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강론자료

2016-07-17.....연중 제16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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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7-16 ㅣ No.2105

 

연중 제16주일 (다해)

창세기 18,1-10ㄱ       콜로사이 1,24-28      루카 10,38-42

2016. 7. 17. 이태원.

주제 : ‘손님이라는 표현으로 인생을 해석하기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모습을 손님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말로 설명하면,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손님이 되어 사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게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으로 내 삶을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내게 찾아온 손님을 대우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편하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내가 손님이 되어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 대우를 받는 것이 편하고 쉬운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세상의 기준에서는 사람의 행동을 목적을 중심으로 해석하니, 손님이 되어 사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두 가지를 구별하면, 이것이나 저것의 한 가지이겠지만, 어떤 것이 더 낫다고 여기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사는 일은 세상에 손님이 되어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일까요, 아니면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겠습니까? 이렇게 구별하면, 세상의 삶에서 내 것이라고 생각할 것과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것과도 맥이 통하는 질문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재물이 내 것이라면 다른 이가 내 삶에 오는 것을 반기지 않을 일이고,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면 내가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 뭔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우리는 인간의 삶에 손님이 되어 오시는 천사와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낯선 손님으로 집에 찾아온 천사들을 아브라함이 어떤 태도로 맞아들였는지 그 내용을 우리는 창세기에서 읽고 들었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맞이했던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복음말씀에서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 손님을 대우한 사람이었기에 마지막에 바라고 바라던 축복이 담긴 소리를 듣습니다. 그와는 다르게 이리저리 다급하게 움직이면서 손님을 치루는 일에 바빴던 마르타는 손님대접을 했으면서도 동생을 향해서 질투를 말한 소리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아쉬운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런 얘기들의 과정을 다 아는 우리는 나라면, 그런 상황을 맞이할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을 미리 정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하겠지만, 그 상황까지 생각해서 세상을 대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손님에 대한 문제는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어떤 일이든지 목적을 갖고 행동합니다. 밥을 먹어도 마찬가지이고, 몸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을 내보낼 때도 누구에게나 목적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차이가 있는 일일 뿐입니다. 세상에서 이러한 일을 하는 우리가 갖는 생각이나 행동은 성경을 통해서 본보기행동을 한 아브라함이나 마르타와 비교해서 그들이 행한 모습과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이런 차이를 구별해서 안다는 것이 그저 지식의 하나로 끝나면 내 삶에 남는 영향은 보잘것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다는 것이 행동으로 연결되면, 그것은 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배포가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축복은 인류에게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라는 히브리이름의 뜻은 세상에 사는 모든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집에 찾아온 세 명의 낯선 사람을 손님으로 대하면서, 무엇을 얻을지도 모르는데, 고기로 사용할 송아지 한 마리와 40킬로그램 정도의 두 포대 분량의 밀가루로 빵을 만들게 합니다. 그렇게 행동한 아브라함의 태도가 자기의 삶에 하느님의 축복을 불러들인 것이라고 해석하면 잘못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한 것들을 계산하고, 그 행동에 하느님께서 감동하셔서, 내게 축복을 베풀어주셔야 한다고 해도 괜찮은지 삶을 바르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축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남에게 내 자비를 베푸는 일을 잘하는 행동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내게 축복으로 오는 일은 내가 드러내는 의도대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 내가 세상에서 드러내야할 자세는 할 수 있는 한, 그저 최선을 다하는 일이어야 하는 것인데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공동체에 속한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이 공동체에서 손님으로 사는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이 공동체는 내가 함께하는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의 주인으로 사는 사람이겠습니까? 하느님을 대하는 내 모습을 잘 살펴서, 올바른 자세를 갖는다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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