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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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교회문헌에 나타난 순례와 순례지 및 순례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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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7-21 ㅣ No.2185

교회문헌에 나타난 순례와 순례지 및 순례사목*

 

 

국문 초록

 

본 연구는 순례관광이라는 용어 사용이 일반화되는 현실에서, 순례와 순례지 및 순례사목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정리하는 데 목적을 둔다. 순례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 하느님이시라는 점, 그 하느님이 말씀과 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당신을 전달하신다는 점, 그리고 신앙인과 함께 순례의 길을 걸으시며 우리의 눈과 발이 어디를 향하여 나가야 할지를 하느님께서 알려주신다는 점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순례는 떠남과 걸음, 방문에서 끝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와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증거하는 삶까지 포함한다. 한편, 순례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는 복음화의 자리,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구세주이시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늘과 땅이 영원한 화해를 이루었음을 선포하는 자리이다. 순례지에서 이루어지는 복음화 노력은 말씀선포와 교리교육, 성사 등으로 집중되지만, 이와 더불어 자선활동을 통해 환대와 자비, 연대와 나눔, 도움과 베풂을 표현함으로써 순례지 방문자들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사랑과 현존을 체험하는 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순례지의 순례는 여가를 활용하기 위해 순례지를 돌아다니는 관광과 결코 같을 수 없다.

 

 

1. 들어가는 말

 

한국관광공사가 2021년 8월에 발표한 ‘한류 성지순례’ 관광 콘텐츠 개발 제안요청서에 나타난 ‘성지순례’는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이 제시한 어의1)와 일치하지 않는다. 여기서 성지순례는 한류 인기를 주도하는 대중문화인과 관련하여 팬들의 방문을 예상할 수 있는 지역(성지)을 돌아볼 수 있는(순례)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여기서 보이는 바와 같이, 순례의 의미를 ‘신앙의 목적으로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여 신앙을 성장시키는 활동’으로 국한시킬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순례관광이라는 용어가 점차 상용화되어 간다.

 

이처럼 순례와 관광이 맞물리는 지점에 서서 가톨릭교회의 순례지가 관광지인지 또는 가톨릭신자의 성지순례가 관광활동으로 분류될 수 있는지를 자문해 본다. 특히 순례관광에 집중하는 관광업계의 조류와 더불어, 성지를 관광자원으로 규정하고 거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정부의 관광담당 부서 활동을 바라보며 성지와 순례의 의미를 되묻게 된다. 그런데 이 질문은 순례지를 관광자원으로 바라보는 교회 밖의 사람들을 향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그보다 근본적으로 성지순례가 어떤 활동으로 채워져야 하는지, 성지개발은 성지 스스로의 어떠한 자의식을 딛고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교회 내부의 질문으로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안고, 교회 문헌에 나타나는 순례와 순례지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는 가운데,2) 순례와 순례지의 의미를 확인하려 한다. 

 

국내 가톨릭 신학계에서 순례신학이나 순례영성 또는 순례사목3)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다. 가톨릭 내에 성지에 관한 연구는 구본식의 「가톨릭교회의 성지순례의 기원과 중세의 순례에 대한 역사적 연구」4)와 이기락의 「순례영성과 우리나라 성지 사목의 현실에 대한 연구」5)를 꼽을 수 있다. 구본식의 연구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구약에 나타난 순례부터 중세기의 순례까지 순례양상이 변화된 과정을 정리했다. 구본식은 순례에 관한 기존 연구서에 의존하는 가운데 사회정치적 변화가 순례에 미친 영향과 순례가 성유해공경과 맞물려 빚어낸 양상을 함께 정리했다. 이에 비해, 이기락의 연구는 사목현장에서 순례를 지도하는 위치에 서서, 기억과 참회, 성사와 신심행사 참여를 중심으로 순례를 조명한다. 이기락은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관광이나 여행 차원의 순례지 방문 양상을 비판적이며 반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사전작업을 거쳐 이기락은 성지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전례를 어떻게 구성하며 순례자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순례에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안을 제시한다. 

 

구본식과 이기락의 논문은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에서 감지되는 문제점들을 극복하려는 귀중한 사목적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조발그니의 논문 「전환학습 관점에서 본성인 신앙교육으로서 성지순례」도 사목적 관심에 집중한 연구로 볼 수 있다. 조발그니는 종교교육에 집중하는 가운데 성지순례를 종교적 경험과 회심, 의사소통으로의 초대, 영성교육의 장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정리한다. 이처럼 사목적 관심에서 출발한 이들의 연구에서 순례와 순례영성, 순례사목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분석되지 않고, 순례의 신학적 기반이 정리되지 않은 것은 현장에서 드러나는 문제에 대한 대응방안 모색에 주요 관심이 놓였기 때문이라 보인다. 이러한 현실에서, 본 연구는 앞서 사목적 관점에서 제시된 연구를 보완하여 순례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여 성지순례가 보다 충실한 내용으로 신앙인의 삶에 자리잡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한편, 관광업의 시초를 서구 순례단의 활동에서 찾는 이가 있을만큼 교회 역사 안에서 순례와 관광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이 때문에 순례관광 개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본 연구는 순례 역사 안에서 순례 안에 관광적인 요소가 포함된 장면을 비추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다른 관점에서 보면, 순례관광이 현재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는지, 순례관광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이들의 순례이해는 올바른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정리하는 작업이 본 연구의 이해에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중 전자와 관련하여 말하자면, 필자가 순교자공경의 발자취를 성지순례와 성유해공경의 역사를 통해 정리한 바 있다. 또한 교회문헌에 나타난 순교와 성인공경 등에 관한 가르침도 필자의 연구에 담은 바 있다.6) 본 연구는 앞선 연구의 연장선에 서서 순례에 대한 교회의 발표 뒤에 놓인 배경을 살펴보며 순례와 순례지, 순례사목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집중하고자 한다. 더불어 제기된 두 번째 문제, 곧 순례관광과 관련한 내용분석과 현황파악은 교회문헌 내용 파악에 집중하기 위하여 이번 연구에는 포함시키지 않고, 추후 별도의 논문을 통해 정리하려 한다.

 

본론에 앞서, 이 글에서 사용하는 성지와 순례지 용어의 혼용문제를 명확히 정리하려 한다. 엄밀하게 보자면, 교회는 성지[聖地](terra sancta, holy land)와 순례지(sanctuarium, santuary)를 구분한다. 이에 비해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성지와 순례지의 구분 없이 모두 성지로 표기하고 있다.7) 이는 한국천주교용어위원회가 밝힌 입장 “‘성지(terra sancta)’는 본래 예수님과 관련된 이스라엘 땅을 말하지만, 성모님이나 성인 또는 순교자 관련 사적지나 순례지를 일반적으로 ‘성지’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는 문제 삼지 않는다”는 입장표명을 따르기 때문이다.8)

 

본 글에서 언급되는 순례지는 한국 교회에서는 성지로 불리지만, 교회가 말하는 성지(Terra Sancta)가 아님이 분명하다. 이런 경우 이 글에서는 굳이 성지라는 단어로 바꾸어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성지순례를 순례지순례로 바꾸어 사용하지도 않는다. 이는 본 글의 논의에서 성지와 순례지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음이 글의 내용 이해나 논지전개의 선명성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다.

 

 

2. 교회 문헌의 순례 정의와 그 배경

 

순례는 교회역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새긴 대중신심9)으로서 성화상공경과 성유해 공경 등의 대중신심과 맞물리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10) 이처럼 실천적인 활동인 순례가 신학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계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전례운동을 이끌었던 대중신심의 다양한 양상과 교회가 직면했던 상황에 대한 위기 인식이 놓여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자들은 대중신심을 전례로 집중시키고, 모든 인간이 하느님을 향하도록 창조되었다는 신학적 이해를 ‘순례’ 안에 녹여내며, 세상 안에서 세상을 통해 세상과 함께 구원 여정을 걸어가는 교회관을 제시했다. 이하에서 살펴볼 순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서 순례가 그리스도와 전례로 수렴되는 동시에 모든 인류가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는 여정으로 제시되는 것은 이러한 공의회 신학의 기반과 방향성을 드러낸다. 

 

교회역사와 신학 흐름에 쇄신의 바람을 불어넣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무엇보다 교회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이전과 다른 변화를 보여주었다.11) 이 공의회는 이전까지 교계제도(hierarchia)나 제도(institutio) 측면을 강조하던 교회론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백성’과 ‘성사’로서 교회를 이해하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교회가 세상과 세상의 전례 안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 은총과 구원의 상징적 현현이라고 천명하는 연장선에 순례하는 교회(Ecclesia peregrinans) 개념이 자리잡는다.12)

 

교회를 순례자와 연결시키는 전통은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지켜졌다. 특별히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 430)가 『신국론(De Civitate Dei)』에서 다룬 순례자 개념이 이후 교회의 순례 개념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데 무리가 없다.13)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말하려는 ‘순례하는 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순례 개념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신국론』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외교인 한가운데를 여행하는’(inter impios peregrinatur) 모습을 교회와 연결시킨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를 순례자로 이해하는 배경은 410년 경에 서고트족이 로마를 약탈한 상황이다.14) 이러한 상황 안에서 이 책에서 100번 가까이 사용되는 peregrinatio는 경건하지 않은 무리와 구별되어 그들과 화합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순례자 교회는 지상에서 나그네로 머물며 진정한 고향을 향해 나아감을 의미하는 데 방점을 둔다.15)

 

이에 비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순례하는 교회를 언급할 때에는 세상을 교회와 완전히 다른 이방인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전제된다고 말할 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 공의회는 모든 문화와 민족 안에 구원은총이 작용하며 하느님께로 정향된 인간 이해를 그 바탕에 두기 때문이다.16) 이런 점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제시하는 순례하는 교회는, 순례하는 교회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질 뿐 이 세상 밖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을 전제하지 않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있어서 이 개념은 오히려 세상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가운데,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는 교회의 역할을 전제한다. 이러한 이해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비오 12세 교황의 표현보다 한 걸음 더 진보한 교회이해로 볼 수 있다.17)

 

이러한 맥락에서 제2차 공의회에 나타나는 순례에 관한 서술18)이 실제로 신앙인이 실천하는 성지순례보다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신학작업을 다루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19) “순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상황을 나타낸다(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49항)”는 문장에서 이를 감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비록 교회가 공의회문헌을 통해 순례를 신학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를 보였다 하더라도, 신자들의 실천에서 실현되는 순례를 배제하거나 그 의미를 등한시하지 않았음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까지 교회가 발표한 여러 문헌에서 실천으로서의 순례의 의미를 제시하는 가운데, 순교자 공경을 전례로 수렴시키는 교회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교회는 분명한 어조로,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자기 신앙의 기념인 순례는 파스카 실존의 성취로서, 전통에 따라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예배의 표현20)이라고 천명한다. 이와 관련하여 『교회의 순례지』 1항21)은 “순례지는 교회 안에서 매우 큰 상징적 가치를 지니며. 순례는 참다운 신앙고백”이라 선언한다.

 

순례를 통해 인간은 하느님과 긴밀한 일치 안에 머무르도록 제시된 길은 그리스도, 곧 사람이 되신 말씀임을 발견한다. 그리스도인 순례자의 여정은 이렇게 다른 모든 종교와 그리스도교가 구별되는 본질적 요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모든 순례는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이름 없이 멀리 있는 어떤 능력이 아니고 바로 아버지이시라는 사실을 증언해야 한다.22)

 

인용한 위의 구문은 그리스도인의 순례가 영적인 능력을 고양하기 위한 훈련이나 신비한 힘을 느끼기 위한 여정이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순례와 결코 같을 수 없음을 확인해 준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순례의 영성은 종말론적 차원23), 참회의 차원,24) 축제의 차원,25) 경배의 차원,26) 사도적 차원,27) 친교의 차원28)을 지닌다.

 

한편, 교회는 여정으로서의 순례가 갖는 역동성을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여기에는 출발과 걷기, 순례지 방문만이 아니라 되돌아옴까지의 여정이 모두 포함된다. “출발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들의 결단을 드러내며, 세례성소의 영적 목적을 성취한다. 걸어감은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하는 연대와 주님과 만날 준비를 하도록 이끌어준다. 순례 방문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사 거행에 참여하도록 그들을 초대한다. 끝으로 되돌아옴, 곧 귀향은 세상에서 구원의 증인이며 평화의 건설자로 부름받은 그들의 사명을 상기시켜 준다.”29)

 

교회는 이러한 순례가 보편적인 신앙의 체험이라 규정30)하면서 개인 또는 공동체가 함께 걸어가는 순례의 본질적 측면을 교리교육을 통해 제시하기를 촉구한다.31) 이에 따르면, 남녀 순례자들과 함께 하는 공동생활의 체험은 하나의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한 몸을 이루며, 사랑으로 일치하여 찬미가를 부르며 평화의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하느님 백성임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된다.32) 이 지점에서 간과될 수 없는 점은 그리스도인 순례자의 여정이 다른 모든 종교와 그리스도교가 구별되는 본질적 요점, 곧 창조주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보여주어야 한다33)고 강조하는 교회의 가르침이다.

 

이처럼 순례를 그리스도와 성사로 집중시키고 마리아와 연결시키는 교회의 입장은 다음 구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 여정은 선명하게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성당에서 순례자는 하느님의 신비와 접하며 사랑과 자비로 넘치는 그분의 모습을 발견한다. 특히 이러한 체험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심오한 신비의 계시의 정접에 계시는 파스카 신비의 성찬례에서 이루어진다. 성체성사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언제나 기꺼이 은총을 내려주시고, 모든 성인에게 찬사와 현양을 받으시는 하느님을 관상한다.34)

 

순례가 마리아와 연결되는 고리는 여러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반포한 회칙(Enciclica)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는 마리아를 ‘인류를 향한 순례와 인류의 신앙 순례를 하나로 만나게 하시는 마리아께서는 신앙의 순례를 앞서가신 분’이라고 언급한다. 이러한 입장은 마리아의 태를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막으로 보는 설명35)과도 연결된다. 또한, 여기서 교회가 성인이나 마리아를 공경하는 대중의 신심을 예수 그리스도와 전례, 특히 성체성사로 수렴시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이때 교회는 동정 마리아께 대한 신심행위가 본질적으로 삼위일체적이고 그리스도론적인 차원을 명백히 표현해야 한다36)고 분명한 목소리로 강조한다.

 

한편, 교회가 순례를 제시하고 장려하는 근본적인 뿌리에 복음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교회는 순례를 통해 신앙인이 성숙한 신앙을 체험한다는 점을 중시한다. 그렇지만, 교회가 다루는 순례의 범위는 신앙인들이 순례지를 향해 출발하고 그곳에 머문 후 되돌아오는 순례 여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순례하는 교회라는 신학적 관점을 적용하여 교회는 구약과 신약뿐 아니라 교회역사상의 순례 역사와 오늘날의 순례 양상을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순례자’라는 틀로 설명한다.37)

 

이상의 내용을 위한 논리 흐름에서 순례는 신앙인들의 순례지 순례뿐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의 성지 방문과 여행 등을 모두 포함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아야 하는 바는 순례를 비그리스도인의 순례지 방문이나 여행 등의 활동과 연결시키는 논리이다. 여기에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을 향하고 갈망하도록 창조되었다는 인간관이 놓여있고, 그에 입각하여 이 세상에서의 인간 삶이 하느님을 향하는 순례 여정이라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가 발표한 『대희년의 순례(Pilgrimage in the great jubilee)』38)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문헌은 이스라엘의 순례, 그리스도의 순례, 교회의 순례, 제삼천년기를 향한 순례, 인류의 순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순례를 살피며 순례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함축적으로 정리한다. 이 문헌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 및 성서신학적 근거 그리고 교회 역사에서 전개된 순례 양상을 모두 포괄하는 가운데 교회의 순례 이해를 추출하는 장면이 드러난다.

 

순례는 어머니의 배를 벗어나자마자 시간과 공간 속으로 존재의 여행을 시작하는 나그네인 인간(homo viator)의 체험을 상징한다. 이것은 약속의 땅, 곧 구원과 완전한 자유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의 근원적인 체험이며, 예루살렘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심으로써 하느님 아버지께 가는 길을 여신 그리스도의 체험이고, 역사를 통해 천상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의 체험이며, 희망과 충만을 향해 가는 온 인류의 체험이다.39)

 

위 인용문의 내용 중 비그리스도인의 활동을 순례와 연결시키는 고리는 ‘나그네인 인간’이다. 하느님을 향하여 하느님을 찾아나가는 인간의 모든 활동, 특히 종교와 문화적 활동이 순례로 연결되는 지점이 여기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참되고 실제적인 여정의 조직망이 전 세계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직접적인 의미의 종교적인 것으로 도시, 성당, 수도원, 사적지 등이 그들의 목적지이다.…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경우는 빼어난 자연경관, 섬, 사막, 산, 깊은 바다 등을 찾는 경우이다.…이러한 여러 형태의 인간 이동에는 진리와 정의와 평화라는 이념적 지평을 향한 근원적인 갈망의 싹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평안히 쉴 수 있는 무한의 하느님을 찾아 끊임없이 항해를 계속하는 인간의 불안을 입증해준다. 그러므로, 인류의 행보는 긴장과 모순 속에서도 필연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에 참여한다.40)

 

그 연장선에서 교회의 순례 이해에 난민, 민족의 대이동, 여행, 과학탐구, 무역, 전자통신을 통해 보급되는 정보가 포함41)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교회는 다른 종교에서 행하는 순례와 인류가 그 앞에서 반성해야 할 지점을 찾는 발걸음을 순례로 포용한다. 이때 강조되는 점은 초월과 형제애이다.42) 이러한 형제애의 연장선에 힘없는 이들, 난민, 망명자, 압박받는 이들을 돕는 일에 정열과 성실로써 헌신하는 모든 이와 함께 형제애의 순례를 하는 교회가 자리잡는다.43) 교회는 이 여정에서 그리스도인의 순례는 이러한 인류의 추구와 함께 이루어지며, 안전한 목적지, 다시 말해, 당신의 백성을 찾아와 해방시키신 하느님의 현존을 제시한다(30항)고 가르친다.44) 이는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순례가 복음화와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교회는 순례를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갈망과 연결시키고, 그 안에 종교와 문화활동뿐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활동을 모두 포함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신자들이 종교적인 목적으로 행하는 순례와 비종교인들의 다양한 활동을 동일시함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를테면 순례지로 지정된 곳을 여행 목적으로 방문하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이 그들의 종교 관련 주요 지점을 방문하는 일, 또는 자연 안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여행이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형제적 연대 안에 보다 나은 세상을 건설하려는 일들이 광범위한 순례, 곧 인간이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는 여정으로 이해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점에서 순례지를 관광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은 그들 자신이 인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안에 하느님을 향한 근본적인 갈망이 있다는 점에서 순례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즉, 교회의 가르침에 비출 때, 순례가 관광과 동일시되거나 순례가 관광의 한 예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순례를 종교관광, 문화관광의 한 부류로 구분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순례는 관광과는 다른 목적을 가진, 신앙인의 신앙실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순례를 관광과 엮어서 ‘순례관광’이라 분류하는 것은, 마치 공중을 나는 비행과 물속을 수영하는 행동을 동시에 실행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순례관광이라는 개념은 이런 점에서, ‘동그란 세모’를 주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3. 순례지와 순례사목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그리스도와 성체성사로 집중되는 교회의 순례 이해는 순례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서도 확인된다. 교회가 주의를 기울이는 대목은 성인이나 현상과 결부된 구체적인 장소가 갖는 특수성과 지리적 특정성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역사적 사건과 맺는 관계이다. 교회는 이와 관련하여, “강생의 신비는 거룩한 장소를 상대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말로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거룩한 장소에 대한 보편적 체험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한다”45)고 언급함으로써 순례지가 갖는 특별한 의미를 절대화시키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라는 원천에 결부시킨다.

 

순례지를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의 구원의 현존을 보여주는 표시로 제시하는 가르침46)에서도 이러한 교회의 자세를 재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교회는 순례지와 관련된 특정 성인이나 현상에 집중하고 그에 머무르기보다 그 안에서 활동하시며 이를 이끈 근본적인 원천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한편, 교회의 가르침에서 순례지는 신학적으로 인간존재의 기원을 기념하고, 하느님 현존의 장소이자 하늘 본향에 대한 예언이라는 세 가지 차원을 갖는다. 문헌은 이를 다음과 같이 상술한다.

 

인간 존재의 기원에 대한 기념인 순례지는 하느님의 앞장 서심을 상기시키고, 순례자들이 경외와 감사와 헌신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이끄심을 받아들이게 한다. 하느님 현존의 장소인 순례지는 하느님의 성실하심과 지금도 말씀과 성사를 통해 당신 백성 가운데서 쉬지 않고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증언한다. 하늘 본향에 대한 예언인 순례지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약속에 따라 장차 완성된 하느님 나라를, 그리고 우리가 그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순례지는 우리의 궁극 목적에 대한 모든 것의 상대성을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를 하느님과 화해를 이룬 인류의 새 성전으로 계시한다.47)

 

순례지의 신학적 차원을 압축한 위의 인용문은 국내 성지순례를 비춰보는 거울과도 같다. 성인들의 죽음과 삶을 기억하는 우리의 순례문화 안에 그 기억을 위의 인용문에서 언급하는 폭과 깊이로 성찰하는 노력이 담겨 있는지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회가 제시하는 순례지의 기능은 하느님 자녀들의 여정을 인도하는 이정표로서,48) 교회 공동체의 모임과 만남과 건설을 증진(1항)하는데 초점이 놓인다. 이를 위해 순례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정성되이 전하고, 특히 성찬례와 참회의 성사를 거행함으로써 전례생활을 촉진하며, 교회가 승인한 대중신심을 보급시킴으로써 신자들에게 풍성한 구원의 수단을 제공한다고 교회는 규정한다.49)

 

이러한 언급에 포함되는 순례지는 예루살렘 성지나 로마의 순례지, 산티아고 순례길, 또는 마리아신심과 관련된 순례지뿐 아니라 순교자와 관련된 순례지도 포함된다. 교회는 이러한 순례지들이 교회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짚는 가운데, 그 역사에서 인류복음화를 위한 하느님의 구원활동과 은총에 주목하도록 이끈다.50) 여기서 우리는 순례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에 머물지 않고 교회를 통해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구원활동에 주목하라고 강조함을 확인할 수 있다.

 

순례자들은 이러한 순례지에서 자기 존재의 본질적 차원을 발견하고, 하느님과의 친교와 동정 마리아의 온유하심 그리고 성인의 통공을 깊이 체험한다고 교회는 말한다.51) 순례지가 제공하는 전례와 기도, 은총 등은 대체로 순례지가 갖고 있는 풍광과 더불어 휴식과 침묵, 관상을 갈망하는 순례자에게 많은 선물을 전해준다. 그 선물은 하느님을 향한 근본적 향수와 자신의 재발견 및 회심에 필요한 힘, 그리고 일상생활을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는 힘이다. 순례자는 이를 통해 순례여정으로부터 일상으로 되돌아간 이후에도 확신에 찬 증언을 통해 복음화에 투신할 수 있는 불꽃을 받는다.52)

 

이처럼 순례지가 신앙인에게 주는 의미는 한두 가지로 국한되지 않는다. 교회가 제시하는 순례지의 의미는 순례가 지닌 세 가지 신학적 차원-인간존재의 기원에 대한 기념, 하느님 현존의 장소, 하늘 본향에 대한 예언을 상기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순례지가 신앙인에게 주는 의미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53) 1) 항구한 신심을 불러일으킨 특이하고 놀라운 사건을 기념하거나 많은 은총을 입은 신자들의 감사의 마음과 신심을 보여주는 장소, 2) 자비의 표징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하느님의 도우심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인들과 복자들의 전구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 3) 흔히 높고 한적하며 엄숙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우주의 조화를 보여주며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묵상하는 장소, 4) 설교를 통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사랑의 생활과 자비 활동을 더욱 강화하도록 초대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권고하는 장소, 5) 성사 생활의 실천을 통하여 신앙심을 더욱 굳건히 하고 은총 안에서 성장하며 고통 가운데서도 위로와 위안을 얻는 장소. 6) 복음 메시지의 선포를 통하여 하느님 말씀을 새롭게 해석하고 조명하는 장소, 7) 종말론적인 시각과 초월성에 대한 의식을 기르고, 지상의 발걸음이 천상의 성전을 향할 수 있게 장려하는 장소이다. 

 

위에 나열된 순례지의 의미는 “모든 그리스도교 순례지는 하느님을 보여주고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분의 현존을 드러내는 변함없는 표지였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순례지들은 저마다 주님의 강생과 구원활동을 기념한다”54)는 내용과 충돌하지 않는다. 다만, 앞의 나열된 내용이 실제로 신자들이 순례지를 찾아가는 동기와 순례지에서의 경험 등을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연약한 인간이 어려움에 직면하여 성인들의 전구를 통해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고, 특별한 표징을 경험하는 대중신심을 순례지의 의미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신학적인 순례지 이해를 보충하는 의미를 보여준다.

 

한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순례가 하느님의 말씀과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로 수렴하는 가운데 본연의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순례지에 대한 특별한 주의와 배려가 필요하다. 교회는 이와 관련하여 순례지를 맡은 사제의 역할을 언급한다. “사제는 하느님의 가족을 형제적 일치단결로 모으고,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아버지이신 하느님에게 인도한다. 이 직무 수행을 위해 사제는 구체적인 교리 교육 준비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하고 명확하게 전달해야 하며 모든 순례자의 문화적 현실 표현과 그들의 신앙생활을 반영하여 그들이 교리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55)

 

이처럼 순례지에서의 사목을 강조하는 교회 가르침에서 순례와 분리불가분한 순례지56)는 순례신학의 연장선에서 그 의미와 기능이 규정된다. 이때 교회가 말하는 순례지는 순례지로서 교회법적 승인을 받은 곳에 한정되며,57) 순례지로서의 유효성은 현대의 혼란한 생활 리듬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갈증, 곧 하느님과 그들 자신과의 고요하고 주의 깊은 만남에 대한 증대되는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판정된다.58)

 

지금까지 정리한 순례지에 관한 논의에 기반하여 우리는 순례지의 고유한 기능을 전례증진59)에 두고, 고해성사의 장소로 순례지를 바라보며,60) 성찬례 거행61)과 병자성사,62) 준성사63) 및 기도장소 제공을 강조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

 

교회가 순례지의 이러한 기능을 통해 제시하는 순례지 사목의 궁극적인 목적은 ‘복음화’에 있다. “순례지는 하느님을 복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는 자리”64)라고 분명하게 선언하는 교회 가르침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순례지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쁜 소식,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구세주이시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늘과 땅이 영원한 화해를 이루었음을 선포하는 자리이다.65)

 

교회의 가르침은 순례지에서의 복음화 노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우선, 교회는 순례지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할 때 만민 선교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그 방식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초대하거나, 인내를 권고하고 정의의 요구들을 상기시켜 주며, 위로와 평화의 말을 전하는 등 다양한 길이 있다.66) 또한 자선활동을 통해 환대와 자비, 연대와 나눔, 도움과 베풂을 표현함으로써 순례지가 복음화를 전개하는 좋은 장소가 될 수 있다고 교회는 말한다.67)

 

교회가 실천하는 이러한 사랑과 환대는 비단 순례지에서만 실천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순례의 여정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치는 동시에 순례지에서 헌금모금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가르친다.68) 또한 병자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순례여정과 순례지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69) 이렇게 말하는 교회의 순례지 이해는 순례지의 특별한 은총으로 치유되는 경험을 배제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사랑은 속죄의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은체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지상 순례 동안에 보여 주셨던 것처럼, 치유하고 위로하는 기적의 표징들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표징들은 순례지의 역사에서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순례지에서의 사목은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순례의 기회를 활용하고, 환대사목에 주의를 기울이며, 순례자의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문제들에 함께해야 한다.70) 이러한 순례지의 자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며, 순례자로 하여금 하느님으로부터 환영을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특히 교회는 젊은이들이 순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경험할 수 있는 환대사목에 노력을 기울이라고 독려한다. 이러한 활동 안에서 순례지는 성찬례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는 장막을 넘어, 자신을 만나고 사랑을 만나는 장막과 인류를 만나는 장막으로 자리잡게 된다.

 

교회는 “이러한 순례 여정을 마친 순례자는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의 혼란이나 피상적인 일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며, 그들이 받은 영혼의 불꽃을 간직하게 될 것이고, 순례의 길을 떠날 적에 주님께 힘을 얻었던 개인적 충만함을 두고두고 체험할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렇게 순례자는 교회의 전례 기도와 가장 단순한 신심 수련, 개인기도와 침묵의 시간, 상전의 손만 쳐다보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묵상을 병행하는 여정을 다시 계속해 나간다”는 내용으로 순례가 순례자의 삶에 심어주는 변화를 정리한다.71)

 

또한 교회 가르침에 따르면, 순례지의 사목은 무엇보다 순례의 그리스도교적 특성을 온전하고 충실하게 지키는 가운데, 순례자가 자기 여정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게 도움으로써 복음화의 과업을 실현할 수 있다. 교회의 이러한 입장과 가르침에는 순례지를 찾는 비그리스도인에 대한 복음화 노력이 감지된다. 이는, 교회문헌이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도록 만드는 삶의 특별한 상황에 놓이게 될 때 자주 순례지를 방문하게 된다. … 삶에 대하여 묻지도 않는 종교적 무관심이 복음화 노력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이 시대에 순례는 매우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복음 전파를 촉진할 수 있다”고 말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교회는 순례자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물음을 알아차리고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이 그리스도 한 분이심을 제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곧 영혼 안에 깃든 행복에 대한 갈망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해답을 찾게 되고, 그분과 함께할 때 인간의 고통은 의미가 있으며 그분의 은총으로 가장 숭고한 목적 또한 완전하게 이루어진다72)는 것을 순례자들에게 전달하는 가운데 선교활동을 전개하기를 촉구한다.

 

그런데, 순례사목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순례지를 문화의 중심지와 교회일치운동의 중심지로 제시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이해가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 천주교회의 성지개발을 둘러싸고 종교간 갈등과 더불어 교회 내부에서 비판적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우선, 교회가 순례지를 문화의 중심지로 설명하는 점은 천주교회의 많은 순례지와 유산이 유형, 무형의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담고 있는 상황을 반영할 때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구문을 살펴보기로 하자.

 

순례지는 흔히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순례지는 역사적 예술적 기념물, 특별한 언어 형태와 문학 형태, 음악 작품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의 여러 가지 표현들을 종합한다. … 순례지는 은총과 본성, 신심과 예술을 조화롭게 종합할 수 있으므로, 하느님의 아름다움과 지극히 아름다운 신비와 모든 성인의 놀라운 업적을 관상하는 아름다움의 길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양으로 제시될 수 있다.73)

 

위 인용문의 내용은 서양에 산재한 유명하고 오래된 교회의 벽화와 건축을 떠올릴 때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교회는 순례지에서 성화상 제작이나, 음악회, 기타 다른 예술 문학 활동이나 중요한 출판물 출판. 교육과정. 강의준비를 통해 문화를 통한 선교를 전개하라고 독려한다.

 

이처럼 순례지가 지닌 문화유산의 가치를 논함에 있어서 교회는 아시아교회의 순례지와 아시아지역의 종교상황을 고려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 내용은 종교유산이 문화유산에 포함되는 아시아 순례지들을 감안할 때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아시아의 순례지들은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를 촉진한다. 이는 아시아 순례지들에 다른 교회와 교회 공동체의 순례자뿐 아니라 다른 종교 신자들도 방문하기 때문이다.…아시아에서는 신앙이 각국의 문화 요소들 안에 표현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고 그 문화를 쇄신하기도 한다.” 이러한 교회의 언급은 문화의 복음화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교회역사에 있어 그리스도교가 불러일으킨 가치관과 사고방식, 문화의 변혁에 관심을 기울이는 성지 개발과 성지사목의 길을 비춰준다. 그런데 교회가 순례지를 교회일치운동과 종교 간 대화의 장소로 바라볼 때, “모든 예배 행위는 가톨릭 신앙과 언제나 분명하게 일치하여야 하며, 교회의 신앙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흐려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내용을 주의 깊게 새겨야 할 것이다.74)

 

교회는 순례지를 비종교적인 이유로 방문한 이들에 대한 순례지의 사목도 언급한다. 그런데 아래에 인용하는 구문을 이해할 때 교회의 순례이해가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전례와 성체성사로 수렴된다는 점을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 교회는 이런 신학적 바탕 위에 자연이나 문화유산을 보기 위해 또는 정신 수양이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에 대한 순례지 사목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교회는 순례지에서 이들에게 여러 장소와 기념물을 소개함에 있어서 그 대상이 순례자의 여정과 그 대상이 향하는 영성적인 목표와 그들의 신앙체험이 일련의 뚜렷한 관계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교회는 순례지를 여행 목적으로 방문한 이들의 경우, 이러한 여행을 주관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그러한 장소와 기념물들이 여행자들의 수양과 정신 향상에 진정으로 기여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내용은 순례지와 그 주변에서 만나는 자연과 문화유산을 대하는 교회의 가르침이다. 교회는 순례가 지닌 정신적 차원, 곧 빼어난 경관이나 예술품, 대중적이고 세련된 문화유산을 소중히 대하며 그 안에서 담긴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을 향한 갈망과 기쁨, 희망 등에 귀기울이며 하느님께 나아가라고 조언한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은 타종교와 문화 안에 작용하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은총과 그에 응답한 인간의 반응이 담겨 있다는 신학적 입장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성지순례에서 순교자를 따르는 극기만을 강조하거나 순교자의 죽음을 바라보는 데 치중한다면,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은 “성지순례 여정에서 접하는 자연경관이나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가 담긴 유물에서 하느님과 하느님을 향하는 인간의 마음을 발견하라”는 조언을 우리에게 전해준다.75)

 

 

4. 나가는 말

 

본 연구는 순례관광이 교회 안으로 스며들고, 순례를 관광이나 단체회원 간의 단합을 위한 나들이로 바라보는 시류를 거슬러 교회가 가르치는 순례의 의미와 영성 및 순례지에 대한 신학적 근거와 내용을 정리하고 이에 기반하여 순례지 사목이 담당할 과제를 함께 정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본 연구에서 정리된 바와 같이 순례는 인간이 자신의 기원을 다시 확인하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초대받은 성사에 온전히 참여하는 은총의 시간이다. 또한 순례는 우리의 오늘이 단지 낱낱이 흩어지는 무의미한 시간의 파편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완성될 여정의 길 위에 수놓아지는 순간들임을 알려준다. 이는 비록 이 세상에 살지만 장차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 누리며 하느님의 구원과 현존을 선포하는 순례의 의미를 말해준다. 순례는 우리를 순례로 초대하고 순례를 동반하며 당신에게로 이끄는 하느님을 친밀하게 만나 그 손을 잡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이러한 순례자의 순례는 기분전환이나 여가선용을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규정되는 관광과 그 목적이 다른 활동이다. 순례와 관광은 결코 병존할 수 없는 서로 다른 길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정리된 바와 같이, 설사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하느님을 찾고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활동은 하느님을 지향하는 순례의 여정이라고 교회는 말한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관광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찾고 주변 세계를 둘러보며 성스러움과 신비로움을 누리려는 인간의 마음 안에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이 있는 한에서, 관광은 순례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순교자의 핏자국이 그들의 삶에 대한 기억 안에서 생생하게 진동하는 한국 성지의 순례는 지금까지 살펴본 교회의 순례지 순례 가르침에 맞춤옷처럼 딱 맞지는 않는다. 그 간극의 출발점은 교회의 순례가 가진 구체적인 역사성이 한국성지보다 약하고, 대중신심 안에서 시작하고 성장한 성지를 많이 포함하는 데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한국의 교회사와 성지 현실을 담는 순례신학을 고민하고 세계교회와 나누며 정리하는 작업이 한국 교회와 신학자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의 가르침이 한국 교회 신앙인이 행하는 성지순례 양상에 큰 거울이 됨을 부정할 수 없다. 교회사 지식을 확인하는 선에 그치거나, 순교자들의 죽음에 함몰된 기억과 따름을 강조하는 순례라면, 이에 대해 교회의 가르침은 순례의 깊고 맑은 영성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성지순례는 기도와 말씀, 성사에 집중하며,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순교의 길을 걸었던 이들이 만난 하느님을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도 만나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의 현존과 구원을 삶으로 증거한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만나는 순간은 그 안에서 활동한 하느님이 우리도 순교자의 삶을 걸어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 손을 잡고 세상을 걸어갈 힘을 얻는 순간이다. 이 기억과 회심과 충만한 경험이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거슬러 물질중심주의, 성공제일주의, 생명경시주의 등을 드러내는 야만적인 흐름을 거부하고 조용하고 묵묵하게 사랑과 섬김과 나눔을 살아가도록, 그래서 이 시대의 순교자가 되도록 우리를 이끈다. 그 순간 우리의 자리가 순교의 자리, 성지가 되는 은총이 세상을 적실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성지가 숨막히는 거대한 규모나 순교자의 죽음에 치중한 전시보다 고요한 곳에서 소박하게 신앙을 표현한 유산을 소중히 간직하며, 순교자를 기억하고, 오늘 이 자리에서 자신에 의해 재현될 수 있는 순교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과거의 순교를 현양함과 동시에 오늘 자신이 결행할 수 있는 순교가 무엇인지를 발견해 내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말해준다.

 

성지는 발을 들여놓은 순간, 자신을 휘감는 정적과 고요함이 번잡한 일상과 사고를 내려놓게 하고, 정성스럽게 준비된 강론과 성사에 참여하는 가운데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하느님 앞에 오늘의 순교자로 자신이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결단의 장소이다. 이러한 성지를 향하는 순례는 그 출발부터 함께 하신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 하느님의 말씀이 신앙의 힘과 영혼의 양식이 되어줌으로써, 세상 안에서 우리 자신이 순교자로서 살아가고 우리 삶의 자리가 순교의 자리임을 확인하고, 또 자신이 있는 바로 그곳을 다른 새로운 성지가 되는 변화를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참고 문헌

 

1.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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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에스파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교구, 『제2차 세계 순례와 순례지 사목 대회 최종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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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ssen, M. A. “‘Peregrinatio’ and ‘Peregrini’ in Augustine’s ‘City of God’”, Traditio 46,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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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cks, Jared Investigating Vatican II: Its Theologians, Ecumenical Turn, and Biblical Commitment. CUA Press, 2018.

 

2. 논저

 

구본식, 「가톨릭교회의 성지 순례」, 『가톨릭사상』 27, 2002, 35~80쪽

권영파, 「그리스도교 순례전통 역사의 의미 고찰-한국교회의 성지순례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작업」, 『부산교회사회보』 108, 2022, 96~128쪽,

권영파, 「가톨릭교회 성화상공경의 발자취」, 『부산교회사회보』, 109, 2022, 95~116쪽.

권영파, 「순교자공경의 변용과 적용」, 『부산교회사회보』 110, 2022, 96~116쪽,

권영파, 「교회문헌에 나타난 순교자공경」 111, 2022, 96~116쪽. 

권영파, 「성지,문화유산 그리고 관광」, 해미신앙문화연구원 제1회 학술심포지엄 발표논문집, 2022년 11월 5일, 111~137쪽.

김영래, 「순례와 기독교교육: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 닮고, 따라 살면서」, 『신학과세계』 99, 2020, 363~396쪽.

신정훈: 페터 휘너만, 『인류의 빛-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420~421쪽.

요한 바오로 2세, 아르헨티나, 코리엔테스 시에서 행한 강론(1987.4.9.).

이기락, 「신앙생활과 성지순례: 순례사목을 중심으로」, 『신학과사상』 57, 2006, 129~151쪽.

전영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유동인에 대한 환대」, 『인간과 평화』 1, 2020, 81~100쪽.

조발그니, 「전환학습 관점에서 본성인 신앙교육으로서 성지순례」, 『신학전망』208, 2020, 166~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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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성지순례’의 의미는 순례자가 종교적 의무를 지키거나 신의 가호와 은총을 구하기 위하여, 성지 또는 본산(本山) 소재지를 차례로 찾아가 참배하는 일이다.

 

2) 본 연구에서 살펴본 교회문헌은 다음과 같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 『거룩한 공의회』(1963.12.4.);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인류의 빛』(1964.11.21.);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대희년의 순례(The Pilgrimage in the Great Jubilee)』(1998.4.25.);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구원 역사화 관련된 장소의 순례에 관하여(Concerning Pilgrimage to the Places Linked to the History of Salvation)』(199.6.25); 교황청 이주사목위원회, 『순례지: 살아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기억, 하느님의 현존, 그리고 하느님의 예언(The Shrine: Memory, Presence and Prophecy of the Living God)』(1999.5.8.); 교황청 경신성사부,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Directory on Popular Piety and the Liturgy: Principles and Guidelines)』(2001.12.17.);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제2차 아시아성지순례사목대회 최종문헌(Final Document, Pilgrimages and Shrines, Gifts of God-Love in Asia Today, the Second Asian Congress on the Pastoral Care of Pilgrimages and Shrines)』(2005.11.23); 교황 베네딕토 16세, 『세계 순례와 순례지 사목대회에 즈음한 서한(43호)(Letter of His Holiness Benedict XVI on the Occasion of the Second World Congress on the Pastoral Care of Pilgrimages and Shrines)』(2010.9.8.); 교황교서, 『교회의 순례지(Sanctuarium in Ecclesia)』(2017.2.11.).

 

3) 전영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유동인에 대한 환대」, 『인간과 평화』 1, 2020, 81~100쪽; 조발그니, 「전환학습 관점에서 본성인 신앙교육으로서 성지순례」, 『神學展望』 208, 2020.

 

4) 구본식, 「가톨릭교회의 성지 순례」, 『가톨릭사상』 27, 2002, 35~80쪽.

5) 이기락, 「신앙생활과 성지순례: 순례사목을 중심으로」, 『신학과사상』 57, 2006, 129~151쪽.

 

6) 권영파, 「그리스도교 순례전통 역사의 의미 고찰-한국교회의 성지순례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작업」, 『부산교회사회보』 108, 2022, 96~128쪽; 「가톨릭교회 성화상공경의 발자취」, 『부산교회사회보』, 109, 2022, 95~116쪽; 「순교자공경의 변용과 적용」, 『부산교회사회보』 110, 2022, 96~116쪽; 「교회문헌에 나타난 순교자공경」 111, 2022, 96~116쪽. 

 

7) 교회가 제시하는 순례지의 정의는 신자들이 교구 직권자의 승인 아래 특별한 신심 때문에 번번히 순례하는 성당이나 그 밖의 거룩한 장소를 뜻한다.(교회법 1230조) 성지와 순례지의 구분에 관하여, 권영파, 「그리스도교 순례전통 역사의 의미 고찰」, 『부산교회사회보』, 2020-1, 98~99쪽.

 

8) 성지와 순례지의 구분을 두지 않겠다는 천주교용어위원회의 입장과 다소 다른 용어 사용이 2019년에 발행된 『한국천주교성지순례-개정증보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위원회)에 나타난다. 이 책자에서 성지(聖趾), 순교 사적지(殉敎史跡地), 순례지(巡禮地)의 구분이 제시된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나는 세 개의 용어는 교회가 제시하는 성지(城地)와 순례지 중 순례지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시 세분하여 정리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성지(聖趾)는 103위 성인, 124위 복자 등 ‘하느님의 종’들이 순교했거나 그들의 유해, 무덤이 있는 장소이면서 그들을 공경하는 전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예를 들면, 절두산 순교성지, 해미 순교성지, 남한산성 순교성지, 전동 순교성지 성당 등이 있다. 이에 비해 순교 사적지는 순교자들의 생가, 생활 터전, 옥살이했던 감영, 순교자 기념 성당이나 장소 등 국내 순교자들과 연관된 장소를 의미한다. 그 예로, 서울 이벽 집터, 솔뫼성지, 마재성가정성지, 참회와 속죄의 성당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순례지는 순교자들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그들의 삶과 영성이 담겨 있는 곳, 또는 교구 직권자가 신자들의 영적 선익을 위하여 지정한 장소를 의미한다.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 터나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나눔공원 등이 있다.

 

9) 이 글에서 사용되는 대중신심의 정의는 거룩한 전례보다는 주로 특정 국가나 민족, 그들의 문화에서 비롯된 표현들에서 영감을 받은 개인이나 공동체적 성격을 지닌 예배 표현들을 가리킨다.

 

10) 구본식. 「가톨릭교회의 성지 순례」, 『가톨릭사상』 27, 2002, 35~80쪽; 권영파, 「그리스도교 순례전통 역사의 의미고찰」, 『부산교회사회보』, 2022-1, 96~128쪽.

 

11)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순교자공경의 대중신심이 전례로 통합되는 흐름은 권영파, 「교회문헌에 나타나는 순교자공경」, 『부산교회사회보』, 2022년 10월호, 1절, ‘순교자 공경 논의의 바탕을 이루는 전례와 순례의 연결고리’에 정리되었다.

 

12) 이 공의회 문헌 중 교회 자신이 스스로를 순례하는 교회로 표현한 장면은 『선교교령』 2항 이외에도 『교회헌장』과 『계시헌장』, 『사목헌장』뿐 아니라 『일치교령』과 『평신도교령』에서도 나타난다.

 

13) André Brouillette, The Pilgrim Paradigm: Faith and Motion, Paulist Press, 2021, p.177

14) M. A. Claussen, “‘Peregrinatio’ and ‘Peregrini’ in Augustine’s ‘City of God’” Traditio 46, 1991, p.43.

15) M. A. Claussen, “‘Peregrinatio’ and ‘Peregrini’ in Augustine’s ‘City of God’”, p.68

 

16) 이에 관하여, Jared Wicks, Investigating Vatican II: Its Theologians, Ecumenical Turn, and Biblical Commitment. CUA Press, 2018.

 

17)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신학의 구도와 문헌간의 연결에 관하여, Robert Schreiter, “The Paradox of Vatican II : Theology in a New Millennium”, Address Given at The Bernardin Center at Catholic Theological Union 14, 2002.를 볼 것.

 

18) 공의회문헌에서 순례하는 교회를 명시적으로 표현한 구문으로 다음의 예를 들 수 있다. 「교회헌장」, 16항, 68항, 「계시헌장」 7항. 「사목헌장」 45항. 「일치교령」 3항, 「평신도교령」 4항.

 

19) 교회의 관한 교의헌장 49항은 순례를 다루며 “우리는 모두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같은 사랑 안에서 참으로 여러 단계와 방법으로 친교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 하느님께 영광의 같은 찬미가를 노래하고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지상에 있는 이들과 이미 죽은 이들, 그리고 천상에 이들 모두를 포괄한다. 여기서 복된 이들이 그리스도와 함게 그리스도 안에서 나그넷길을 가는 자신의 형제들과 자매들을 위해 활동하며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길을 걷는다는 이해가 나타난다. 신정훈: 페터 휘너만, 『인류의 빛-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420~421쪽.

 

20) 경신성사부, 『마리아의 해 거행을 위한 지침과 제안』(1987.4.3.), Notitiae 23, 1987, 342~396쪽.

21) 프란체스코 교황의 자의교서, 『교회의 순례지(Sanctuarium in Ecclesia)』, (2017.2.11.)

22) 『대희년의 순례』 33항

 

23) 순례지로 가는 여정인 순례는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는 우리 여정의 한 단계이며 비유이다. 순례는 그리스도인이 나그네로서의 인간의 종말론적 운명을 더욱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이다. 순례자들은 눈앞의 목적지인 특정한 순례지를 넘어, 그리고 광야의 삶을 넘어 하늘나라에 우리의 진정한 약속의 땅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Directory on Popular Piety and the Liturgy : Principles and Guidelines)』(2001.12.17.) 286항.

 

24) 순례지로 여행을 하면서 순례자는 자신의 죄와 덧없고 불필요한 것들에 대한 애착을 깨닫고 마음의 자유를 얻으며 삶의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 참된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순례자는 ‘자기의 삶을 바로잡아’ 하느님을 더욱 가까이 따르며 더욱 초월적인 삶을 살고자 할 것이다.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86항.

 

25) 순례는 서로 만나는 친교의 시간들과 때로는 억눌려 있을 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형제애를 드러내는 기회이다.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86항.

 

26) 순례자들은 하느님을 만나 뵙고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며 하느님께 흠숭과 예배를 드리고 하느님께 자기 마음을 열어 보이고자 순례지를 찾는다. … 순례지에서 공격받은 성화상들은, 영광을 받으시고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재자의 일을 하시며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 안에 항상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둘러싸고 계신 하느님의 어머니와 성인들의 현존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86항.

 

27) 순례는 신앙을 선포하는 것이며 순례자들은 어디서든 그리스도의 선포자가 된다.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86항.

 

28) 순례자는 자신과 동행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순례자와 동행하는 주님과도 신앙과 사랑의 친교를 나눈다. 공동체와 더불어 공동체를 통해 여행하며, 천상과 지상의 교회와 함께 여행한다.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86항.

 

29) 『대희년의 순례』, 32항.

30)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79항.

31) 『대희년의 순례』, 32항.

32) 『대희년의 순례』, 35항.

33) 『대희년의 순례』, 33항.

34) 『대희년의 순례』, 33항.

 

35) 최초의 순례지는 마리아의 태였다. 다시 말해, 그곳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막으로서 성령께서 그 위에 오셨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셨다. 『대희년의 순례』, 42항.

 

36) 『대희년의 순례』, 42항.

37) 순례의 역사를 네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는 내용은 『대희년의 순례』 전체 내용을 통해 전개된다. 

38)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대희년의 순례(Pilgrimage in the great jubilee)』(1998.4.25.)

39) 『대희년의 순례』, 43항.

40) 『대희년의 순례』, 30항.

41) 『대희년의 순례』, 26항.

42) 『대희년의 순례』, 30항.

43) 『대희년의 순례』, 31항.

 

44) 『대희년의 순례』, 30항. “사실 인간은 현세의 역사에서 여행하는 인간으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절대와 무한을 향해 열려 있는 존재로서, 새로운 지평에 목말라하며, 정의와 평화에 굶주리고, 진리를 추구하며, 사랑을 갈망하는 나그네이다. 인간이 직면한 난제와 고통스러운 상황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종교와 문화가 제시하는 길을 추구하도록 촉구한다. 끊임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친 인간은 쉴 수 있는 장소,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 그리고 하느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을 목말라한다. 그리스도인의 순례는 이러한 인류의 추구와 함께 이루어지며, 안전한 목적지, 다시 말해, 당신의 백성을 찾아와 해방시키신 하느님의 현존을 제시한다.” 

 

45) 『구원역사와 관련된 장소의 순례에 관하여』(1999.6.29.), 3항.

 

46) 『순례지: 살아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기억, 하느님의 현존, 그리고 하느님의 예언(The Shrine: Memory, Presence and Prophecy of the Living God)』(1999.5.8.) 17항;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62항.

 

47) 이와 유사한 내용을 같은 문헌의 도입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순례지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속해 있는 우리 존재의 기원에 대한 기념이며, 주님의 첫 번째 오심과 마지막 오심 사이에 살고 있는 구원받은 공동체의 현재와 관련하여 볼 때 순례지는 하느님 현존의 상징이며 계약의 장소이다. 계약의 공동체는 이 곳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거듭나기를 되풀이한다. 미래에 완성될 하느님의 약속,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 큰 희망의 대상인 하느님의 약속에 비추어 볼 때 순례지는 오늘의 세계에서 하느님의 내일을 예언하는 장소이다.

 

48) 요한 바오로 2세, 「아르헨티나, 코리엔테스 시에서 행한 강론」, 1987.4.9.

49) 『교회법』 1234조 1항.

 

50) 이와 관련하여, 요한 바오로 2세, 삼종기도, 1992.7.12.를 근거로 들 수 있다. “순례지는 인류 공동체의 복음화와 신앙 생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들과 관련된 ‘기쁜 소식의 상설 안테나와 같다.” 또한 교회는 『순례지』 1항에서 “오늘날 모든 순례지는 과거의 교회 창립사건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순례지는 특별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으며 순례자들의 마음속에 늘 감동으로 다가온다. 하느님의 구원활동의 증거인 모든 순례지는 오늘날 당신 교회에 내려주신 고귀한 은총의 선물이다.”라고 가르친다. 

 

51) 『순례지』, 2항.

52)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2013.11.26.) 124항, 125항 참조.

53)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63항.

54)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63항.

55) 『대희년의 순례』, 34항과 35항 참조.

56)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79항. 순례는 순례지를 필요로 하고, 순례지는 순례를 필요로 한다.

 

57)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64항에 따르면, 순례지의 교회법적 승인은 어떤 거룩한 장소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이며, 하느님께 경배드리고 신앙을 고백하며 하느님과 교회 및 이웃과 화해를 이루고, 하느님의 어머니나 성인들의 전구를 간청하고자 그곳을 찾는 하느님 백성의 순례를 받아들이는 구체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다. 이때 교회는 승인을 받지 않고 순례지와 같은 기능을 하는 성당이나 장소에 제재를 가함 없이, 이를 하느님 백성과 특수 공동체의 신앙과 대중 신심을 보여주는 지도의 일부로 간주하는 자세를 견지한다.

 

58) 『대희년의 순례』, 33항. 순례지의 유효성은 현대의 혼란한 생활 리듬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갈증, 곧 하느님과 그들 자신과의 고요하고 주의 깊은 만남에 대한 요구가 증대됨에 따라 이에 부응할 수 있는 능력 여부에 의해 판단될 것이다. 순례의 여정과 목적은 신앙심을 일깨우고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더욱 긴밀한 친교를 맺게 함으로써 말라기 예언자의 예언(말라 1,11)을 이루는 것이다.

 

59)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66항 참조. “순례지 사목은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숭고하며 간결한 예식을 표현하며, 전례 규범을 성실하게 준수함으로써 영적인 위로와 감화를 순례자들이 받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60)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67항. 이 외에도 『대희년의 순례』 46항의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순례지는 화해의 만남이 이뤄지는 장막이기도 하다. 이 장막 안에서 실제로 순례자의 마음은 감화를 받는다. 이 장막 안에서 순례자는 자기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고 용서하며, 화해의 성사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체험한다. 그곳에서 순례자는 죄를 지은 탕자의 체험을 되풀이한다. 그는 시련과 고행의 길을 체험하는 동시에, 여행의 어려움, 단식,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끌어주신 자비에 넘치는 아버지께 용서받는 기쁨을 누린다. … 그러므로 순례지는 잘 준비된 전례, 늘 대기하고 있는 사제와 넉넉한 시간, 기도와 성가로써 화해성사를 깊이 있게 거행하고 나누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각 개인이 하느님의 용서를 확인하고 교회 생활을 통해 회심의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61)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68항. 성찬례 거행은 순례지들의 모든 사목 활동의 절정과 중심이다.

62)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69항.

63)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81항.

64)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74항

65)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74항

66)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94항.

 

67) 『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295항. 순례지는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사랑과 형제적 사랑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요구를 전달해 주는 중심지이다. 이를 위해 순례지에서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기관이나 병원, 양로원과 같은 상설 사회 복지 센터를 설립하고 확장할 수 있다.

 

68) 순례자는 길을 가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음식과 시간과 희망을 함께 나눔으로써 사랑을 실천하며 그러한 행위를 통해 새로운 길동무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목활동에서는 순례자들의 감정을 존중하는 교리 교육의 도움과 헌금의 목적을 명시해 주는 활동을 통해 그러한 사랑의 행위를 권장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부 순례지에서 전개하는 개발 도상국 공동체들에 대한 원조 계획이나 자선 단체들을 위한 사업은 강조되어야 한다. 『대희년의 순례』, 38항.

 

69) 순례길에 나선 병자들에 특별한 사랑을 기울여야 한다. 병자는 돕는 것은 가장 뜻깊은 사랑의 표현으로서, 이러한 사랑은 불편한 몸으로 순례지를 향해 여행하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병자들은 최대의 환대로써 맞아주어야 한다. 따라서 숙박 시설과 편의 시설, 통신 수단과 교통 수단을 갖추어 놓고 그들을 예의와 관심과 사랑으로 맞이해야 한다. … 병자들은 자신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빛나게 함으로써 자신의 질병을 은총의 여정, 자기 봉헌의 여정으로 삼아야 한다. 성지를 향한 그들의 순례는 그들처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연민의 대상에서 참여와 행동의 주체가 되고 세상의 모든 길을 따라 걷는 참된 주님의 순례자가 된다. 『대희년의 순례』, 38항.

 

70) “순례지의 환대 사목은 열린 형제애의 마음으로 환영하는 사랑의 사목이다. 이 환대 사목은 각 단체와 개개인의 구체적인 특성과 기대와 진정한 영적 요구들을 식별하여, 순례자들을 움직인 다양한 동기를 고려하고 이에 응답하여야 한다”『대희년의 순례』, (12항)

 

71) 『대희년의 순례』, 40항.

72) 교황 베네딕토 16세, 『제2차 세계 순례와 순례지 사목 대회에 즈음한 선언』(2010.9.8.)

 

73) 이와 비슷한 내용은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에스파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교구, 『제2차 세계 순례와 순례지 사목 대회 최종 문서』에서도 확인된다. “순례지는 많은 경우 그 지역의 예술적, 문화적 유산 가운데 중요한 일부이므로, 분명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복음화하는 목적의 새로운 문화 행사들을 계속 촉진하여야 한다. 이러한 문화 행사들은 물론 비신자들과 만남의 장이 될 수 있다. 순례지는 하느님을 알게 되는 길인 아름다움의 길(via Pulchritudinis)를 재발견하고 이러한 목적에서 예술, 문화 유산과 복음화의 관계를 증진하는 곳이여야 한다.” 

 

74) 『제2차 아시아 성지 순례 사목대회』(2005.11.21~23.)

 

75) 사람들은 순례를 하면서 하느님과 우주적으로 만나는 장막으로 들어가는 기회를 갖는다. 순례자들은 흔히 경관이 빼어난 장소에 있으며 우아한 예술적 형태를 띤다. 그리고 고대의 역사적 기념물들이 그 중심에 있으며, 대중적이고 세련된 문화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순례는 이러한 정신적 차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연을 소중히 여기려는 마음은 현대인의 고귀한 정신적 차원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명상을 성찰과 기도의 주제로 삼음으로써 순례자가 하느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하늘을 지으신 주님을 찬미하게 하며, 세상을 거룩하고 정의롭게 다스리도록 부름 받았음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어떤 면에서 모든 순례는 개인의 수양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영적 충만을 위한 종교적인 여정의 측면을 드러내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조는 영성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순례지나 그 부근 장소에 민중 예술과 신심의 사은 봉헌 자료들이 전시되고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한다. 순례자들에게 안내서나 다른 자료들을 통해 이러한 보화들을 보여줌으로써 예술적 아름다움과 자연 발생적인 오랜 신앙의 증거들을 통하여 그들이 예술로써 그들의 기쁨과 희망을 하느님께 노래하며, 기묘한 것들을 명상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되찾도록 해야한다. 『대희년의 순례』, 42항.

 

* 본 논문은 해미신앙문화연구원이 주관한 제1회 학술심포지엄(2022년 11월 5일)에서 발표한 필자의 글, 「성지, 문화유산, 그리고 관광」에서 순례관광의 현황이나 순례관광에 관한 연구 등을 삭제하고, 교회문헌과 신학적 내용에 집중하여 정리한 글임을 밝힌다.

 

[교회사 연구 제61집, 2022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권영파(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해미신앙문화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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