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종교철학ㅣ사상

종이책 읽기: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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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7-22 ㅣ No.118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하다


지난 5월 7일은 분도출판사가 한국에서 출판사 등록을 하고 책을 펴낸 지 50돌이 되는 날이었다. 참으로 기념하고 축하할 만한 날이었는데 출판사를 운영해온 성베네딕도수도회에 대한 감사와 축하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축하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졌다. 특히 50주년을 기념하며 펴낸 4권의 책 중 하나인 임인덕 세바스티안 신부님의 평전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하다」를 읽으면서 더욱 그렇게 느꼈다. 

독재와 민주화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던 이들에게, 절망에 빠진 한국사회에, 정의와 평화와 자유의 개념이 미처 꽃필 틈도 없이 싹이 나오는 족족 밟혀 꺾이던 그 암울한 시기에 분도출판사는 굴하지 않고 길과 희망을 제시하며 진리의 빛줄기를 비추는 역할을 계속해왔던 것이다. 또한 철학과 신학이라는 교회를 살찌울 커다란 보배를 지속적으로 지원해주고 인간의 선과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부단한 노력의 혜택을 우리가 받아왔고 누려왔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임인덕 세바스티안 신부가 있었다.

한 인간의 평전을 쓰고 읽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본다. 대개 존경하는 인물의 사상이나 견해 등을 연구하기 위해 평전 읽기는 필수적이리라. 오랜만에 감명 깊고 재미있고 역사 및 시대의 징표를 보여주는, 누구나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평전을 하나 읽었다. 그것은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거의 일생을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한’ 임인덕 세바스티안 로틀러 신부님의 평전인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하다」이다.

이 책은 신부님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의 역사의 한 현장에 있는 듯 역동적인 필체로 우리를 가슴 졸이게 한다. 또 가슴 아프게도 하면서 늘 하느님과 사랑과 정의를 우선적으로 선택한 삶을 살아온 인간 하인리히에서부터,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어떠한 경우에서든 한국 사람들을 위해 “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질문하며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았던 한 수도사제의 사랑의 삶이 펼쳐져 있다. 그는 선교사를 지망해서 베네딕도회 수도자가 되었고 아프리카보다 더 가난한 나라라고 알려진 한국을 선교지로 지망한다. 한국에 오기 전 영어를 배우러 미국에 갔는데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성당에서 동가숙서가식, 미사도 드려주고 여행을 하면서 길 위에서 영어를 배우는 그의 공부방법이 참 놀라웠다. 한국에 도착하여 한국말을 배울 때도 그의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은 빛을 발한다. 한국어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던 무조건 외우라는 방식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벽에 붙은 벽보를 통해 독일어를 공부하는 대학생 그룹에 들어가게 되고 나중에 ‘우니타스’라는 독일어 성경공부모임으로까지 발전한 모임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공부하고 익히게 되었다.

그의 타고난 건강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은 놀라운 적응력을 보이며 본당 사제생활에서도 사랑이 넘쳐난다. 그리고 어린이 교리교육에 시청각 매체를 이용하여 흥미롭게 가르치고 어린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고 어울리면서 지내던 모습은 우리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풍광처럼 아름답다. 그때 만났던 두봉 주교는 젊은 선교사인 그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는 모범이었고 그의 강직함에 더욱 영향을 미쳤다. 사제의 양심과 책임, 신자들에 대한 신뢰를 한결같이 강조하고 더욱 낮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농민 사목의 토대를 마련한 두봉 주교의 시각은 그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비유로 하늘나라의 복음을 말씀해주시는 것에 창안해 영상매체를 통한 복음선교에 눈을 뜨게 되고 영상매체가 없던 시골 본당을 찾아다니며 문화의 응달에서 숨죽이고 사는 산간벽지의 신자들을 찾아가는 기쁨에 마음 설레기도 하였는데, 이는 장차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오는 나비의 날갯짓 같은 조용한 혁명이었다. 그리고 1971년 그에게 새로운 소임이 주어진다. 산업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 한국사회에서 베네딕도수도회는 이러한 시대 변화와 요구에 부응하는 선교활동의 시급성을 출판 사도직을 통해 찾으려고 하였다. 이런 중요한 때에 분도출판사의 책임자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하는 고민을 한다. 그리고 생각을 거듭해도 사람을 어떻게든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책,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답보다 더 좋은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 그는 이 나라와 이 시대에 책으로 말하는 선교사가 된 것이다.

그가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동안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좋은 책들의 특징적인 면모를 일일이 열거하기에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 다만 그가 심혈을 기울였던 헬더 카마라 대주교의 저서 「정의에 목마른 소리」가 그 특징을 잘 말해주고 있다. “현실 생활이 종교적 진리의 실천과는 거리가 멀거나 신앙 자체에도 배치될수록 아마 당신은 더욱더 깊이 진리를 사랑하며 정의를 위해 갖가지 어려움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가 이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초는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베네딕도 미디어를 통해서 그는 한국인들에게 인간성, 자유, 희망 등 나자렛 예수의 의식과 가치를 심어주는 영화들을 소개했다. 채산성도 사업성도 없었지만 영화를 통해 영성을 전달하고 싶은 열정은 오래전에 시작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안동교구에서 매달 영화포럼을 열었고 고인이 된 권정생 선생도 열렬한 동참자였다. 아마 예수님이 이 시대에 오셨더라면 영화감독이 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그는 이 사도직 때문에 겪어야 하는 모든 번거롭고 어려운 일들도 기꺼운 마음으로 감내하였다.

영화포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당한 교통사고, 여러 차례 받은 대수술도 그의 열정을 가로막지 못했고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그의 몸을 빌려 모든 일을 하고자 하신다. 사실 그는 자신을 통해 분도출판사가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칭송하기라도 할라치면 손사래를 치면서 거부할 것이다. 칭송의 허망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왜 고향을 떠나 여기에 있는지, 하느님이 자신을 통해 이루시려는 일이 무엇인지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은 독자가 인정해주는 것, 그러기에 우리는 이 노사제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진 은덕에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더 우리를 염려해주고 이 사회와 시대의 아픔에 민감했던 벽안의 노사제에게 경의를 표하며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한 우리의 미안한 마음을 달래본다.

[월간빛, 2012년 7월호,
김계선(에반젤리나 ·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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