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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65: 노르베르트 로핑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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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1-02 ㅣ No.425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5) 노르베르트 로핑크 (중)

성경 연구는 성경이 하느님 말씀이라는 데서 출발



성서학은 성경을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노르베르트 로핑크 역시 주석자들에게 성경이 하느님 말씀임을 잊지 말기를 당부했다.


지난 호에선 노르베르트 로핑크의 생애를 살펴보고 「계시헌장」에 대한 그의 시각을 알아봤다. 그는 「계시헌장」이 근대적인 성경 연구 방법, 즉 역사비평을 수용했다는 점만을 주목하지 않고, 초기 교회에서부터 성경이 교회의 삶과 신학 안에서 지녀온 역할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이제 그가 역사비평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했는지를 살펴보겠다.


역사비평, 과거에 대한 질문

근대에 이르러 과거에는 아무도 묻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묻기 시작했다. 특히 본문 저자와 본문 형성 과정에 대한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모세 오경과 이사야서가 과연 모세나 이사야라는 사람이 작성했는지를 논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학자들은 이 책이 한 사람의 저자가 아니라 오랜 기간 여러 사람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런 결론은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쓰인 책이라는 믿음에 상치되는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됐다고 믿는 이들은 역사비평적인 접근을 멀리하거나 단죄했고, 역사비평적 접근은 교회 밖에서 이뤄졌다.

성경의 개별 책들의 저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성령의 영감 또는 정통성과는 별개일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인정받았다. 그때까지 가톨릭 교회와 역사비평의 관계는 평탄치 않았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역사비평이 성경 연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졌다.

로핑크는 역사비평이 어둠 속에 덮인 과거를 밝히려 한다고 설명한다. 성경은 과거에 형성됐고 대개 과거를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당연히 성경 연구는 그 본문이 형성된 과거, 그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과거를 묻게 마련이고 그 정당성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로핑크는 역사적 질문과 역사적 방법을 구분한다. 역사적 질문은 기본적으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는 것이다. 한편 역사적 방법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사용되는 여러 기술과 도구, 규칙 등을 말한다. 그러나 과거를 말해주는 본문들, 특히 오래된 본문들에 대해서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는 것 외에 다른 역사적 질문들도 할 수 있다. 그는 플라톤의 「대화」를 예로 든다. 설령 그 대화가 실제로 있었던 대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등장 인물들이 사실에 충실하게 묘사됐는지, 그리고 원래 본문이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을 수 있다.


역사와 해석, 그리고 성경 연구

역사와 해석 사이의 구분은 본문에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나뉜다.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본문의 경우 역사와 해석이 겹쳐지지만, 일반적으로 오래된 본문이 있다면 그 본문에 대한 접근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된다.

본문을 해석해 그 본문이 의도하는 바를 찾거나, 아니면 본문을 사료로 사용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찾는 것이다. 물론 두 작업은 서로 연관된다. 본문의 발생 상황을 모르고서는 본문을 해석할 수 없다. 반대로 본문을 해석해 이해하지 않고서는 본문을 사료로 이용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방법은 오직 역사적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본문의 해석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로핑크는 결정적 문제는 성서학이 역사인가 해석인가 하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학자에게, 이 질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거기에 대답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물론 로핑크가 이 질문을 하는 것은 성서학이 해석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리스도교 신학자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과거 그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다. 그런 관심에서라면 코란 주석을 연구할 수도 있고 플라톤을 연구할 수도 있다. 그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성경이 그에게 특별한 가치를 지닌 본문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그 책을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그의 일차적 관심은 본문의 진술 내용에 있다. 그 책의 기원이나 본래 형태 등에 관한 역사적 질문은 이차적이며, 본문의 해석을 위해 요구되는 것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의 목표는 본문의 진술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본문의 세계 안에, 본문의 시각 안에, 곧 다른 어떤 사람의 세계와 시각 안에 들어선다. 그 시대 사람의 지평과 그 자신의 지평은 하나로 융합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 또는 해석자가 여기에 성공할 때 성서학의 의미가 완성된다. 성서학은 해석”이라고 했다.

논의의 핵심은 성경 연구에서 역사적 질문이 이차적 성격을 갖는다는 데에 있다. 역사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성경 이해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역사비평적인 연구는 성경 연구 안에 포함되고, 본문의 이해를 돕는 것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성경 본문의 주석자가 찾는 것은 본문이 진술하는 의미이며, “본문 안에서 어떤 진술을 하는 이와의 인격적 만남”이다. 성서학은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실재에 대한 이해, 진리 문제

여기서 로핑크는 매우 현대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역사적인 질문은 성서학 안에서만 제기되는 것이 아니므로, 성서학적인, 곧 로핑크가 이해하는 바와 같이 신학적 맥락이 아닌 순수하게 역사적인 관심에서 성경에 역사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신학자도 성서학자도 아닌 역사가가 성경 본문을 역사비평적으로 연구할 수도 있다.

로핑크는 이 질문을 뚜렷하게 하기 위해 그 가상의 역사가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전제한다. 그럴 경우 그의 연구 결과는 성서학에서와 동일할 것인가? 일단은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정한 자료에 일정한 방법을 적용하면 결과는 일정하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역사비평에는 각자의 실재 이해가 전제된다. 성경의 어떤 부분을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에서 그 실재 이해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떤 역사가가 기본적으로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고 기적도 있을 수 없다는 이해를 가지고 있고, 다른 역사가는 하느님과 기적이 실제로 확인될 수 있는 개념들이라는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이들의 성경 해석 결과는 동일할 수 없다. 후자가 기적에 대한 본문을 언제나 역사적 사실의 보도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선험적으로 기적 보도가 역사적 사실일 수 없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꼭 역사와 성경 해석 사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실재에 대한, 이 세상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을 때에는 한 사람의 주장이 다른 사람에게는 부조리하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 심리학, 신학 등에서도 유신론적 실재 이해와 무신론적 실재 이해는 서로 전혀 다른(거의 소통할 수 없는) 인간관의 차이를 가져온다. 로핑크는 구약 성경을 읽는 데에도 거의 이에 상응하는 차이들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 주석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실재 이해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평가한다.

이 시점에서 로핑크는 지적한다. 오늘날 성경 주석은 구약 성경을 사료의 하나로 연구하는 교회 밖의 성경 연구와 대화할 수 있는가? 로핑크는 대화 가능성을 위해서 진리 문제를 침묵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역사비평에 대한 위와 같은 로핑크의 견해를 보면, 마치 성경 해석에 관한 최근의 교회 문헌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난번에도 언급했던 「교회 안의 성서 해석」이나 「주님의 말씀」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성경 연구가 학문적이고 비판적인 경향으로 치우쳐 주석학과 신학이 분리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주석자들에게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임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한다.

 

[평화신문, 2014년 11월 2일, 안소근 수녀(대전 가톨릭대 교수,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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