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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환경] 성경의 가르침과 환경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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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8-11 ㅣ No.1329

[복음살이] 성경의 가르침과 환경보호

 

 

환경오염의 폐해와 환경보호의 필요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요즘 우리나라에 많은 피해를 주는 미세먼지로 인해 그 심각성을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미세먼지의 원인은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중국의 오염물질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화력발전소, 자동차, 보일러 등에서 연료를 태워 나오는 배출물질도 주된 요인이고, 공사장이나 도로에서 날리는 먼지, 겨울의 난방용 연료도 그 요인에 포함됩니다.

 

황사는 자연에서 발생하는 흙모래가 이동하다가 떨어지는 것이지만 미세먼지는 주로 공업 연료의 배출물이라 유독 성분이 많고 입자가 미세해서 더욱 인체에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을 편리하고자 개발한 기술과 산업이 대기를 오염시키고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이제 소비와 편리를 우선으로 삼는 삶의 양식을 바꾸고, 자연친화적인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임을 고통스럽게 자각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2015년 6월18일 환경 보호와 생태 문제를 다룬 회칙 <찬미받으소서( Laudato Si)>를 발표하셨으니 벌써 회칙을 반포하신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이 문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다양한 해설의 기회가 있어왔지만 그 분량의 방대함과 내용의 심오함 때문인지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실천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교황님은 회칙에서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우리의 누이이며 어머니인 지구가 “지금 울부짖고 있”다고 먼저 말하며(2항), 우리 모두의 생각과 삶의 태도를 바꾸는 “세계적인 생태적 회개”(5항, 216-221항)가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이 회칙은 환경과 생태계의 파괴라는 위급한 현실을 극복하고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제대로 돌보기 위해 현실 진단, 성경의 가르침, 생태 위기의 근본 원인, 그리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논의와 구체적인 행동지침, 그리고 우리가 수행해야 할 생태교육과 영성적 태도를 통합적으로 제안하고 있습니다.

 

 

생태 위기의 근본 원인은 창조하신 하느님 뜻 저버린 인간 죄의 탓

 

여기서는 회칙의 내용을 모두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우선 회칙 제2장 <피조물에 관한 복음>에 나오는 교황님이 제시한 성경에 나타나는 생태와 환경 보호와 관련된 가르침만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교황님은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본 원인은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하느님의 뜻을 저버린 인간의 죄의 탓이며, 인간이 가볍게 여기는 세상의 피조물들은 사실 인류의 생존과 완성을 위해 고유한 가치를 지닌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선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살펴보면 인간은 누구나 헤아릴 수 없는 존엄을 지니고 창조되었다는 것과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 가지 관계, 곧 하느님과의 관계, 우리 이웃과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66항).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이 관계가 인간의 죄로 인해 깨졌습니다. 곧 이 땅을 “일구고 돌보는”(창세 2,15) 인류의 임무를 왜곡하여 “지배”(창세 1,28)라는 말을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이 창조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이 다른 피조물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과 자연은 서로 책임을 지는 관계”이며,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라는 것,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풍요로운 땅에서 얻되, 동시에 “이 땅을 보호하고 후손들을 위하여 이 땅에 계속하여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의무”가 인간에게 있음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땅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법과 이 세상의 피조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교한 균형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67항). 또한 성경은 “소와 나귀도 쉰다”(탈출 23,12)라는 안식일 규정처럼 인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를 위한 다양한 규범을 제시하면서 인간이 그들을 유성성의 기준으로 바라보려는 “자의적인 인간 중심주의”를 배격하고 그들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68항).

 

둘째로 성경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하느님께서 “네 아우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창세 4,9)고 물으시는 대목의 상징성을 강조하며, 이웃을 책임지고 돌보는 의무를 저버리는 것은 위에서 말한 세 가지 관계 모두를 망치게 하고, 정의와 평화를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와 인류의 삶 자체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경고합니다. 한편 의인 노아를 통한 구원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알려주며, 안식일과 안식년의 율법은 휴식과 땅의 회복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공정과 균형을 실천하고 가난한 이웃을 돕도록 촉구한다는 것입니다.

 


“생태적 회개”가 절실히 요청돼

 

셋째로 시편의 저자와 예언서의 예언자들은 유배나 박해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무한한 권능을 바라보라고 권유함으로써 피조물을 통해 하느님의 권능을 기억하고 그분에 대한 신뢰와 용기와 희망을 회복하도록 격려해줍니다. 만일 사람들이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을 잊어버린다면 세상의 다른 힘 있는 존재에게 하느님의 자리를 내어주고 피조물을 짓밟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세상의 유일한 주인이신 하느님을 일깨우는 영성은 피조물을 보호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넷째로 예수님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은 보잘 것 없는 참새도 잊지 않으시고(루카 12,6), 하늘의 새들을 먹여주시며 들판의 꽃들을 화려하게 입혀주시는(마태 6,26-31) 하느님의 자비를 상기시키십니다. 예수님은 겨자씨, 곡식 등 자연을 유심히 바라보며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셨고, 풍랑을 복종시키시는 모습 안에서 피조물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시는 삶을 보이셨으며(마태 8,27), “육신과 물질과 세상 현실을 경멸하는 사상들”과는 달리 당신 자신이 “먹보요 술꾼”이라는 비난(마태 11,19)을 받을 정도로 세상의 즐거움을 긍정하셨고, 노동을 통해 물질들을 다루고 기술을 발휘하심으로써 피조물의 고유한 가치를 드러내 보이셨습니다(98항).

 

마지막으로 사도 바오로는 만물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향하여 창조되었다고 말함으로써 피조물의 운명이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표현했고(콜로 1,16),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영광스럽게 되신 후 모든 피조물 안에 영광스럽게 현존하신다신다고 가르칩니다(콜로 1,19). 즉 “예수님께서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감탄하셨던 들판의 바로 그 꽃들과 새들은 이제 그분의 빛나는 현존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100항).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을 반영하고 있음을 깨닫고 피조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인간이 피조물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잊고 개발만을 일삼아 온 결과로 물과 공기와 같은 너무도 당연시 여기 왔던 하느님의 피조물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인간의 편리와 즐거움을 위해 무분별하게 피조물을 남용해 온 것을 반성하고 환경과 생태 보호를 위해 우리의 느슨했던 의식을 일깨우는 “생태적 회개”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기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8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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