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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교만, 그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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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3-23 ㅣ No.816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교만, 그 두 번째 이야기

 

 

교만함으로 치르는 대가

 

단테는 「신곡」 연옥편에서 세상에서 교만의 죄를 지은 자들이 연옥에서 단련받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세상에서 교만했던 자들은 연옥에서 한결같이 무거운 바위를 등에 얹고 생활한다. 그래서 등과 허리가 굽어져 영원히 아래만 보며 살게 된다.”

 

익살스럽지만 뼈 있는 말로 다가와 나에게 질문해 본다. “나의 등에는 어떤 크기의 돌이 올라가게 될까?” 하지만 현세에서의 교만함은 반드시 죽음 뒤에만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아닌 듯하다. 실제로 교만한 자들은 현실에서 자신이 더 중요하고 매력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우월감이라는 유익(?)을 얻는 대신 이미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며 살아간다.

 

첫째, 교만한 자는 외롭다

 

교만한 자는 동료들과 일하는 데서 어려움을 겪는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자신의 견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해결책을 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마치 짜증난 아이처럼 목청이 커지고 심하게 화를 낸다.

 

또한 이들은 어떤 자리에서든 자신이 가장 빛나야 하기에 그렇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면 매우 힘들어 한다. 이를테면, 뛰어난 대학에 모인 수재들의 경우, 그들 가운데서 예상 밖의 돌출 행동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가끔 볼 때가 있다. 가장 빛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와 지인들에게서 뛰어나다고 칭찬만 받으며 살아온 아이는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매우 고통스러워한다.

 

아울러 교만한 자는 스스로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동료들에게도 큰 어려움을 준다. 동료들은 그를 치켜세워야 하고 작은 업적도 부풀려 칭찬해야 하며, 일방적인 소통에도 어색하나마 미소로 답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만남이 끝나면 그 주변엔 아무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외롭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자신은 더 높아져야 하고 더 큰 힘과 능력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직장인들에게 교만한 자들은 왕따 1순위라고 한다. 그게 어디 직장뿐이겠는가? 혼자 살아야 할 사람이지만 그들만큼 사람이 필요한 이도 없다. 그런 그들이 딱해 보여 곁으로 다가서 보지만 ‘그 사람 안 되겠다.’는 확신이 더해질 뿐이다.

 

둘째, 늘 분노와 질투, 거짓과 허풍으로 가득 차 있다

 

교만은 분노와 질투의 뿌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교만한 자들은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여겨 다른 사람을 칭찬하기보다 깎아 내린다. 그래서 비판적인 판단이나 무시하는 말을 많이 한다.

 

또한 그들은 직장이나 성당, 가정 등 어디를 가든지 누군가를 지적하고 참견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 그 반면 자신에 대해서 누군가 비판하는 것에는 매우 예민하며 큰 분노를 느낀다. 이들은 마치 누군가의 말을 받아치려고 늘 경계하거나 매우 호전적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이다.

 

아울러 교만한 자들은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려고 거짓말과 허풍을 떤다. 이 때문에 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변에서 ‘뻥쟁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셋째,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건강하게 나이 들지 못한다

 

교만한 자들은 언제나 경쟁적인 관계 속에 산다. 그래서 화와 공격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거나 다른 이보다 우월함을 증명하려고 사소한 일에서도 논쟁을 벌인다. 모든 곳에서 우월감을 느껴야 하기에 그들은 늘 피곤하다. 가정과 직장, 성당에서 내가 가장 잘나가야 속이 시원한 이들은 그곳을 자기의 가장 편안한 장소로 만들지만 실상은 새로운 이나 세상과의 만남을 가장 경계한다.

 

특히, 지적 사회적 신체적 능력이 있거나 매력 있는 이의 등장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교만한 자들 가운데 실제로 능력이 있는 경우도 많고 사회에서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들은 늘 만족하지 못한 채 불안해한다. 자기 잘난 맛에 삶을 풍요롭고 품위 있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지리도 못났다.

 

이들은 나이가 드는 것을 매우 고통스럽게 받아들인다.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공허함을 한때 매력적이었고 사회적인 성공으로 연기는 했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하면서 우울을 경험하기도 한다.

 

한편 어떤 이는 심한 과대망상적 환상으로 성적인 측면에서나 힘든 활동을 하는 것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심지어는 신앙 안에서 자신을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여기면서 과대망상적 환상을 충족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환상만으로는 결코 비켜 갈 수 없는 것이기에 결국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신경증 환자와 교만

 

오늘날 많은 종교 심리학자가 칠죄종에 관하여 심리적인 차원에서도 연구하고 있다.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인 고든 올포트(Gordon Alport)는 많은 신경증 환자가 교만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그들의 행동을 묘사했다.

 

“만일 환자가 지나치게 예민하고 화를 잘 내며 트집을 잡는다면 그는 자신의 가치를 보여 주어야 하는 경쟁적인 상황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가 만일 우유부단하다면 어떤 일을 잘 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너무 세심하고 자기 비판적이면 자신이 얼마나 칭찬받을 만한 사람인지를 보여 주려고 안달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신경증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교만의 죄와 혼합되어 있다.”

 

 

자기애성 성격 장애와 교만

 

교만은 ‘자기애성 성격 장애’의 경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기애성 성격 장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가치에 대한 비현실적 개념,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적 사고, 환상에 빠진 생활,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도한 평가, 열등감, 다른 이에 대한 무시, 과도한 대우의 요구, 오만하고 건방진 행동이나 태도 등이다.

 

종종 교만과 건강한 자기애를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 정도는 건강한 자기애가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면서 말이다. 하지만 건강한 자기애와 교만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건강한 자기애는 타인을 대할 때 그 존재를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배려하고 존중하며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그 반면 건강하지 못한 자기애를 지닌 사람에게 타인은 자신을 사랑하고자 하는 도구이기에 공감과 배려나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종종 그들에게서 나오는 공감과 배려, 그리고 사랑은 결국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는 수단일 뿐이기에 그 깊이와 지속성은 매우 떨어진다.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마태 22,39)고 말씀하셨다.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넘어가라는 말씀이다. 나아가 이웃을 향한 사랑은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랑’(요한 15,13 참조)이라는 ‘자기희생’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 머물러 있는 이의 신앙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신앙과는 매우 다르다.

 

교만에 대한 심리적 접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 철학자 스피노자(1632-1677년)는 교만을 ‘정신 착란’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사람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실현될 수 없으며 자신이 그것을 행할 힘도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곧 ‘자신의 한계와 진실을 거부하는 병’이라는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교만의 치유제’가 이어진다.

 

* 김인호 루카 - 대전교구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신앙도 레슨이 필요해」,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하기」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성찰」, 「너무 빨리 용서하지 마라」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8년 3월호, 김인호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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