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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64: 노르베르트 로핑크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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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25 ㅣ No.424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4) 노르베르트 로핑크 (상)

성경 말씀과의 직접적 만남 강조한 ‘구약학의 거목’



노르베르트 로핑크(Norbert Lohfink, 86)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밝혀 놓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국내에 알려져 있는 ‘로핑크’는 대개 구약학자 노르베르트 로핑크의 동생인 신약학자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라는 점이다.

이들 형제 중 더 많은 저서를 쓴 것은 형인 노르베르트 로핑크이다. 로마 성서대학 도서관에서 검색해 보면 형 노르베르트 로핑크의 저서가 151건, 동생 게르하르트 로핑크의 저서가 25건 정도 검색된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1954년부터 2008년까지 노르베르트 로핑크의 저서 목록만 80쪽에 이르고 그 분야도 지극히 다양하다. 하지만 국내엔 동생 게르하르트 로핑크의 저서가 더 많이 소개됐다. 그 가운데에서도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는 성서학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노르베르트 로핑크의 책은 단행본으로는 E. 쳉어와 공저인 작은 책 하나만 번역돼 있고 그 밖에 짧은 글들 두어 편이 소개된 것이 전부다. 그만큼 노르베르트 로핑크는 국내엔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50년간 끊임없이 왕성한 활동을 해 온 구약학의 거목이다.


신명기 연구에 바친 생

노르베르트 로핑크는 192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1947년 예수회원이 됐고, 1956년 사제품을 받았다. 뮌헨에서 철학을, 프랑크푸르트에서 신학을 공부한 다음 1962년 로마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박사 논문을 발표한 시기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던 때랑 맞물려서, 그의 논문 발표에 저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후 그는 1962년부터 1996년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장크트 게오르겐(Sankt Gerogen) 신학교 교수로 있었고, 로마 성서대학에서 한 학기씩 강의하기도 했다. 일찍 은퇴한 그는 지금까지 게오르크 브라울리크(Georg Braulik)와 함께 방대한 신명기 주석서를 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지난해 7월 85세 생일을 맞은 로핑크 자신도, 생전에 이 일을 끝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작한 지 10년도 넘었는데 이제 2장까지 쓴 모양이다. 어깨도 아프고 귀도 어두워졌을 텐데 당연하다.

지난해, 그가 만일 살아서 4장 끝 부분까지 쓸 수 있다면 이러저러한 내용을 다루겠다고 말한 것을 전해 들었다. 그동안 쓴 원고 분량도 엄청나 출판사들이 받아주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그의 박사 논문은 신명기 5-11장에 대한 것이다. 그가 평생 가장 큰 관심을 기울였던 것 역시 신명기였고, 이제 얼마 남았는지 모를 삶도 신명기 주석에 바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그의 글을 중심으로 로핑크의 성경 해석 방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가 현대의 성경 해석 방법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첫 회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 헌장에 대한 그의 이해를 돌아볼 것이고, 이어서 공의회 직후에 그가 역사비평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는가를 되짚어볼 것이다. 마지막에는 구약학의 신학적, 학문적 성격에 관한 그의 견해를 요약, 제시할 것이다.


균형잡힌 성경 이해 도모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된 노르베르트 로핑크 저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헌장」은 혁명이 아니라 전통으로의 회귀이다.” 로핑크가 「계시헌장」이 완성된 지 1년 만인 1966년에 한 말이다. 「계시헌장」은 19세기 말 이래로 근대적인 성경 연구가 발전하면서 교도권에서 성경 해석법의 변화를 수용해 온 과정을 한 단계 끝맺는 역할을 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일각에서는 자연과학과 역사학의 연구 결과를 존중하고 성경 본문을 비판적으로 읽는 시도에 대한 경계가 남아 있었으나, 교회는 점차 학문적 성경 연구를 수용하면서 특히 역사비평의 가치를 인정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러 이는 이미 완결됐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측면만을 강조한다면 「계시헌장」은 과거 전통을 떠나 새로운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것으로 이해될 것이다. 공의회 이후 실제로 많은 이들은 「계시헌장」의 의미가 무엇보다도 역사비평을 수용했다는 데 있는 것으로 이해했고, 성경 연구도 역사비평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오래전 「계시헌장」의 일면적인 이해가 공의회 이후 성경 연구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지적한 바 있다. 역사비평의 가치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우는 것은 균형 잡힌 성경 이해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래서 교황청 성서위원회의 「교회 안의 성서 해석」(1993년)이나 베네딕토 16세의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2010년)에서는 역사비평의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지적하고 성경 연구에서 고려해야 할 ‘다른’ 측면들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상 그 측면들은 「계시헌장」에 이미 들어있는 것이고 바로 그 때문에 로핑크는 「계시헌장」이 “혁명이 아니라 전통으로의 회귀”라고 처음부터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옳았다.


신앙 생활에서 성경 역할 강조

로핑크는 무엇보다 「계시헌장」이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서 성경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데서 출발한다. 당시 이러한 움직임은 새로운 것이었다. 로핑크는 먼저 가까이서 그 기원을 찾고, 전망을 역사적으로 확장시켜 교회의 시초까지 되돌아간다.

가까이는 20세기 초에 유럽 곳곳에서 시작됐던 성경 운동을 지적하는데, 그 시작을 정확히 찾아낼 수는 없으나 전례 운동과 함께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같은 영성 전통의 영향도 인정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성령께서 시작하신 일로 본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한동안 교회에서 소홀히 여겨져 왔던 성경 말씀과의 직접적 만남을 강조한다.

2000년 교회의 삶 안에서 성경이 핵심적 역할을 해온 것은 최근만의 일이 아니다. 고대 교회에서부터 형성돼 온 전례 본문들은 온전히 성경에 기초하고 있었으며, 초기 교부들이나 사막의 은수자들, 초기의 수도승들과 특히 베네딕토회 수도 전통은 모두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중시했다. 특별히 로핑크는 ‘성경의 네 가지 의미’에 관한 오랜 전통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성경의 개별 본문을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언급은 로핑크를 이해하고 「계시헌장」과 이후의 성경 해석의 흐름, 그리고 근래의 교도권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개별 본문을 성경 전체의 맥락 안에서 해석하는 것, 이것은 교회 전통 안에서 특히 교부들의 성경 주해에서 이뤄져 온 것이고, 「계시헌장」이 역사비평을 보완하기 위해 권고하는 것 가운데 하나며, 그 이후로 역사비평이 발전하면서 최근에 다시 강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점은 성경 주석과 신학이 분리되지 않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는 이러한 해석이 현대 학자들의 발명품이 아니라 고대 교회의 전통임을 늘 역설한다.

*
안소근 수녀
▲ 2001년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종신서원
▲ 2008년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 성서학 박사
▲ 대전가톨릭대 교수, 한국 가톨릭교리신학원 가톨릭신학 연구실장

[평화신문, 2014년 10월 26일, 안소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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