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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칠죄종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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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22 ㅣ No.801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칠죄종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며

 

 

종종 ‘칠죄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제인 나부터 마음 한편이 무겁게 느껴지며,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이미 오래전의 교리 내용쯤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생각이 어디 나뿐이겠는가?

 

하지만 칠죄종, 곧 교만, 인색, 분노, 질투, 탐욕, 음욕, 나태는 우리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서 끊임없이 마주하게 된다. 언론에서 자주 접하는 수많은 사건은 우리가 칠죄종과 얼마나 연관되어 사는지를 보여 준다.

 

 

일상과 깊이 연결된 칠죄종

 

‘2017년 6월 국내 어느 대학의 한 학생이 취직을 했으니 성적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시험을 보라고 말한 교수에게 앙심을 품고 폭발물을 제조해 택배로 보내 화상을 입힌 사건이 있었다.’ 분노가 그를 삼켜 버린 사건이다.

 

‘2017년 10월 자신의 아내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친구의 딸을 유괴해 살인한 뒤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 있었다.’ 음욕이 엄청난 범죄로 이어졌다.

 

분노가 모두를 살인자로 만드는 것도, 음욕이 모두를 강간범으로 만드는 것도, 질투가 우리 모두를 노골적인 범죄자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칠죄종에 굴복하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릴 수 있으며 영성생활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칠죄종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된다.

 

일상에 깊이 스며든 칠죄종은 아주 부정적인 사회 현상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칠죄종이 더 확산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음욕은 외설 문화를, 탐욕은 약물 남용을, 질투는 테러라는 악행을, 분노는 폭력을, 나태는 고통과 절망에 빠진 이들에 대한 무관심을, 인색은 부정과 사기와 나눔의 결여로, 그리고 교만은 무시와 냉대의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 그 사회에 사는 우리 각자도 잘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크고 작게 그 영향에 노출된다.

 

지나치게 부정적일 수도 있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대 사회가 도덕이나 윤리에 대해 더는 이야기하기를 포기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자기중심주의와 물질주의, 쾌락주의,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현대의 학문, 특별히 일부 심리학으로 말미암아 이론적으로 무장되면서 점점 도덕과 윤리에 이완되게 사는 자신을 종종 합리화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엄격한 윤리적인 삶의 형태를 따르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런 삶을 극단적으로 배격하기도 한다. 각자의 삶을 합리화하고 강화시켜 주는 원천에 더 깊은 신뢰를 두면서 말이다. 비단 두 극단에 속하지 않았다고 해서 쉽게 안심할 상황이 아닐 수 있다. 두 극단의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올바르게 균형이 잡힌 사람들도 있지만 적당히 그 둘을 혼합하여 질서가 잡히지 않은 채 뒤죽박죽으로 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칠죄종에 대한 성찰은 왜 필요한가

 

칠죄종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에도, 우리는 실제로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칠죄종의 정체에 대해서 모를 때가 많다. 고해성사를 하는 참회자들 대부분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 경향이 있다.

 

“남편과 다투었습니다.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많이 냈습니다. 동료들과 싸웠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알아내고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외적으로 드러난 사건, 곧 표면적인 죄에 대한 성찰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죄의 바탕에 깔린 ‘죄의 뿌리’이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성찰하고 고백한다는 것은 그 죄의 뿌리에 좀 더 다가서는 것이다.

 

이를테면, 참회자가 고백한, 남편과 다투게 된 죄는 다양한 죄의 뿌리에서 기인할 수 있다. ‘분노’에서 그럴 수도 있고, ‘질투’나 다른 것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 예컨대, 자기 친구가 사는 집보다 자신이 좋지 못한 집에 산다고 여겨져 남편에게 더 큰 집으로 이사하자고 떼를 쓰면서 다투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이때 우리는 다툼의 뿌리인 질투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질투는 그에게서 또 다른 형태의 행동을 만들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탐식이 폭식이나 과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분노가 그렇게 만들 수도 있다. 성범죄가 음욕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분노에서 나올 수도 있다. 자신도 모르는 죄의 뿌리로 말미암아 평생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에 현재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죄의 뿌리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칠죄종은 우리가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에도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기에 영성과 심리의 통합적인 관찰과 접근은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칠죄종은 무엇인가

 

칠죄종은 초기 교회 때부터 교회가 설교와 영적 양성 등을 위하여 자주 사용하던 핵심적인 주제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많은 교부와 수도자가 이에 대해 깊이 성찰했다. 하지만 그 내용의 전개가 종종 신학적인 측면이 강조되면서 다소 무겁고 어려우며 현실의 삶과는 동떨어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사제들의 입에서조차 ‘칠죄종’이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본질적인 내용에 깊게 다가가지 못하는 다른 학문의 용어로 칠죄종을 설명하려는 경향도 생겨났다.

 

필자는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심리학에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할 수 있는 긍정적인 부분 또한 매우 많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비록 심리학이 그리스도교의 윤리나 덕, 또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에 도달하는 여러 방법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임상 심리학자인 솔로몬 쉼멜 교수는 신앙인들이 심리학을 대하는 자세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현대 심리학이 일찍이 오늘날과 같은 위대한 심리학자들이었던 신학자들, 윤리학자들이 그토록 명확하게 바라보았던 충동 조절, 이기적인 태도, 존재의 의미, 도덕적인 갈등, 윤리적인 가치 등과 관련된 문제를 해명하는 데 여실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현대 심리학을 피할 필요가 없으며 심리학적인 지식과 치료 때문에 배타적으로 종교와 철학에만 돌아갈 필요도 없다. … 현대의 심리학은 다양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심리학 자체가 다 전통적인 관심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 … 현대 심리학은 종종 새로운 부대에 담긴 오래된 포도주와 같다.”

 


칠죄종을 어떻게 성찰해 나갈 것인가

 

필자는 칠죄종에 대한 연재를 시작하면서 인간의 품위와 덕에 초점을 맞추며 그 삶을 방해하는 칠죄종의 각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기본적으로 성경과 신학적인 내용을 소개하면서 죄의 뿌리가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찾게 될 것이다.

 

후반부에서는 칠죄종의 심리적인 측면을 좀 더 부각시켜 관찰하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필자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선행 연구가 많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를 전제로 영성과 심리의 통합적인 측면에서 칠죄종을 바라보고 그 영향을 줄여 나가는 방법에 주목하고자 한다. 필자의 능력과 지면의 한계로 더욱 깊고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될 수 있는 대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보기들로 꾸릴 것이다.

 

현대에 새롭게 칠죄종의 세계로 끌리는 모든 이가 각자의 삶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초대 교회의 교부들과 수도자들처럼 조금씩 꾸준히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여정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 김인호 루카 - 대전교구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신앙도 레슨이 필요해」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성찰」, 「너무 빨리 용서하지 마라」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8년 1월호, 김인호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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