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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성경 속 생명 이야기2: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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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2-09 ㅣ No.1122

[성경 속 생명 이야기] (2)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


인간 생명, 하느님 사랑의 절정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1,26-27; 2,3).

태초에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다른 피조물들을 모두 만드시고 창조의 절정으로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특별한 방법이란 하느님의 인간 사랑이었습니다. 우리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당신 생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하늘과 땅, 물과 길짐승과 뭍짐승과 같은 피조물들을 "생겨라!"는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시는데,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창조하십니다.

우선,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어떤 존재를 만들 것인지 먼저 구상하십니다. "우리와 닮은 사람을 만들자." 인간은 그래서 하느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이를 두고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이라고 부릅니다. 다음으로, 그렇게 구상한 인간을 더 특별한 방법으로 창조하십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노동입니다. 노동이라는 단어가 하느님께는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만큼 노동은 신성하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는 아주 질 좋은 흙을 찾아 정성스레 한삽 한삽 떠서 작업장으로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 흙을 깨끗하고 정결한 물과 섞어 다집니다. 그리고선 마치 밀가루 반죽을 하듯 맨발로 아름다운 꽃모양으로 흙을 곱게 다듬습니다. 흙 속에 이물질이나 숨구멍 이외에 다른 파공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는 적당한 양의 흙을 떠서 달팽이 모양이 되도록 손으로 다시 다듬습니다. 그래야 뜨거운 가마 속에 들어가도 터지지 않고 균열이 없는 좋은 도자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후 물레에 흙을 얹고 빚습니다. 발로 물레를 돌리며 아름다운 자태를 만들고 그 위에 그림도 그려 넣고 손으로 마감질도 합니다. 그런 후에 유약을 묻혀 굽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더 단단해지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도록 높은 온도에서 여러 번 여러 시간에 걸쳐 굽게 됩니다.

이렇게 도자기를 빚는 도공의 얼굴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땀이 맺힙니다. 그 도공의 얼굴을 통해 인간을 진흙으로 빚으시며 땀을 흘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노동과 하느님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합쳐져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이 귀한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바로 나입니다. 그리고 이웃의 우리 형제자매입니다.

하느님은 그러나 이 특은을 여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에게 당신은 숨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것은 히브리어로 '루아'(Ruah)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 생명은 바로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아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존엄합니까. 그것이 인간입니다. 하느님은 이 인간을 거룩함과 연관지어 이야기하십니다. 거룩함은 오직 하느님께만 붙일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인간에게도 사용한다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만든 인간을 보시고 "보시니, 참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인간에게만 '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심으로써 하느님과 인간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또한 참 하느님이신 분이 참 인간이 되신 강생의 신비는 인간이 지니는 가치가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다는 것을 계시해 줍니다(「생명의 복음」 2항). 이 구원의 신비 안에서, 인간은 자신의 형언할 수 없는 가치와 거룩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 생명의 비교할 수 없는 가치와 존엄성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 생명이야말로 하느님 사랑의 절정인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4년 2월 9일, 
지영현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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