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2016-05-10.....부활 제7주간 화요일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5-10 ㅣ No.2054

 

부활 제7주간 화요일

사도행전 20,17-27             요한 17,1-11

2016. 5. 10. 이태원

주제 : 나에게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면서.....

사람이 미래를 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렇게 알고 싶은 미래가 행복이라면 그저 즐길 준비만 하면 되지만, 만일에 내가 알고 싶은 미래가 불행이거나 현실의 삶에서도 피하고 싶은 것이라면 미리 대비를 하는 것이 좋다고 여길 것입니다. 세상이 한창 암울하게 간다고 했던 80년대에는 미래를 그리는 SF(science fiction)영화가 몇 개가 있었습니다. 만드는 이야기는 모두 달랐겠지만, 한결같은 요소의 하나는 미래에서 현재로 희한한 기계나 우주선이 날아와서 그네들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 지금의 우리 입장에서 보면 현실을 바꾸어 훗날에 잘못된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것들이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드러내는 행동이 훗날에, 지금 생각해서는 맘에 들지 않을 미래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제가 이렇게 질문합니다만,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있는데, 미래에 나에게 생길 일이 불편한 것이거나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긴다는 게 말이나 될까?’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현실에 사는 우리는 미래에 내 삶의 결과가 어떠할지 모릅니다.

 

오늘 독서는 자신의 미래가 어떠할지 예상하면서도, 그대로 행동하는 바오로사도의 모습을 전합니다. 현실의 우리가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왜 그 미래를 바꾸거나 현실에서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할까? 이 자리에는 바오로사도가 없으니, 그가 실제로 왜 그렇게 행동했고, 현실이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두었는지 알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행동을 합니다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는 일들이 모두 다 처음부터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모습을 가리켜 예정설이라는 말로 포장하면,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사람은 다음 순간에 내게 일어날 일이 정말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이런 일에 확실한 것 한가지는 현실에서, 지금 내가 행동하는 대로 결과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요? 훗날에 후회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으려면, 현실의 태도를 바꾸거나 미래에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기대를 버리는 일입니다.

 

복음말씀은 사순절을 지내면서 감동(!) 깊게 함께 기도했을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흔히 인류구원과 완성의 시기를 앞두고 예수님께서 바치신 대사제의 기도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게쎄마니동산에서 겪으실 수난의 순간을 영광을 얻는 방법으로 생각하셨습니다. 보통 생각을 갖고 사는 우리와는 다른 자세입니다. 이게 말이 될까요? 말이 되니까, 성경에는 그렇게 썼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지 살펴야 합니다. 고통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고, 영광은 내가 누리고 싶다고 생각해서 다가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삶의 태도를 돌아볼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일이 생기겠습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7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