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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도서 불평등의 세대 - 나무를 넘어 숲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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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7-09 ㅣ No.81

[도서칼럼] 도서 ‘불평등의 세대’


나무를 넘어 숲을 보기

 

 

얼마 전 2022년도 아시아 각국의 12개 대도시와 서구의 3개 대도시 시민들이 중시하는 가치를 비교하는 연구를 보고 놀랐습니다. 체감하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실제 데이터를 보니 더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타 도시에 비해 서울 시민들은 자녀를 ‘인생의 기쁨’보다 ‘경제적 부담’으로 여기는 응답이 훨씬 높았습니다. 그러니 개인에게 출산과 육아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초저출산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는 공정성에 관한 의식이었습니다. 서울 시민에게서 능력주의에 대한 선호는 15개 대도시 중 가장 강하지만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기대감은 가장 낮게 나왔습니다. 남성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나이가 많을수록 젊은 세대보다 ‘기성세대’에게 더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자료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서울 시민은 (넓게 한국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편향된 사고를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고를 지녔을 때 갈등을 푸는 사회적 합의에 쉽게 이를 수 없습니다. 또한 세대 간, 성별 간, 계층 간 격차 등 한국의 사회 구조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구조적 불평등의 맥락을 고려한다면,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집단이 갈등 상황을 사회구조적으로 이해하기보다 ‘개인 수준’의 문제로 의식하는 데 그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분석한 『불평등의 세대 -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이철승, 2019)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20세기 중반 민주화와 세계화가 더 많은 소통과 자유, 더 공정하고 평등한 분배 구조를 가져올 것으로 한국인은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심화되고, 비정규직은 신분화되어 사회적 낙인이 찍히고,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닌 고착화의 기제로 바뀌고 있는, 심화된 ‘불평등 구조’를 가진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정치, 시민사회, 경제, 노동의 제 영역에서 권력을 장기간 장악하고 있는 ‘386세대’의 맥락과 구조적 기제를 살핍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대가 내부적으로 상당히 이질적인 이념 집단이라 해도, 모두 학맥과 인맥에 기반하여 자원 · 기회 · 정보를 동원했으며, ‘한국형 위계 구조’를 통해 아래 세대를 조직화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고 지적한다는 것입니다. 이 위계 구조에서 청년과 여성이 희생되었다고 분석한 저자는 형평성의 정치를 주장합니다. 학계를 넘어 사회의 반향을 낳은 이 책은 불평등 문제를 구조적으로 보는 데 유익합니다.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 ‘약자’나 ‘타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그들에게 혐오를 쏟는 ‘포퓰리즘’적 선동을 쉽게 봅니다. 이런 선동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숲’을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에서, 호화롭게 살던 부자의 눈에 가난한 라자로가 들어온 것은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을 때(루카 16,23)였음은 놀랍습니다. 부자는 자기 집단의 시야에만 갇혀있었을 겁니다. 더운 여름 무거운 주제의 책과 씨름하며 안목을 넓히는 일도 이열치열(以熱治熱)의 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요?

 

[2023년 7월 9일(가해) 연중 제14주일 서울주보 6면, 김우선 데니스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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