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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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프란치스칸 영성59: 내면에 계신 하느님 만날 때 진정한 신앙의 삶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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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0-04 ㅣ No.1675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59) 내면에 계신 하느님 만날 때 진정한 신앙의 삶 가능

 

 

프란치스코 성인은 기도를 통해 우리 내면에 계시고 우리 주변에 계신 하느님을 만날 때 민족과 문화, 국가와 이념을 넘어 진정한 가톨릭 신앙을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사진은 2019년 파나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젊은이들이 십자가를 높이 들어 보이고 있다. [CNS]

 

 

14. 프란치스코의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교회관과 가톨릭교회 안에서의 보편적 성소와 구원

 

프란치스코가 가톨릭교회 안에 머무를 것을 당부한 것도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런 넓은 관점에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신앙과 교도권에 순종하여 살아갈 것을 다른 누구보다 훨씬 더 강하게 강조하였다. 좁은 의미에서 볼 때 이는 제도상의 가톨릭교회를 말하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catholicus) 교회의 본질적이고 넓은 의미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참된 하느님과 만나게 된다면 하느님 외에 다른 모든 것은 절대성을 띨 수 없다. 오직 한 분의 절대자 하느님만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하나의 교회가 아닐 수 없다. 그 구성원들이 그렇다는 사실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 이 교회의 중심은 우리나 우리 문화가 아닌 절대자이신 하느님이 되신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우리 내면 깊이 계시고 우리 주변에 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참 자아가 하느님의 한 부분이며 하느님 안에서 산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랑과 자유의 위대한 원천이신 분과의 관계성 안에서 ‘지금 여기에서부터’ 영원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피부색이나 민족, 문화, 국가, 혹은 이념을 넘어서는 진정한 가톨릭 신앙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보편적이고 포용적인 삶의 자세가 요즘 프란치스코 교황이 계속 강조하는 성직주의를 벗어나는 길이고, 또 교회 일치와 세계평화를 위한 자그맣지만 위대한 걸음이 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예수님의 참 교회인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예수님의 협력자요 참 제자의 의미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삶과 신앙의 자세는 심지어 교회의 성소조차도 성직자나 수도자와 같은 전문적이고 좁은 의미에서만 보지 않도록 한다.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한 거룩함을 실현하는 모든 일이 진정한 의미의 성소요 이런 이들의 선이 합심하여 더 큰 성소를 이루어나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라 코 엔터나쇼날(La Crox International)」이라는 가톨릭 인터넷 뉴스 2019년 6월 19일 자 기사에서 피에르 소뜨뤼(Pierre Sauteruil) 기자는 새로운 의미에서의 성소에 대한 접근은 이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서부터 언급되고 있다는 것을 보도했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에게 영적 동반이 꼭 필요하며, 이제는 축성생활(봉헌생활-수도생활)을 포함하여 우리 삶에 주어진 성소를 실현해 가기 위해, 즉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해 ‘세례’의 투신으로 되돌아갈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속화의 증대와 투신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교회는 더 넓고 더 자유로운 방식으로 성소의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 ‘거룩함을 이루는 길’이 다양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말이다.…교회는 성소자 수의 부족을 겪으면서 수도 성소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오히려 교회의 중요하고도 다른 일반 성소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이런 노력은 이미 한계점에 달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여성 성소 계발 담당자로 일해 온 엠마누엘 바뉘이(Sr. Emmanuel Vannier) 수녀의 말을 인용하였다. “교회의 미래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사제들이 필요합니다만, 고객들이 여러분의 상점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물건을 팔 수 있을까요?”

 

그러면서 피에르 기자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런 모습은 성소에 대한 교회의 생각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매우 자명한 이미지이다. 교회는 젊은이들에게 특별 성소에 대한 부르심의 느낌이 있는지 없는지에만 관심을 두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해 왔다. 젊은이들이 이런 질문에 좀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 이제는 다른 형태의 ‘성화의 길’을 제시하며 강조점을 새롭게 두는 것이 필요하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권리로서 결혼 생활과 직업을 하나의 성소로 보는 더 넓은 전망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축성생활을 포함하여 젊은이들이 진지하게 성소에 대해 질문을 하게 해야 한다고 바니에(Vannier)는 말한다. 이런 새로운 개념은 2018년 10월 로마에서 젊은이와 신앙, 그리고 성소의 식별을 주제로 모인 세계주교시노드에 주어진 더 넓은 성소의 개념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 시노드의 최종 문헌은 이렇게 선언한다. ‘광범위하게 펼쳐진 성소의 다양성은 모두 거룩함에로의 불림이라는 보편적 성소에서 기인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수 개월간 땀 흘려 일하는 전문 의료진들과 봉사자들에게서 이런 자유를 인식하셨다. 교황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의료진들과 봉사자들은 우리 가슴 안에 중요한 무언가를 일깨워주는 우리의 이웃 성인들입니다. 이들은 우리가 설교로 사람들 마음에 심어주고자 하는 것을 재삼재사 믿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무관심이라는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삶이 선물이며 우리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0월 3일,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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