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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새로운 사태 반포 120주년 기념 세미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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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7-09 ㅣ No.851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 반포 120주년 기념 세미나 요약 (1) 21세기 한국교회의 역할은?

 

 

올해는 「새로운 사태」 반포 12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새로운 사태」는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반포한 사회문제에 대한 최초의 가톨릭 사회회칙이다. 서울대교구 염수정 주교의 지적대로 사회회칙은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며, 그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과 선의의 사람들에게 인간존엄성과 공동선 실현의 이정표”가 된다. 「노동헌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회칙이 반포된 직접적인 계기는 교회가 유럽 사회의 산업혁명과 초기 자본주의 폐해인 노동자들의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유린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회칙이 가톨릭교회에 대한 비우호적인 시대적 배경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회칙 반포 당시는 과학의 발견, 진화론, 다원주의 등이 맹위를 떨치면서 구질서와 강하게 결합한 가톨릭교회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다. 더구나, 공산주의의 후원을 받는 혁명적 사회운동은 교회를 적으로 간주했고, 교황권에 대한 도전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따라서 회칙이 이런 비우호적인 시대적 배경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바로 새로운 사태가 갖는 힘이었다.

 

회칙은 크게 3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서론(1~12항)에서는 “변하고 있는 경제조건은 노동의 본성뿐만 아니라 노동조건들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광의의 의제로 제시됐다. 문제제기(13~25항) 부분에서 회칙은 노동의 목적, 재화의 소유, 교회의 역할을 놓고 이 관계를 설명하고, 사유재산의 소유권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이를 당대의 사회주의를 배척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또한, 회칙은 계급 사이의 조화와 협조, 재화의 올바른 사용, 노동과 노동자의 존엄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해결책(26~41항) 부분에서는 사회적 해결로 가난한 이들의 존중, 새롭게 적응한 중세의 길드 시스템 마련, 그리스도교적 생활과 제도 회복을 제시한다.

 

국가, 고용인,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응답을 촉구하면서 분배정의 실현, 공권력의 올바른 사용, 정당한 임금제공과 노동시간 규제를 통한 노동자 보호, 어린이와 여성 노동의 제한, 미래 생활에 대한 희망 제시 등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회칙은 개혁이 필요하나 어디까지나 삶의 궁극 목표인 영원한 생명에의 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종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하튼 이 회칙은 교회가 시대의 중요한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고 관여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이며 사명이라는 자각의 길을 걷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구나 ‘사회교리를 형성한 교황의 회칙들 가운데 첫 회칙으로서 시대의 주요 문제에 교회가 계속적으로 대응하는 전통을 시작했다’는 점도 무시 못 할 큰 의의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사태’는 무엇인가?

 

비정규직 노동자는 2008년 8월 기준으로 837만4천 명(52%)을 넘어섰으며, 임금수준은 정규직 월평균임금의 50.2%(2008년 기준) 수준에 불과하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 134만 명, 기초생활보호 수급자조차 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 400만 명, 360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존재하고 있다.

 

여성의 눈으로 보는 「새로운 사태」는 빈곤의 여성화 (Feminization of Poverty)다.

 

2010년 1분기 가계동향 조사자료를 이용해 가구빈곤 양상을 보면 남성가구주 가구의 빈곤율은 15.1%인데 반해 여성가구주 가구의 빈곤율은 36.2%로 남성에 비해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임금 차별, 비정규직, 채용과 승진에서의 차별 등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10년 전체 노동자의 51.9%가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의 53.4%가 여성이며, 여성 노동자의 65.6%가 비정규직이다. 여성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2005년 기준 남성 노동자의 절반을 상회하는 58.3%이다. 이 밖에 인간 삶의 존엄성 위기로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자살률은 높고 출산율은 낮아지고 있다.

 

교회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 그것은 죽은 교회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세상일에 간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혹은 세상일을 알려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엄청난 새로운 사태에 대해 교회가 침묵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세상 안에서의 사명과 역할을 제시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과 가르침을 애써 외면하거나 아니면 부정하는 것이다.

 

분명 회칙 「새로운 사태」는 현대 한국 사회와 교회(신자들) 안에서 교회가 어떻게 육화해야 하는지 그 모범을 이미 120년 전에 보여줬다. 회칙이 제시하는 주요 가르침을 먼저 교회 안에서 실현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사회 안에서 ‘어머니와 교사’ 역할을 담당해 나가라는 것이 오늘날 회칙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방향이다. [가톨릭신문, 2011년 7월 10일,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김형준 위원(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 반포 120주년 기념 세미나 요약 (2 · 끝) 교회가 사회교리 솔선수범해야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최근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 반포 12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사태에 비추어 본 한국교회와 사회’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를 통해 회칙의 배경과 의의, 한국 가톨릭교회가 성찰해야 할 과제들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와 토론이 있었다.

 

세미나 이후에는 이들 과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전략에 대해서도 정평위 차원에서 논의가 이어졌다. 세미나를 위한 세미나를 지양하고 세미나라고 하는 피조물에 생명을 불어 넣기 위함이었다.

 

세미나에서는 수많은 실천 과제들이 제시됐지만 사회교리, 노동, 교회 언론, 여성 등 네 차원에서 교회의 역할과 실천 전략이 무엇인지에 집중됐다. 그 이유는 이 분야들에 사회회칙의 정신이 가장 잘 반영돼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사회교리 차원에서의 핵심 실천 과제는 ‘사회교리’를 ‘가톨릭교리’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사회교리라는 용어가 특정 관심을 갖는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처럼 들려 마치 선택의 대상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제시됐다.

 

그 밖에 사회교리 보급 확산을 위해 사회교리 연구를 강화하고, 사회교리를 신학교 교과과정의 필수과목으로 선정하며, 예비신자·견진교리과정에 편입시키고, 구역장·반장학교 교육 내용에도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더불어, 사회교리의 날 혹은 사회교리 주간 제정의 필요성도 제시됐다. 사회교리 차원에서 제시된 과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전략으로는 예비신자 교리부터 내용 변화, 교리와 사목 패러다임도 사회교리의 가르침에 따라 변화, 사회교리를 성경 등 교회의 거룩한 전통의 수많은 가르침과 선포의 연장에서 핵심 주제로 전환, 정평위 내 사회교리 소위원회 설치, 언론매체 활용 등이 제시됐다.

 

둘째, 노동 차원의 핵심 과제로는 교회가 솔선수범해 복음에 근거한 모범적인 노동 현장 모델 구축이 제시됐다. 발전 심화된 노동에 대한 가르침이 교회 현장에서부터 실현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외에 비정규직 해결 및 결사의 자유(노동조합) 인정, 비정규직 실태파악을 위한 기초 데이터베이스 구축, 정규 및 비정규 성격 구별, 노동 관련 국내·국제기준 및 법률 수집, 노동조건 준수안 마련, 다른 나라와 타 교구 실태조사 및 연구 등이 제시됐다. 노동 차원의 실천 전략으로는 교구청부터 과감히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고, 병원과 학교 이외의 교회 내 사업장이나 기관에서부터 단계적으로 결사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셋째, 교회 언론 차원에서의 실천 과제는 언론이 정치적 중립 지대가 아닌 비판적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평화방송·신문, 가톨릭신문, 굿뉴스, 서울주보, 사회교리·노동·여성문제와 관련한 각 기관 발행 월간지 이외에 다양한 언론 매체 설립과 활성화 등이 제시됐다. 교회 언론은 복음의 정신을 포괄적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실천 전략으로는 교회 언론 스스로 자기 성찰과 내적 비판을 시작해야 한다. 더불어, 교회 언론이 선교 또는 교계 소식 전달에 머물지 않고 보다 많은 지면을 사회적 이슈에 대한 복음적 평가에 할애하고 새로운 정신을 불어 넣어야 한다.

 

넷째, 여성 차원의 실천 과제로는 무엇보다 교회 내 여성들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우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교회 내 여성 지위 향상에도 앞장서야 한다. 이를 위해 사목구조에서의 여성 참여를 확대하고, 교회 내 기구의 여성(평신도) 지위를 향상시켜야 한다. 여성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아야 하며 노동으로 인해 가정이 희생되지 않도록 일과 가정의 양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실천 전략으로는 교회 안에서부터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 비정규직의 채용과 승진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 서울대교구 소속 교회기관들의 ‘여성 노동자 실태 조사’를 단계적으로 실시할 것이 제안됐다.

 

“사람들의 깊은 복음적 열망이 불타올라 변혁의 추구가 정치의 영역에서 경제의 영역으로, 다시 교회의 영역으로 옮겨 붙을지 모를 일이다. ‘새로운 사태’가 오기 전에 교회가 먼저 복음화 돼야 한다”는 레오 13세 교황의 말씀이 「새로운 사태」에 비추어 본 한국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잘 함축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교회는 이제 신자들을 교회 안에만 묶어두는 사목방식을 탈피, 사회 안에서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리도, 사목 패러다임도 사회교리의 가르침에 따라 바꿔가야 할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1년 7월 17일,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김형준 위원(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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