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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대중문화와 성: 대중매체와 성문화, 그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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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2-21 ㅣ No.892

[경향 돋보기 - 대중문화와 성] 대중매체와 성문화, 그 대책


우리는 지금 선정적인 것들이 우리 감각을 뇌살시키는 세상에 살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선정적인 드라마나 쇼, 대중매체나 길거리 광고판에서 볼 수 있는 선정적인 포즈나 문구, 잡지나 웹사이트 등을 통해 전달되는 도색적인 문화가 우리 주변을 휘감고 있다. 이러한 영상들은 아직 성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성의 개념을 심어주기에 파격적이다. 성은 소중하고 성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배우기도 전에 성에 대한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주고 있다.

이렇게 선정적인 문화의 범람은 인간의 몸이 추구해야 할 올바른 가치와 의미를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쾌락에 빠지게 하여 정신세계까지도 황폐화시킬 수 있다. 예컨대 이러한 문화는 인간 몸의 가시적인 차원에만 초점을 둠으로써 성을 유쾌하고 간편한 쾌락으로 왜곡시키며 사랑보다 욕망이 우위를 차지하고 그릇된 욕망의 추구를 사랑으로 미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청소년들에게 성과 정결의 가치와 의미를 올바로 전달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러한 세속주의 가치관과 범람하는 왜곡된 성문화를 거슬러 ‘사랑이 완성되는 길’을 어떻게 제시하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무엇보다도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대중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성교육이 요청된다. 죽음의 문화를 부추기고 성을 왜곡시키는 대중문화 속에서 올바른 성문화, 생명의 문화를 수호하고 확산시키려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악한 세력에 대한 경각심

잘못된 성문화에 대응하려면 우선 근원적인 차원에서 교회의 고유한 사명인 올바른 진리를 선포하고 진리를 거슬러 저항하는 악한 세력이 있음을 경각시켜야 한다. 대중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선정적인 성문화의 저변에는 죽음의 문화가 작용하고 있고 죽음의 문화 안에는 악마의 속삭임이 작용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악마를 ‘살인자’, ‘유혹자’, ‘하느님의 적대자’로 묘사한다. 오늘날 악한 세력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인간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 파고들어 생명의 창조주 하느님을 거부하게 하고 하느님과 적대관계로 살게 하는지를 식별하는 것이 모든 일에 선행되어야 할 점이다. 왜냐하면 오염된 물을 정화시키려고 하류에서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일 수 있지만 상류에서 오염원을 차단하지 않으면 그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만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악마가 우리 시대에 수질 개선의 상류에 해당하는 정신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오염시키는지를 깊이 인식해야 한다.

창세기 3장은 뱀으로 표현된 악마의 행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나무 열매를 따먹어도 좋다고 말씀하셨고, 단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 하나만 따먹지 말라고 하였다(창세 2,16-17). 그런데 뱀은 이 사실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하느님께서 관대함이 없으시고 인간의 자유를 원하지 않는 분처럼, 단 한 가지 금령에 대한 것을 마치 전체 나무 열매에 대한 금령으로 조작하여 하와에게 제시한다.

이러한 뱀의 조작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하와의 마음속에는 하느님에 대한 의심이 생겨난다. 예컨대 그동안 하느님을 관대한 분으로 생각했는데 ‘하느님이 관대한 분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거짓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도록 뱀의 조작과 유혹이 한층 거세진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세3,4-5). 악마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존재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한계를 거부하게 한다.

이것은 마치 인간이 어떤 구속도 없는 완전한 자유의 길을 갈 수 있고, 인간의 유한성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거짓 포장 속에 영원한 죽음으로 인도하는 독약을 감추면서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일어난 유혹

뱀의 유혹은 아담과 하와에게만 일어난 유혹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서 전개되는 모습과 양상은 다르지만 사건의 원형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오늘날 하느님을 인간의 적대자로 몰아가고 인간의 한계를 부정하고 하느님의 계명 준수를 경시하게 하는 죽음의 문화를 선도하는 뱀이 다름 아닌 ‘상대주의 가치관과 문화’라고 간파하셨다.

인간 생명은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서 부여받았고 우리는 그 생명을 완성시키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인간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을 거부하는 세속주의나 상대주의 가치관의 침투는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인간 생명이 완성되어야 할 인간의 궁극 목적을 거부한다. 대신 이기주의적인 쾌락 추구와 효율성의 증대만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로 호도하고 이것을 대중문화를 통해 주입시킨다. 어쩌면 이러한 과정은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진리를 왜곡시켜 주입시키는 것의 반복이다.

이렇게 뱀이 주입하는 진리의 왜곡 속에서 인간의 성도 감각적인 쾌락의 추구만이 전체인 것처럼 우리 마음을 유혹에 빠트린다. 이렇게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 모습을 띤 뱀은 성의 참다운 모습을 왜곡시켜 성을 유쾌하고 간편한 유희로서 분리시키고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도록 유도하면서 무책임한 성관계를 조장하고 필연적으로 원하지 않는 임신과 생명의 살인인 낙태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

이러한 면에서 악한 영들의 계략에 넘어가 펼쳐지는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고 생명의 성문화를 진작시키고자, 대중문화를 통해 진리를 호도하고 조작하는 뱀들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그것의 실체와 허구성을 밝히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성적인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참된 이해

잘못된 성문화에 대응하려면 진리를 왜곡하는 악마의 세력에 대한 이해와 함께 성적인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의미를 깨닫는 것도 필요하다. 인간 존재는 하느님이 계획한 목적에 맞게 살아갈 때, 인간의 참된 의미, 곧 구원이 실현된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어떤 존재로 창조하셨고, 인간에게 부여된 여러 능력들이 어떻게 발휘되어야 하는가?’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창조주가 부여한 성적 본성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세속적인 잣대로 그것을 이해하고 살아갈 때, 성적인 존재로 창조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올바로 응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갈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성적인 정체성이 확립되었을 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축복과 구원에 참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 인간은 남자와 여자, 곧 성적인 피조물로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예컨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주겠다.”(창세 2,18)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면서 아담을 잠들게 한 다음 그의 갈비뼈를 뽑아 하와를 창조하셨다. 그 짝을 만나게 되었을 때, 아담은 탄성을 지른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 2,23) 창세기의 이 구절은 인간이 우선 성적이며 동시에 관계적인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에게 ‘알맞은 협력자’가 필요함은 바로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임을 드러낸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완성될 수 없고 ‘알맞은 협력자’를 만났을 때, 곧 관계를 통하여 비로소 온전한 완성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말씀하시듯이 성적인 존재에 앞서 근본적으로 관계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이 관계를 완성시키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여기서 성은 인격을 풍요롭게 해주는 생명의 에너지이며, 관계를 맺는 능력이고, 생명을 낳는 원초적 실재다. 성이란 원래부터 풍요롭고 지속적인 관계에 기여하도록 지향되어 있다. 예컨대 성은 일정한 목적을 지향하는 수단이다.

이렇게 성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은 사랑의 관계를 지향해야 자기실현에 도달하고 삶이 구원의 차원으로 승화된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는 한, 성적인 에너지는 방향성을 잃고 충동에 따라 남용되거나 아니면 평정한 삶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그 무엇으로 제거 대상이 되는 것이다.

욕구의 세계는 이성의 세계의 질서에 순응해야 하고 이성의 세계는 하느님의 뜻에 순응할 때,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우리 안에서도 실현될 수 있듯이, 성적인 욕구도 이러한 질서를 향해 나아갈 때, 성적 욕구가 온전히 실현되어 참다운 인격 성숙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왜곡된 성문화를 바로잡으려면 인간 본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고, 특별히 철학적, 신학적 차원의 인간 이해가 요청된다.


가톨릭교회의 실천

교회는 오늘날 이러한 성문화의 타락과 그 결과로 빚어지는 인간존엄의 상실과 생명 파괴의 심각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교황님들도 많은 회칙과 문헌 반포를 통해 이 시대의 어둠을 통찰하고 생명문화를 건설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별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에게 인간 몸과 성의 의미를 가르치려고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수요 일반 알현’을 통해 ‘몸의 신학’을 가르치셨다.

또한 이러한 것들을 전파하고자 ‘혼인과 가정’이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하셨다. 이러한 교회의 최고 목자의 헌신과 노력에 부응하여 서울대교구에서도 교구 생명위원회, 생명대학원 등을 설립하고 생명운동가들을 양성하고 생명수호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죽음의 문화에 대응하여 생명문화를 수호하고자, 그리고 대중문화를 통해 파고드는 잘못된 성문화를 올바로 바로잡고자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깨어있는 자세로 결집되고 조직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

현장에서 대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느낀 어려움을 성찰하면서 효과적인 성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 몇 가지 성교육에 대한 대책을 제언한다.

1.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에게 적합한 창의적인 교육방법론이 필요하다. 지금 청소년과 청년들은 영상물이 폭발적으로 발달할 때 태어나고 자라면서 활자보다는 영상에, 진지한 것보다는 재미있는 것에 친화적인 세대이다. 이들에게 올바른 성에 대해, 교회의 가르침을 선언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실효를 기대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들이 일용할 양식으로 즐기는 문화상품에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를 이 세대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고전 명작으로 인정받는 문학작품과 상업적 영상물이 각각 성과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서로 다르게 인간 무의식에 내재화시켜 주는지를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여 대조해 줌으로써, 지금까지 대중문화를 통해서 왜곡된 성교육을 받아왔음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2. 성문화에 대한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성은 인간 삶의 매우 크고 중요한 한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교육은 주로 생물학이나 의료보건 또는 심리학 분야에만 심각하게 치우쳐 있었다.

그러나 매스미디어 사회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이라는 영상 미디어를 통해서 성을 배운다는 의식조차 없이 학습하고, 거기서 형성한 왜곡된 가치를 가지고 성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바로잡으려면 미디어 교육과 인문학 교육으로서 성교육이 재탄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도 완전하지는 않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느님을 찾는 영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교육과 성문화에는 생물학이나 의학, 미디어 문화론만이 아닌, 철학과 신학까지 아우르는 다학제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며 그 과정 안에서 성이라는 에너지를 승화할 수 있는 것은 신앙과 영성이기 때문이다.

3. 현장가로서의 교육자 양성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의 교육 현장에서 성과 관련된 문제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성교육이 전무한 상태이다. 콘돔 교육이라는 대증요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활자에서 영상으로의 문화의 거시적 변동이 성의식의 변동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철학적 신학적 인간학을 기초에 두고 ‘성 - 사랑 - 생명’이 본질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가르쳐줄 수 있는 교육자만이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이런 교육자를 양성하고 현장에 파견하는 일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톨릭교회가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과감한 투자를 감행할 때 가능할 수 있다.

* 김평만 유스티노 - 서울대교구 신부.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교목실장 겸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경향잡지, 2011년 12월호, 김평만 유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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