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가톨릭 교리

신학이 뭡미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과 만남의 자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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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5-08 ㅣ No.4177

[신학이 뭡미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과 만남의 자리: 성경 (1)

 

 

지난번에 신학은 ‘내 삶 안에서 존재하시는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알아가면서, 그분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는지를 묻고 답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여정(旅程)’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정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길잡이는 무엇이 있을까요? 여러 길잡이 중 중요한 하나는 바로 “성경(聖經)”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신학과 신앙의 교과서이자 안내서이지만, 무엇보다도 하느님 백성의 책’입니다. 이런 성경을 여러분은 어떻게 간직하고 계시나요?

 

어떤 주교님께서는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안타까운 모습을 이렇게 꼬집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먼지가 많이 쌓인 책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바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여러분에게 성경은 무엇(의미)인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은 책의 형태로 우리 곁에 있지만, 분명한 것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며, 소설책은 더더욱 아닙니다. 성경 속에는 말씀하시는 하느님 자신에 관해 그리고 당신의 우리 인간에 대한 구원 계획에 관해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세상을 창조하시며 보존하시는 하느님,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부르시는 여정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지혜를 드러내시는 하느님, 성조들과 예언자들의 입으로 당신 말씀의 진리를 전달하는 하느님 등등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다정하신 정말이지 참 다양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인 복음 선포를 통해 말씀하시고, 당신의 구원 의지와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을 우리는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신화적인 서술에서부터, 역사, 율법, 시, 예언, 묵시록, 복음, 편지 등등 왜 이런 다양한 장으로 기록되었을까? 단지 시대의 문학적인 형식에 불과할까, 아니면 어떤 다른 의도가 있을까? 예를 들어 시편은 하느님을 찬미 찬양하면서 왜 시詩라는 장르를 사용했을까?

 

시편 저자는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인간 자신의 감정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 당신 말씀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초월성) 영원히 존재하지만(영원성)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로 우리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그 말씀을 들음으로써 다양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무리 다양한 모습으로 체험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체험하는 하느님은 동일한 한 분이신 하느님입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탈출 3,6)이시며,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서 존재하시나 동일한 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양한 장르를 통해 우리가 다양한 모습의 하느님과 그분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을 만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교회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물론 성경 속 말씀 하나하나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시는 말씀이기에 그 자체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성경 안에서 인간의 방식으로 인간에게 말씀하셨기에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성경 저자들이 정말로 뜻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며, 하느님께서 그들의 말을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9항」 참고)

 

그래야 지금 여기 우리의 성경은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는 자리이자, 성경을 읽고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간직하게 해주는 중요한 만남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에 적힌 내용만이 아니라, 그 내용에 담긴 하느님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성경의 한두 구절을 읽읍시다. … 성경을 펼쳐 놓읍시다. … 매일 성경에서 영감을 얻읍시다. 큰 사랑으로 우리 삶을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는 것을 발견합시다.”(프란치스코 교황님의 2020년 1월 26일 하느님 말씀 주일 강론 中) [2023년 5월 7일(가해)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 가톨릭마산 3면, 변종원 요셉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이 뭡미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과 만남의 자리: 성경 (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면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제자들을 양성하셨듯이, 신학교에서는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통해 신학생들이 성경을 학문적 영역에서만 탐구하여 그 안에서 자구적 의미만을 찾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말씀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게 하여 그 삶 한가운데에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주님을 모시고 살 수 있게 양성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신학과 신앙의 교과서이자 안내서이지만, 무엇보다도 하느님 백성의 책’인 성경을 읽을 때 혹시 생길 수 있는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고, 그 뜻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만나는 성경이 품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이야기를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경 공부를 단순히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일로만 생각한다면, 이는 단순히 성경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은 후에는 이해를 위해서 묵상(Meditatio), 즉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내 삶에 어떤 빛을 비추는지를 살펴보는 것’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묵상 시간은 성경 속 하느님 말씀이 당시 시대와 문화를 넘어 성경을 읽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다가와 내 삶의 의미를 해석해 줍니다. 그래서 성경을 내 뜻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신앙을 일으키고 하느님의 지혜를 갈망하며 기쁨과 감사의 기도를 이끌어 주시는 성령께서 원하시는 의미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실은 하느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슬기, 통달, 용기, 효경 그리고 경외심의 삶(이사 11,2-3)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신학을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토대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나의 삶을 이해할 때,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고, 이를 통해 내 삶 안에서 존재하시는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답하며, 그분의 뜻을 내 삶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의 여정(旅程)은 성경에 담긴 하느님 말씀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지금의 언어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성경 속 이야기들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야기, 예수님에게서 치유와 자유 그리고 해방을 얻은 병자들의 이야기, 창녀와 세리들의 이야기, 심지어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이야기 등등이 단순히 예수님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내 인생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금, 여기서, 내가’ 하느님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장소이자, 신학하기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예로니모 성인의 말씀입니다.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이사야서 주해』 서문; CCL 73,1ff.)

 

성경은 믿음에 의해 쓰여졌으며, 동시에 그 믿음을 다시 가르쳐 줍니다. 그러니 믿음을 위해서 우리는 먼저 성경을 읽고 알아가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에는 믿음을 얻기 위한 구원의 선포를 담은 말씀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듣거나 읽은 것이 없어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은 말할 것도 당연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인간의 깨달음이나 지혜에서 온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분의 진리가 우리에게 계시된 것입니다. 순명과 겸손의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신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그 말씀을 우리 안에 모신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지면, 하느님에 대한 이해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곧, 하느님을 그저 내 현세의 삶을 축복하시고, 내세의 삶에 영원한 생명을 주실 분으로만 여기는 기복신앙(祈福信仰)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를 참으로 살게 하는 영혼의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나에게 있는 성경을 집어 천천히 읽고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 삶의 바탕이 되는 모든 진리가 성경에 충만히 담겨 있기에, 우리는 성경을 자주 읽고 또 묵상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과 친숙해지고, 말씀에 맛들이면서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105) [2023년 6월 4일(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가톨릭마산 3면, 변종원 요셉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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