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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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47: 낙태된 생명과의 화해 (2) 영화 솔라리스(1972) 깊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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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1-07 ㅣ No.1600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47) 낙태된 생명과의 화해 2 - 영화 ‘솔라리스’(1972) 깊게 읽기


버려진 생명에 용서 구하고 주께 은총 청해야

 

 

죄의식이 육화되어 나타나는 곳

 

‘솔라리스’(1972)는 과거와의 화해와 인간 구원에 대한 깊은 영적 통찰을 보여주는 영화다. 우주정거장 솔라리스에서는 무의식에 억압돼 있는 죄의식이 사람이 돼 나타나는 매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 현상 때문에 85명이 일하던 그곳에 3명만 남게 되고, 조사를 위해 심리학자 크리스가 파견된다. 도착해보니 3명 중 한 명은 죄책감을 못 견뎌 자살했고, 두 명은 무언가를 감출 뿐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우주여행으로 지친 크리스가 잠들자, 10년 전에 자살한 아내 하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크리스는 아내와 심하게 다투고 집을 나왔고, 자신이 집에 가져다 놓은 독극물로 아내가 자살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생겼지만, 아무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3일 후 집에 갔다가 독극물을 주사한 채 죽어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자신의 학대와 무관심 속에서 죽어간 아내가 솔라리스에서 육신을 가진 실체로, 주사 자국을 팔에 그대로 간직한 상태로 나타난 것이다. 크리스는 이를 보고 경악했고, 사랑한다며 아내가 다가오자 권총을 집어 아내를 쏘려 했지만 실패한다.

 

크리스는 하리를 속여서 우주선에 태우고는 망설임 없이 발사 버튼을 눌러서 아내를 우주로 날려보낸다. 양심의 호소를 철저하게 억압하고 외면한 것이다. 하리를 제거했다고 안도했지만 그날 밤 자고 일어나니 아내는 그 모습 그대로 다시 크리스 옆에 와 있었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하리는 남편에게 더 집착한다. 크리스가 잠시 방을 떠나면 맨손으로 철문을 찢고 따라 나와서 손과 팔이 피투성이가 되지만 즉시 회복됐고, 액체 산소를 마시고 자살을 시도해서 온몸이 꽁꽁 얼었다가도 순식간에 원상태로 돌아왔다. 언제나 원상 복구되는 육화된 죄책감과 24시간을 함께 사는 것이 솔라리스에서의 일상이다.

 

 

직면과 화해만이 유일한 탈출구

 

어떤 방법으로도 하리를 없앨 수 없고 회피할수록 고통이 심해지며 그 기간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인식한 크리스는 과거와의 화해를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이러는 내가 역겹죠?”라고 하는 하리를 감싸 안고 “하리!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어? 난 지구로 돌아가지 않아. 이 정거장에서 함께 삽시다”라며 사랑을 고백한다. 아내를 방치하고 성공에만 몰두했던 과거와는 정반대의 삶을 실천하며 용서를 구한 것이다. 그 다음 날 잠에서 깨어보니 하리가 사라져 버렸다.

 

솔라리스는 죄의식을 억압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거나 무시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죄의식이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며 변화되라고 촉구하는 특수한 환경이다. 크리스가 아내를 로켓에 태워 날려버렸을 때 로켓의 불이 몸에 옮겨붙어 화상의 고통을 당했다. 양심을 거부할 때 뜨거운 불이 타오르면서 회개를 유도하는 곳이 솔라리스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디일까? 인간이 자기 내면의 문제를 다 드러내고 고통을 통해 진정으로 정화되고 구원돼야 하는 은총의 장소,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연옥을 이렇게 표현했다. 천국, 지옥, 연옥은 죽어서 가는 별도의 공간이 아니라, 현재 내 영혼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현상이다.

 

 

과거의 낙태가 만든 현재의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솔라리스 현상이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낙태된 수천만의 아기들이 부모를 찾아가는 드라마 ‘M’과 같은 일이 발생한다. 살아 있는 과거가 회개와 화해를 요구하며 나를 찾아오는 것인데, 이는 이미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다.

 

“바캉스를 다녀오고 생리가 늦어져 그때는 믿지도 않던 하느님께 아주 두려운 맘으로 빌기 시작했죠. 그런 간절함에도 저는 임신을 하게 됐습니다. 낳을까도 고민했지만 호랑이 같은 아빠와 딸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엄마에게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고, 남친도 아주 한심스러워 보였습니다. 8주차에 낙태했고,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저를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렸습니다. 아이만이 아니라 저 또한 그때 죽었습니다. 그 병원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게 너무 싫고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그 병원이 눈에 들어올까 봐 두렵습니다. 지금도 그 병원을 본다는 게 제겐 생지옥입니다. 무려 16년 전 일이지만 제게 낙태는 어제 일처럼 떠오르며 매일 지옥으로 데려다 줍니다.”

 

 

Q. 이 여성이 자신의 현재를 지옥으로 만드는 살아 있는 과거에서 해방되는 길은 뭘까?

 

① 직면과 화해

② 부정과 회피

③‘낙태는 죄가 아니다’

 

정답은 ①이다. 이 길로 가서 크리스처럼 마지막 한 잎까지 다 갚아야만 천국을 살 수 있다.(마태 5,26) ③은 내면의 지옥을 덮어버리고 ‘나는 문제 없다’고 위장하다가 부정과 회피를 거쳐서 결국에는 지옥으로 수평 이동하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길이지만 현재는 이 목소리가 가장 크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그 직면과 화해의 길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낙태를 한 적이 있는 여성들에게 특별히 말합니다. 마음속 상처는 아직까지도 치유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일어났고 아직도 남아 있는 그 일은 분명히 엄청난 잘못입니다. 그러나 실망에 굴복하지 말고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이해하고 정직하게 그 일을 마주 대하려고 노력하십시오. 자비로운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용서하실 것이며, 화해의 성사 안에서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사는 여러분의 아기에게 용서를 청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체험의 결과로, 여러분은 생명에 대해 모든 사람이 지닌 권리에 대한 웅변적인 옹호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아기들의 출산을 받아들이거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생명에 대한 헌신을 통해서, 여러분은 인간 생명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의 주창자들이 될 것입니다.”(「생명의 복음」 99항)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1월 4일, 이광호 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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