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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50: 생명을 살리는 이 시대의 파스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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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1-25 ㅣ No.1611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50 · 끝) 생명을 살리는 이 시대의 파스카(pascha)를 위하여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생명… 구원의 손길 내밀어야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건너감 - 영화 ‘덩케르크(Dunkirk)’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했고, 영불 연합군 40만 명은 프랑스 북부 해변 덩케르크에 고립된다. 독일 전차부대가 밀고 들어오면 전부 몰살당하거나 포로로 잡히는 절체절명의 위기인데, 이때 갑자기 히틀러가 전차부대의 진격을 멈춘다. 히틀러가 막강 전력의 탱크를 왜 세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로 인해 대규모 철수작전이 전개됐다. 영국 정부는 모든 무기와 장비를 버리고, 젊은이들만 배에 태워서 도버해협을 건너는 작전을 실행했다. 이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죽음의 땅에 갇혀 있던 젊은이들이 생명의 땅으로 건너올 수 있도록 하늘과 바다에서 길을 열어주었던 사람들의 희생 덕분이다. 군함만으로는 3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을 건네줄 수 없기에 영국 정부는 민간 선박을 징발했고, 해군에 배만 내어주면 되는데도 수많은 민간인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배를 직접 몰고 와서 군인들을 태웠다. 영국 공군은 수송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독일 폭격기와 싸우면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당한다. 이 처절한 생명 싸움을 기록한 영화가 ‘덩케르크’다.

 

이 영화에서는 영국 전투기 스핏파이어(spitfire) 3대가 덩케르크 해변으로 출격한다. 편대장은 덩케르크에서 40분 교전할 연료량을 확보하고, 교전 중에도 연료량을 확인해서 안전한 복귀가 가능케 하라는 명령을 한다. 첫 교전에서 적기 1기를 격추했지만, 편대장도 격추당해서 전사하고, 1호기는 연료계가 파손된다. 연료량을 알 수 없어서 2호기에 수시로 시간과 연료량을 물으며 분필로 기록한다. 독일 폭격기 편대를 새로 만나 교전하는 중 2호기가 격추당해 추락하면서 연료량을 알려주자, 1호기는 폭격기와 호위기를 따라가서 호위기만 격추하고 곧바로 기수를 돌린다. 전투를 이어가면 연료 부족으로 복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덩케르크를 떠나며 조종사는 영국 구축함 쪽으로 접근하는 독일 폭격기를 보여주는 백미러와 분필로 적어놓은 연료량을 위아래로 번갈아 보면서 극도의 갈등을 겪는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다가 기수를 돌려서 다시 덩케르크로 향하고 폭격기를 격추하지만, 덩케르크 해변의 상공에 도착하자 프로펠러가 멈춘다. 배를 타기 위해 늘어서 있는 수많은 젊은이는 프로펠러가 멈춘 자국의 전투기를 멍하니 보는 그 순간, 독일 전투기가 폭격을 위해 급강하하자 1호기는 엔진이 멈춘 상태로 활공하면서 무방비 상태의 군인들을 공격하는 적기를 격추해서 수장시킨다. 공포에 질려 있던 수많은 군인은 환호하지만, 동력이 없는 1호기는 독일군 점령 지역에 불시착하고 조종사는 포로로 잡힌다. 그는 사지(死地)에서 생지(生地)로 사람들을 건너가게 해 주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싸운 것이다.

 

 

살 길을 열어주는 희생 제사

 

이처럼 사람들을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건네주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구약에서는 흠 없는 어린 양의 목숨을 바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구원을 체험할 수 있었고, 신약에서는 그 파스카 희생양의 역할을 예수님이 하시면서 인류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해주셨다. 살려달라는 간절함과 희생 제물이 동시에 갖추어질 때 죽임에서 살림으로의 대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적의 공세로 영국과 프랑스의 군대가 해안으로 밀려났다. 그들은 덩케르크에 갇혀서 자기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원되는 기적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덩케르크’ 시작부에 자막으로 제시되는 배경 설명이다. 이집트 병거에 쫓겨 홍해 앞에서 고립돼 바닷길이 열리길 간절히 소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독일 탱크에 해변까지 쫓겨온 그들은 도버해협 건너기를 간절히 원했고, 하늘과 바다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어린 양과 또 다른 그리스도(alter Christus)들이 나타나서 그 살림의 기적을 완성했다.

 

인류 역사는 이처럼 죽이는 자와 살리는 자 사이의 끊임없는 대결이었고, 이 시대에는 낙태라는 대살육의 전차가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을 사선(死線)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태아들은 살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아기들을 생명의 땅으로 건네주겠다는 희생양과 또 다른 그리스도들이 덩케르크에서처럼 나타나지 않는다면 엄청난 수의 인간 생명이 몰살당할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을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서 보호하는 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완성해야 할 이 시대의 파스카 제사고, 예수님도 그리로 우리를 부르신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루카 11,23)

 

 

구원을 위한 희생

 

흠 없는 사람만 이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나치에게 협력해서 회사를 키우는 교활한 사업가 쉰들러도 냉혹한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후 양심의 소리를 듣고, 아우슈비츠로 끌려갈 사람들을 구하기로 한다. 쉰들러는 뇌물을 줘서 사람을 빼냈는데, 자신의 사업 수완이었던 뇌물을 생명을 살리는 선한 방향으로 사용한 것이다. 돈과 쾌락에 집착해 살던 쉰들러는 전 재산을 털어서 1100명을 구했고, 그렇게 작성된 쉰들러 리스트는 쉰들러를 정화하고, 그의 이름을 하느님 생명의 책에 기록되게 했다. 자신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던 돈을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낌없이 포기했기 때문이다.

 

생명 수호는 양심의 소리를 듣는 누구든지 자기 달란트로 실행하고, 자신이 구원되는 파스카 제사다. 낙태 위기의 태아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네주고, 그 파스카로 자신도 생명을 얻는 수많은 1호기 조종사와 쉰들러들이 한국 사회에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연재를 마친다. 50회 마침점을 건너가게 이끌어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진리를 위해 죽기까지 싸워라. 주 하느님께서 네 편을 들어 싸워 주시리라.”(집회 4,28)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1월 25일, 이광호 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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