 하느님과의 관계성과 하느님과의 연대성이다(같은 책 353쪽).

하느님 속에 닻을 내리지 않고서는 예수라는 인물은 그저 희미한 그림자와 같고 비현실적이며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인물로 남아 있을 뿐이다(같은 책, 354쪽).

이것은 또한 이 책을 꾸려나가는 데 구심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예수를 어디까지나 아버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시는 분으로 바라본다. 친교는 그분 인품의 근원적인 핵심이다. 이 친교가 없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고 또 이 친교가 바탕이 되어 그분은 오늘도 우리에게 현존하신다”(「나자렛 예수」 1권, 10~11쪽).

자신의 저서뿐 아니라 슈나켄부르크의 큰 업적 중에 하나는 편집인으로서 활동하면서 남긴 책들이다. 가장 중요한 발자취는 무엇보다 가톨릭-개신교 주석서와 독일에서 출간되는 성경연구 잡지인 「비블리쉐 차이트슈리프트」(Biblische Zeitschrift)의 편집인 활동이다. 또 사회주의 정권의 억압으로 1938년 발행이 중단됐던 이 잡지를 1957년에 부활시키는 주역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삶을 살았던 학자

슈나켄부르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단순한 삶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는 은퇴 후에도 뷔르츠부르그 시내의 작은 집에서 삼촌과 함께 살았다. 그의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 근처 양로원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시작으로 밤늦게까지 연구하는 것이 전부였다. 알프스 지역으로 휴가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항상 자신의 집에서 연구하고 집필했다. 유일한 취미가 있었다면 사제였던 형과 만나 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제자들과도 두터운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제자 중에 특별히 어려운 나라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는 은퇴 후에도 그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마치며

슈나켄부르크는 교회가 내적, 외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는 교회 내의 커다란 사건들을 두루 거친 시기에 활동했던 성서학자였다. 하지만 바티칸 공의회는 그에게 썩 좋은 기억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슈나켄부르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릴 때 공의회에 참여하는 독일 신학자들 가운데 성서학자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에 몹시 화를 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가톨릭 성서학계 역시 혼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롭게 등장한 역사적 연구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 슈나켄부르크는 역사적 연구와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던 신학자였다. 그의 모든 연구가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의 저술들을 통해 드러나는 주장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성경연구는 무엇이 맞고 틀리고를 따지는 분야가 아니다. 연구를 통해 얻어진 다양한 결과들을 통해, 그리고 학자들의 열띤 논쟁과 토론을 통해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고, 그 메시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슈나켄부르크에게 성경은 학문의 대상이기 전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담고 있는 문헌이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함으로써 현재에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학자들의 모든 연구와 노고는 시간적으로 제약을 받기에 항상 ‘선행된 연구’이지 ‘마지막 결과’는 아니었다. 그의 글들에선 사제이면서 신학자로서 겪어야 했던 갈등과 함께 과거의 연구 결과들을 통해 새로운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잘 드러난다.

이러한 슈나켄부르크의 바람은 자신의 마지막 책에서 이렇게 표현된다. “오랜 세월 연구하고 사색하는 가운데 태어난 이 저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근본 문제들을 새롭게 고찰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과학적 탐구와 비판적 토론의 영향으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혼미해져 가고 있다. 그들이 구세주요 세상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키는 데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네 복음서~」, 7~8쪽).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은 그의 연구들은 ‘전통적 참고서’가 됐을 만큼 그 사이 많은 다양한 새로운 연구들이 진행됐다. 비록 학문적 글들이기에 누구나 쉽게 읽기엔 지루하고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슈나켄부르크의 책들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의 책들 중 일부만이 우리말로 번역됐다는 사실이다.

[평화신문, 2014년 10월 19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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