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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목숨을 끊는 이들과 남겨진 이들: 사람이 살 수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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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1-18 ㅣ No.1606

[경향 돋보기 - 목숨을 끊는 이들과 남겨진 이들] 사람이 살 수 있는 나라

 

 

2017년 대한민국 자살 통계

 

해마다 9월이 되면 전년도 자살 통계가 발표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자살 사망자 수는 12,463명이다. 2016년 13,092명보다는 629명, 약 4.8%가 감소했다. 인구 10만 명을 기준으로 환산한 자살률 또한 24.3명으로 2016년 25.6명에 비해 1.3명으로 약 5%가 감소했다.

 

그러나 한국의 자살률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평균보다 두 배가량 높다. 또 십 대에서 삼십 대까지의 사망 원인 가운데 자살로 사망한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질병이나 교통사고로 사망한 비율보다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부적으로 보면, 이십 대 전체 사망자의 절반가량이 자살이고 십 대와 삼십 대 전체 사망자의 1/3이 자살로 사망했다는 의미이다. 사십 대에서 오십 대의 경우는 암으로 말미암은 사망이 가장 많고 다음이 자살이었다. 성별로는 남성이 여성보다 2.5배 높았고 연령별로는 팔십 대, 칠십 대, 오십 대, 육십 대순으로 높았다. 자살 사망자 수로는 오십 대와 사십 대가 가장 많았다.

 

통계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한 해 이십만에서 삼십만 건 정도의 자살 시도가 발생한다. 전 국민의 3%인 약 160만 명이 한 번 이상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그 성공률은 노인에게 가장 높으며 보통 다른 연령층에 비해 네 배 정도 높다.

 

한 사람의 자살 사망자가 많게는 열 명의 유가족(부모, 자녀, 형제자매 등)을 발생시킨다고 할 때 지난 10년간 최소 100만 명 이상의 유가족이 상실의 아픔을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이미 우리 사회의 상당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누군가의 유가족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증가하여 1998년을 기점으로 감소한 뒤, 2000년 이후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2011년 자살 사망자 수는 15,906명, 인구 10만 명당 31.7명으로 정점을 찍고 최근에는 감소 추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증가세는 전년도보다 뚜렷이 상승해 올해 2018년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연령별로 살펴본 자살 행동의 특성

 

자살은 한마디로 한 개인이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행한 죽음이다. 또한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인간이 자신의 의식 안에서 극단적으로 다시는 그 문제와 대면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자기 부정이라 할 수 있다.

 

현장에서 알게 된 내용을 바탕으로 그 현상을 간략히 살펴보면 개인의 내적인 이유, 실존적인 문제 등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자살 행동은 어린 시절의 가정불화와 폭력, 학대, 학교와 사회에서의 부적응, 장기 실직, 심각한 재정적 압박 등과 같은 사회 환경적 문제가 발단이 된 경우가 많았다. 안타깝지만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의지나 가족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 간 연결성도 자살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곳은 노인 인구와 남성, 홀로 사는 비율이 높고, 직업 불안정성과 경제적 불평등이 큰 지역이다. 실제로 자살 통계와 지역을 연결해 보면 저소득 취약 계층이 밀집된 지역, 도시화 초기 단계인 도농 복합 지역에서 자살률이 높게 나타난다.

 

자살 위험성을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십 대는 가정 문제와 가출, 대인 관계의 갈등, 학교 부적응 등이 큰 원인이고, 주변에 도움을 줄 어른이 없거나 신뢰할 만한 친구 또한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동기부터 가정 폭력이나 학대 등으로 상처가 있고 부모와 분리된 경험이 있거나, 가족 관계 자체가 적대적인 경우도 많았다. 목숨을 끊기 직전 가족 내 관계의 악화, 갈등의 증폭이 있었고, 가족 내 자살 사망자나 신체 질병이 있는 경우도 상당히 자살 위험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십 대는 가족과의 갈등과 실직, 신체 건강상의 문제 등의 어려움, 경제적으로 절박한 상태에서 의지했던 이성과의 관계가 갈등 중이거나 이별했을 때 위험성이 높았다. 특히 가족과 의사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사회 진출에 어려움을 겪거나 마지막 끈이라 여겼던 친구와의 관계마저 단절될 때 자살 위험성이 높아졌다.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시험, 구직 실패 등의 외부 스트레스가 큰 경우에도 위험성이 높게 나타났다.

 

삼십 대는 경력 단절 상태에서 구직 실패, 경제적 독립 실패, 가족 갈등 등의 어려움이 큰 원인이고, 부채가 있는 상황에서 가족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위험성이 높았다. 결혼한 상태에서 가족과의 갈등, 폭력이 빈번한 경우에도 위험성이 높았다.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에도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경우와 높은 업무 강도, 업무 스트레스가 그 위험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십 대는 이혼과 가족 해체, 경제적 변화, 실직 등이 큰 원인이었고, 주변에 신뢰할 만한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생활고와 음주 문제 등이 겹치면서 그 위험성이 커지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날 정신상의 건강 문제가 있었거나 최근에 정신적으로 심각해졌을 때도 위험성이 높았다. 대부분 이 시기에 심각한 알코올 문제가 나타난다.

 

오십 대는 이혼과 가족 해체, 경제적 변화, 실직 기간의 지속 등이 큰 원인이고, 만성적인 신체 건강 문제와 가족 내 중증 질환자가 있는 경우 이로 말미암아 보호 부담이 클 때도 위험성이 높았다. 사십 대와 마찬가지로 오십 대도 심각한 알코올 문제가 많이 나타났다. 자존심 때문에 평소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하다가 극한 상황에서야 형제자매나 주변에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당했을 때 위험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았다.

 

육십 대 이상에서는 이혼, 사별 여부와 상관없이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홀로 지내면서 만성적인 신체 질병, 심각한 알코올 문제가 있을 때 위험성이 매우 높았다. 가족 내 심각한 질환자가 있는 경우에도 이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위험성이 높았다.

 

나이가 어릴수록 사망 전 자살 시도 경험이 잦았으며 목숨을 끊기 하루 전이나 일주일 사이에 주변에 자살을 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소는 주로 자신의 집이나 근처였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자살 장소를 찾는 사람도 상당수 있었다. 정신 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 문제도 모든 연령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사십 대 이후로 알코올 문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십 대부터는 사회 부적응, 실직, 경제적 변화, 생활고 등이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주변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 어린 시절부터 가정불화와 폭력, 학대 등으로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유가족이 처한 현실

 

앞서 언급한 2017년 자살 통계대로라면 하루 평균 34.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루에만 341명 가까이 자살 유가족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들 유가족 대부분은 자살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가족의 죽음을 알리지도 못하고, 인간의 감정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적인 상실 앞에서 자신을 억압하고 정죄하며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유폐되어 산다. 그 유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직접 인터뷰해 보았다.

 

- 자살한 가족의 어려움을 사전에 신경 쓰지 못했거나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 때와, 그 죽음을 직접 목격하거나 또는 간접적으로 확인했을 때 고통스럽다.

- 죄책감과 원망, 분노, 복합 비애로 말미암아 종종 공황 상태에 빠진다.

- 자살한 가족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다른 이유들을 찾으려 한다.

- 내면의 고통들로 현실을 대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고통스러운 삶이 지속된다.

- 다른 가족의 일탈이나 자살 시도와 같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 표면적으로는 일상을 회복하지만 내면은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있다.

- 통제하기가 어려운 상실감이 강박적으로 엄습한다. 죄책감을 늘 안고 살아간다.

 

일반적인 상실과 달리 자살 유가족들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되풀이된다고 말한다. 더욱이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죄책감, 무기력감, 분노 등을 누군가에게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애도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많은 경우 자기혐오와 상실, 우울증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자살 유가족도 심리적인 충격이 큰 상태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거나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 유가족의 특성에 맞는 개별 상담, 자조 모임, 의료비 지원, 생활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이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극소수의 유가족만이 서비스를 받는 실정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살리려면

 

한국의 자살 현상은 재난 수준을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년 넘게 해마다 1만 명 이상이 자살로 사망하는데도 이를 막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가 절체절명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자살률이 높은 나라는 대부분 출산율이 낮고 사람들의 분노 수준이 높으며 잔인한 타살도 많다. 모든 연령대가 삶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삶의 만족도 또한 최하위 수준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자살 원인은 사실 우리 모두 너무 잘 알고 있다. 돈이 모든 것의 평가 기준이 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회생할 수 없는 사람들은 다른 모든 것도 잃게 된다. 인간성 상실, 정신 파괴, 생명 상실을 일으키는 이 현상의 본질에 대해 우리 사회가 눈을 감고 있다. 종교마저도 여기에 편승하기 때문에 힘든 사람들이 더 의지할 데가 없어 보인다.

 

자살 예방이 제대로 되려면 돈이 없더라도 살 수 있게 다른 가치를 회복하거나 현재의 비정상적인 세상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필자는 마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일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죽음밖에 답이 없다고 말하는 자살 시도자, 자신을 자책하며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 있는 유가족들, 죽음을 통해 기구한 삶을 표현하고자 했던 자살 사망자들의 사연을 계속해서 만났고 앞으로도 만날 것이다.

 

머릿속에는 세상을 떠난 많은 이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가득 차 있고 심지어 꿈속에서도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곤 한다. ‘살아 있을 때, 살 수 있게 노력해 달라!’는 그들의 호소를 대변해 본다.

 

“아이들은 폭력 없는 가정에서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커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고 적성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누구나 독립적인 삶이 보장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결혼과 자녀의 양육을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 치료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며, 노인이 되어서도 기본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합니다.”

 

한국의 자살 현상은 이렇게 삶과 철저히 연동한다. 우리 사회에 맞는 복지 국가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말해 준다. 국가와 지자체는 건강한 가정, 희망찬 학교, 안정적인 일자리, 행복한 노년에 초점을 맞춰 ‘죽은 사람들의 숫자를 세는 일’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 황순찬 -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 서울시자살예방센터는 자살 예방 지원, 전문 인력 교육, 유가족 애도 상담 등을 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8년 11월호, 황순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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