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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46: 낙태된 생명과의 화해 (1) 드라마 M(1994) 깊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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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0-31 ㅣ No.1599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46) 낙태된 생명과의 화해 1 - 드라마 ‘M’(1994) 깊게 읽기


낙태아의 절규, 외면해도 사라지지 않아

 

 

낙태된 영혼의 아픔

 

“나는 이 여자 안에 있는 기억분자요. 나는 이름도 형체도 없어.”, “그럼, 당신 몸은 어디 있죠?”, “의사들이 갈가리 찢어버렸지! 내 몸은 태어나기도 전에 찢겨 없어졌어.”, “낙태 수술을 말하는 건가? 그런데 어떻게 저 여자 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 “수술도구를 통해서 이 여자 엄마의 자궁으로 들어갔어.”, “다른 태아의 몸에 기생했다는 뜻인가? 당신이 저 여자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건가?”, “곧 그렇게 되겠지.”, “그럼 너의 존재 이유는 뭔가?”, “내 몸을 없애버린 인간들에게 복수하는 거지.”

 

1994년 여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M’에서 낙태된 영혼 M(심은하 분)이 복수를 외치며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드라마가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을 올리기 위해 1973년 모자보건법에 낙태 허용 조항을 포함하면서 국가가 낙태를 강권했고, 그 결과 낙태를 하지 않은 가정이 오히려 드물게 됐다.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을 형성하는 죄책감이 바로 낙태인데, 드라마 ‘M’은 이를 최초로 건드린 문화적 시도였다. 낙태로 죽임을 당한 아기의 영혼이 세상과 부모를 향해 펼치는 복수극이 낙태 경험자들에게는 내가 당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폭발적 관심이 쏠렸다.

 

 

부모에게 복수를 외치는 낙태된 생명

 

M은 아버지에게 전화한다. “26년 만이군요.”, “여보세요. 누굴 찾으십니까?”, “나를 창조한 사람! 아버지란 사람!”, “전화 잘못 걸었습니다.”, “아니요. 당신이 나를 못 알아보는 거지!”, “여보세요. 여긴 장난 전화받을 만큼 한가한 곳이 아니에요.”, “내가 당신 아들이라는 걸 증명하려는 거요.”, “이것 봐요. 난 아들이 없어요!”, “옛날에 어떤 여자에게 낙태 수술을 받도록 했을 텐데! 그 아이가 살아있다면 지금 스물여섯 살이 되었을 테고?”, “당신 누구야?”, “당신 아들!”, “전화 끊어!”, “햇빛도 보기 전에 나의 존재를 말살시켜 버린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를 잉태했던 나의 어머니, 당신들한테 진 빚을 갚기 위해 내가 돌아왔어. 나는 M, 남의 육체를 빌려 살지.”, “미친놈 같으니라고!”

 

M이 어머니를 직접 찾아가자 놀란 어머니가 가위로 위협한다. “가까이 오지 마!”, “당신의 혈육을 두 번 죽일 생각인가? 26년 전에 당신은 자기 배 속의 아이를 죽였지!” 어머니가 낙태 수술을 회상하며 멈칫하자, M은 가윗날을 붙잡는다. “당신들은 내 몸뚱이를 갈가리 찢어놓았어. 생명을 만들어놓고, 햇빛도 보기 전에 그 싹을 잘라버렸지. 이젠 당신들 차례야. 수술용 칼에 의해 몸뚱이가 갈가리 찢겨나가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의 맛을 보여주겠어. 엄마의 몸에서 분리돼 쓰레기통에 버려진 수백만 태아를 대신해서 내가 당신들한테 복수할 거야. 26년 전 당신이 아무 가책 없이 수술해버린 그 핏덩이가 무엇이 되었는가를 당신이 곧 알게 될 거야.” 어머니는 한마디 대꾸도 못 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 떨기만 했다.

 

M의 부모는 낙태 이후 헤어져서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아빠는 대학병원 의사로, 엄마는 유명 디자이너로 성공의 외피를 두르고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무의식 깊은 곳에 억압해놓은 죄책감이 사람이 되어 찾아온 것이다. 이는 드라마 속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죄와 악의 영적인 문제다. 부모는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낙태된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M은 병실에서 잠자는 엄마를 찾아가 볼을 쓰다듬으면서 엄마 품에서 사랑받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리곤 엄마 베개 옆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엄마는 깜짝 놀라 깨어서 도망치려 했지만, M은 팔을 붙들고 “당신을 해치고 싶지 않아요. 날 똑바로 봐”라고 말하며 태아인 자기 얼굴을 엄마에게 보여준다. 위협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인정해 달라는 애처로운 호소인데, 엄마는 이를 외면하고 “이러지 마.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살려줘!” 하며 도망쳤다. 도망칠 곳 없는 자궁에서 M은 이리저리 도망치다가 결국 죽었는데, 엄마는 아들이 다가왔는데도 살려달라며 도망쳐 버렸다.

 

아들을 피해 옥상까지 도망친 아버지에게 M은 말한다. “내가 두려운가요? 아버지! 왜 당신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까? 왜 당신 아들을 두려워합니까? 왜 나에게 사랑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왜 나를 보통 사람처럼 태어나지 못하게 했어요? 부모님을 원망했어요. 그리워도 했어요. 마리 안에서 마리를 부러워하며 살았어요. 언젠간 나도 마리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란 희망도 있었죠. 그러나 모두 허사였어요. 아무도 나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어요.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이제 모두 끝났어요. 나를 태어나게 만든 원인, 나의 창조자 아버지의 손으로 나를 보내줘요.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줘요.” M은 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지만, 아버지는 그 손길을 두려워하기만 했다.

 

M은 부모를 이미 용서했고 화해를 원했지만, 과거를 직면할 용기가 없었던 부모는 아들을 거부했고, M은 결국 군대에 의해 사살당했다. 낙태로, 거부로, 사살로 세 번이나 죽임을 당한 M은 가장 불쌍한 영혼이다. 

 

낙태로 죽인 생명을 인정하고 그들과 화해할 생각이 없는 우리 사회에 대한 고발, 이것이 드라마 ‘M’이 1994년의 한국 사회에 던진 묵직한 회개의 메시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듣기만 했을 뿐 실천하지 않았다. 24년이 지난 지금 ‘낙태는 죄가 아니라 권리’라는 외침만이 방송과 언론에 가득하다. 이는 M과 같은 이들을 네 번 죽이는 것이다. 낙태를 권리로 포장한다고 죄의식이 사라지거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 죄를 직시할 수 있는 은총과 생명과 화해하겠다는 용기를 하느님께 청해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0월 28일, 이광호 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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