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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49: 대량 낙태 시대와 성 요셉, 영화 네이티비티 스토리 깊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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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1-19 ㅣ No.1610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49) 대량 낙태 시대와 성 요셉, 영화 ‘네이티비티 스토리’ 깊게 읽기


이 시대는 ‘제2의 요셉’을 부르고 있다

 

 

태아 예수를 위한 요셉의 영적 싸움

 

“율법대로 해! 율법대로! 마리아에게 돌을 던져라! 요셉이 첫 번째 돌을 던져야 해! 마리아는 죽어야 해! 요셉이 먼저 던지게 하자!” 영화 ‘네이티비티 스토리(nativity story)’의 한 장면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방어 수단이 전혀 없는, 누가 적극적으로 보호해주지 않으면 전혀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지극히 위험한 임신의 형태로 세상에 보내셨다. 낙태 만연을 넘어서 낙태가 권리로 주장되는 이 시대에 마리아의 임신은 신앙인들에게 엄청난 성찰을 하게 해주는 사건이다. 위기에 처한 마리아와 태아 예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요셉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이다. “네 아기는 아빠가 필요할 거야! 난 그 애를 내 아이라고 선언할 거야!”,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내 아내고, 나는 당신의 남편이에요. 이것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야 할 사실의 전부요.” 요셉은 꿈속에서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 그 부르심에 삶을 던진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지속할 수도 있었지만, 두 생명을 온전히 책임지는 고난과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는 길을 택한 것이다.

 

요셉은 호적 신고를 위해 임신 중인 아내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먼 길을 떠난다. 시장에서 어떤 여자가 마리아에게 임신부라는 이유로 음식을 주면서 “당신은 아들을 임신했군요. 아기 얼굴에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지요”라고 말을 붙인다. 그 순간 요셉과 마리아는 온몸이 굳었다. 요셉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배 속의 아이가 요셉을 닮았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호의를 베풀면서 접근하고,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악마가 요셉을 공격한 것이다. 악은 이렇게 슬며시 그러나 예리하게 치고 들어오는데, 이때 마리아는 요셉의 손을 잡았고 요셉은 마리아에게 웃음을 보이며 그 자리를 급히 떠났다. 요셉은 이처럼 끊임없이 다가오는 유혹, ‘태아 예수를 보호하는 삶을 포기하고 남자로서 네 뜻대로 살아’라는 내면의 소리와 싸우면서 하느님이 주신 고귀한 사명, 태아 예수와 그 어머니를 모든 위험에서 보호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눈에 띄지 않는 의로운 사람 요셉

 

험한 여정에서 지친 요셉이 길가에 쓰러져 잠이 들자, 마리아는 요셉의 흙투성이가 된 발을 닦아주면서 뱃속의 예수에게 말을 건넨다. “아가야, 너는 너를 잘 키워줄 참으로 착하고 좋은 아빠를 만나게 되었구나! 그 어떤 것보다 너를 위해 자신을 바칠 아빠를 말이야.” 자신의 씨앗에서 나오지 않은 아기를 목숨 걸고 돌보는 요셉의 의로움에 감복한 마리아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품고, 그것을 태아 예수에게 전해주는 장면이다. 태아 예수는 외적으로는 위험했지만, 내적으로는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한 모태 시절을 보냈다. 이런 돌봄이 가능했던 이유는 요셉의 헌신 덕분인데, 이런 훌륭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잘 알려지지도 기억되지도 않았다. 위대한 업적을 은밀하게 이루는 의로움, 이것이 요셉의 성덕이다.

 

“성 요셉의 사명은 조용히 생각하는 사명, 침묵하는 사명,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알려지지 않는 사명이다. 겸허함과 침묵 속에 달성해가는 사명이다. 신적 사명의 깊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것을 감추는 밤의 장막도 두껍고 침묵도 깊다. 그렇기에 더욱 성 요셉의 사명은 고귀하고 요구되는 선덕도 고도의 것이어야 하며, 거기에서 나오는 공덕도 큰 것이다. 마리아의 순결을 보호하는 사명,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위대한 신비에 참여하는 사명, 이렇게 하여 ‘말씀’이 사람이 되게 하시고 인류의 속죄에 협력하게 하는 사명, 이것이 성 요셉의 독특하고 매우 고귀한 사명이다.”(베르나르 마르틀레 작 「나자렛의 요셉」에 실린 교황 비오 11세의 말씀 중)

 

 

보이지 않게 어린 생명을 지키는 요셉들

 

어느 날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남성 주변으로 방청객들이 일어나 그를 맞이한다. 그는 어리둥절해한다. 이 남성에게는 50년 동안 밝히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그 비밀이 대중에게 공개된다. 1938년, 영국인 니컬러스 원턴씨는 대학살에서 유다인 아이들을 구출하기로 한다. 그의 노력으로 유다인 아이 669명이 무사히 체코에서 영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탈출한 아이들이 원턴씨의 도움으로 모두 입양되던 사이, 그 부모들은 대부분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잃었다. 원턴씨는 50년 동안 이 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50년 뒤, 그의 아내가 다락방에서 노트 한 권을 발견하고 이 일을 알게 된다. 노트에는 아이들의 이름과 사진이 모두 기록돼 있었다. 아내는 노트를 기자에게 전달했고, 원턴씨는 영문도 모른 채 방송국에 초대됐다. 주변에 앉아 있던 방청객 모두 당시 구조된 아이들이었고, 성인이 된 그 아이들은 지금에서야 원턴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윈턴씨는 2016년 10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느 시대에나 요셉처럼 보이지 않게 위험을 무릅쓰고 의로운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위기에 처한 연약한 생명이 보호받을 수 있다. 윈턴씨는 죽을 고비에 있는 생명을 살리고자 2차 세계대전에 다시 살아난 요셉과도 같다. 대량 낙태의 시대에는 이런 요셉들이 수없이 은밀하게 재출현해서 수많은 생명을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건너가게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성 요셉이시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5)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저희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생명을 수호하는 은밀한 실천에 나서는 은총을 전구해 주소서!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1월 18일, 이광호 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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