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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목숨을 끊는 이들과 남겨진 이들: 자살의 사회 –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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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1-18 ㅣ No.1607

[경향 돋보기 - 목숨을 끊는 이들과 남겨진 이들] 자살의 사회 – 심리학

 

 

자살의 원인에 대한 이론은 다양하다. 자살자의 심리 상태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공통된 자살자의 심리는 더는 삶의 희망이 없다고 느끼거나 주변에 아무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고 느낄 때 자살을 결행하게 된다. 이는 극단적으로 우울한 사람들이 보이는 대표적인 부정적 사고의 결과이다.

 

자살의 원인을 이해하려고 실시한 심리 부검의 결과 80-90%의 자살 사망자들이 자살 시도 전에 한 개 이상의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맹독성 농약과 같은 치명적인 자살 수단에 접근하기 쉬운 지역에서는 심리 부검 결과 분명한 정신 질환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스트레스는 자살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다 자살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 · 생물학적 요인, 성격, 사회적 · 대인 관계적지지 체계, 종교적 신념과 같은 용인이 개인의 특성을 좌우하고 여기에 스트레스와 그 당시 자신의 정신적 · 신체적 질병 등이 상호 작용하여 자살 행동이 나타난다.

 

자살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자살의 정신 사회적 위험 요인을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핀란드에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자살자의 약 80%는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직업 문제, 가정불화, 신체적 질환, 경제적 어려움, 실직, 이별, 가족의 사망, 가족의 질병 등의 스트레스였다.

 

 

정신 사회적 위험 요인들

 

첫째, 사회적 고립, 곧 다른 사람과의 상호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말한다. 사회적 관계를 이루지 못하면 정서적 지지를 받기 어렵고, 우울증이나 알코올 의존증에 빠지기 쉽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인들은 자살 시점에 친구나 친척, 또는 동료들과 신체적으로 고립되었던 것으로 보고되기도 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켕(Durkheim)의 사회 통합 모델에 따르면 의미 있는 관계를 많이 맺을수록 자살률은 낮다. 알코올 의존증이나 주요 우울 장애가 있는 자살자 가운데 혼자 사는 이가 많았다. 이 또한 사회적 고립이 자살과 관련이 높다는 것을 알려 준다.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사회적 관계를 체념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둘째, 중요한 인물의 상실이다.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과의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면 자신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감정을 불러일으켜 자살 위험성이 커진다. 중요한 인물을 잃어버리면 안전한 환경에 대한 욕구가 좌절되어 정서적 불안정 상태에 놓이기 쉽다.

 

청소년 자살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부모 또는 형제의 죽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12세 이전에 부모를 잃으면 성인이 되어 자살할 위험성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곧 중요한 인물의 상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울증에 빠뜨릴 위험이 높다.

 

셋째, 결혼 상태이다. 자살과 결혼 상태의 관련성을 보면 일반적으로 독신과 별거, 이혼, 사별 등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 자살할 위험이 높다. 특히 사별이나 이혼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큰 자살 요인이 된다.

 

한편 자녀가 있을 때는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와 함께 사는 기혼자가 많은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자살률이 훨씬 낮았다. 일반적으로 결혼 생활은 자살의 위험성을 낮추지만, 연령에 따라 다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일랜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4세 이하에서는 미혼보다 기혼의 자살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너무 이른 결혼은 자살의 악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결과다. 특히 십 대 기혼 여성의 자살 위험도가 훨씬 더 높았다. 이는 십 대 기혼자가 지지를 얻지 못하는 환경에서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족의 강요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억지로 이루어진 결혼은 자살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넷째, 실직이다. 일반적으로 실직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위험성이 큰데, 깊은 절망에 싸이기 때문이다. 실직은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우울과 절망에 빠지게 한다. 실업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위험성도 더 커진다.

 

실직자들의 절망은 자살 의도와도 관련이 있다. 직업은 단순히 노동이나 경제적 수입의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접촉의 의미와 사회적 위치를 갖는 데에도 의미가 있기에 직업을 갖는 것이 자살을 예방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실직은 개인의 자존심을 떨어뜨리고 우울과 절망으로 가족 간에 긴장감을 주며 파국으로 치닫게 할 수 있다.

 

1930년대 미국의 경제 공황 시기에 실업률이 증가하자 자살률도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양상도 변하기 시작했다. 실직자에 대한 재정적 지원으로 실업이 반드시 파국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업보다는 실업을 둘러싼 환경적 요인이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

 

다섯째, 이주와 이민자들이다. 이주나 이민과 같은 사회 변화, 특히 반복적인 이주는 자살 위험률을 높인다. 이주와 이민은 사회 환경의 변화와 함께 사회관계가 단절될 수 있다. 이민자는 원주민보다 자살률이 더 높다. 그 이유는 이민 초기의 정신 사회적 스트레스 때문이다.

 

여섯째, 정신적 외상이다. 학교나 회사, 군대 등에서 따돌림이나 왕따, 희롱 등의 정신적 외상과 폭력, 강간 등 신체적, 성적 학대 등은 

 

자살의 위험도를 높인다. 이는 자살의 위험한 주요 원인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도 관련된다.

 

특히 직접적인 위협이나 폭력이 희생자의 주변에서 일어날 때 그 위험성은 더 커진다. 성별에도 차이가 있어 따돌림은 남학생보다 여학생의 자살 위험성을 더 높인다.

 

그 밖에 홍수나 지진,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에 따른 정신적 외상도 자살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자살의 정신 분석 설명 이론들

 

프로이트는 자살을 우울증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려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음으로써 나타나는 고통과 분노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자 그 사람과 동일시하게 된다. 이 결과 자신의 일부로 자리매김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강력한 공격성이 자살로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특히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이라는 논문에서 자살이 자기 자신에게로 화살을 돌린 공격성에서 온다고 설명하였다.

 

정신과 의사 칼 메닝거는 인간에게 죽이고자 하는 욕구,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구, 죽고 싶은 욕구가 모두 있는데 자살 초기에는 이 세 가지 욕구가 모두 나타난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이 가운데 어느 하나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죽이고자 하는 욕구와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구는 줄지만 죽고 싶은 욕구는 더욱 늘어나 자살을 하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제이컵슨은 정신 역동적으로 자살의 심리를 요약하였다. 그는 자살은 대상의 상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주요 원인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고 했다. 또한 자신과 타인의 잘못된 동일시에 따른 혼동이 자살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자살에는 새로운 삶과 부활에 대한 환상이 있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할 수 없는데 자신이 죽음에서 벗어나 새롭고 더 나은 세계로 갈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행동한다고 설명하였다.

 

우리나라 정신분석학의 초석을 놓은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 조두영 박사는 자살 행동에 관한 몇 가지 정신 역동적 유형을 소개하였다.

 

첫째, 역습적 유기(버림)로서의 자살이다. 실연을 당한 뒤 하는 자살은 상대가 나를 버렸으니 이번에는 자살해 버림으로써 나도 상대를 똑같이 저버리고 싶다는 심정으로 하는 것이다.

 

둘째, 반전 살인으로서의 자살이다. 자살과 살인은 백지장의 앞, 뒷면과 같다는 의미로 인간이 지닌 무의식적 살인 충동 때문에 자살을 감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재결합을 기약하는 자살이다. 이는 현실 생활의 좌절과 불행에 지친 나머지 먼저 죽은 가족, 친지를 저세상에서 만나 행복하게 살자는 환상에 사로잡혀 자살하는 경우이다.

 

넷째, 재생을 기약하는 자살이다. 인생에서 모든 의미를 상실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영적 재생을 바라는 무의식적 소망에서 자살하게 된다.

 

다섯째, 자기 응징으로서의 자살이다. 인생의 중대한 사항을 성취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자신을 처벌하는 의미로 자살한다.

 

여섯째, 자기는 이미 죽은 것으로 여기는 데서 오는 자살이다. 그는 자신이 감정적 차원에서 이미 죽은 것으로 보고 자살을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중증의 정신 질환자들한테서 흔하다.

 

 

자살 시도자와 유가족의 심리

 

자살 시도자와 유가족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가족의 자살이 자신의 자살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살 시도자의 가족과 유가족에 대한 이해와 지지가 매우 중요하다.

 

자살 시도자의 가족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어려움은 다음의 네 가지로 알려졌다.

 

첫째는 정보의 결여이다. 이는 자살 시도가 가족에게 위협적이고 혼동을 주며 예측이 어렵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가족들은 시도자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심리 부검 등을 통해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둘째는 부담이다. 대표적으로 가족들이 겪는 부담은 자살 시도자로 말미암은 경제적 문제, 수면 장애, 일상생활의 리듬 파괴, 건강 상태의 악화, 자살 시도자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두려움, 가족과 부부 관계의 긴장 등이다.

 

셋째는 부적절한 대처 기술이다. 가족이 자살 시도자의 반응에 과도하게 관여한다고 보는 것이다. 가족의 입장에서는 자살 시도자가 잘못될까 봐 지켜보고 보호하며,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할 때 불안해한다. 또한 위험한 행동을 한 경우, 그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죄의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넷째는 가족들 간의 감정 표현과 표출의 문제이다. 적절한 가족 간의 감정 표현은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감정 표현이 지나쳐서 가족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거나 반대로 너무 부족해도 안 된다.

 

유가족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울함이나 심리적 고통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큰 역경이 가족의 죽음인데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들의 우울, 죄책감, 원망 등을 해소할 지지 집단을 비롯한 다양한 심리적 지지 체계가 필요하다.

 

* 오강섭 - 한국자살예방협회장. 성균관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대한노인정신의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8년 11월호, 오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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