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2016-04-14.....부활 제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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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4-14 ㅣ No.2033

 

부활 제3주간 목요일

사도 8,26-40               요한 6,44-51

2016. 4.14. 이태원

주제 : 세례를 받은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

우리 신앙에서 세례는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여깁니다. 저도 사제로 살면서 그렇게 말을 합니다. 하지만 앞에 나서서 주도적으로 말하는 사람의 뜻이 아니라, 그 말을 듣는 사람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하고 질문하면, 그들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말할 가능성은 낮아집니다. 이유가 분명히 있기는 하겠지만, 그 이유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당장 밥이 생기거나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세상의 벼슬이 갑자기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 내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세례를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곤합니다. 이러하다면, 세례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독서의 말씀에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쉽게 세례의 조건을 채우고 그것을 인정하는 필리포스사도를 만났습니다. 그 간단한 얘기를 들으면서, 지금 세상에서는 세례를 받으려면 6개월이나 8개월 혹은 다양한 기간의 준비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하는데, 참 쉽게도 세례를 주네...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육기간이 길다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지만, 세례는 짧은 기간만 준비해도 충분하다며 그저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세례는 그저 통과의례가 아니라, 그 세례를 대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드러내야 할 삶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그저 물을 붓고 몇 마디 말로써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는 삶의 자세를 달리 드러내겠다는 사람에게 주는 상징이고 표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세례를 받는 순간에는 그러한 약속을 했는데, 살다보니 이러저러한 일이 생겨서 그 일에 충실하지 못하게 됐을 때는 세례를 준 사람에게 책임이 있을까요,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책임이 있을까요? 세례는 그저 외부로 드러나는 형식이라고 그 가치를 낮추어도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 세례를 대하는 사람이 드러내야 하는 자세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이사야예언서를 읽고 있던, 짧은 기간에 세례를 받은 에티오피아여왕의 내시를 부러워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삶의 변화는 세례를 받았다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의 삶을 통해서 드러내는 자세로 완성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삶의 결과로서 하느님의 축복에 참여하는 것도 그저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례의 중요함을 깨닫고 그 모습대로 산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준비해주시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도 그저 예수님의 몸을 먹었기에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는 음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예수님의 몸을 우리는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참된 길을 가는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이겠는지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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