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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이스라엘5: 카르멜 산과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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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6-09 ㅣ No.1033

[이스라엘 성지 길라잡이] 카르멜 산과 엘리야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한 이즈르엘 평야를 끼고 서쪽으로 보면 카르멜 산맥이 있다. 히브리어 번역을 추정해 본다면 카르멜은 ‘하느님의 포도원’, ‘하느님의 기름진 땅’이다. 아랍어로는 이곳을 무흐라카, 곧 ‘불의 제단’이라 부른다.

대부분이 민둥산인 이스라엘에서 카르멜은 유난히 나무가 많아 아름답고, 가파른 언덕에 숨겨진 동굴도 많다. 그래서 고대 시대부터 도망갈 곳이 필요했던 범죄자들이 숨기 좋았던 장소가 카르멜 산이었다(아모 9,3: “그들이 카르멜 꼭대기에 몸을 숨겨도 내가 거기에서 찾아내어 붙잡아 오고 그들이 내 눈을 피해 바다 밑바닥에 숨더라도 내가 바다뱀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물게 하리라”).

카르멜 산은 고대 가나안 사람들에게 특히 신성한 의미를 주었다. 높은 산에는 으레 산당을 만들었고, 카르멜 산도 예외가 아니었던 듯하다. 산당(영어로 high place), 곧 높은 제단을 만들어 하늘에 계신 신을 열망했던 곳이다. (이런 산당들을 보면,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을 지어 하느님처럼 되고자 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 신앙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우리는 기도를 바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한다. 가나안 사람들이 이곳을 신성하게 생각한 덕택에 카르멜 산은 고대 이집트 문헌에 “거룩한 산”으로 기록되었고, 엘리야는 450명이나 되었던 바알 / 아세라 예언자들과 대결을 벌이면서 이곳에 야훼 하느님의 제단을 쌓았다.

엘리야가 역사에 등장하게 된 배경은 북 이스라엘 왕조와 관련이 깊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국왕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위에 오른 이후 아들 솔로몬에게 왕좌를 물려주었지만, 말년에 이방 신들을 추종한 솔로몬의 과오로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로 쪼개졌다.

그러나 다윗 왕조가 있는 남 유다와는 달리 확고한 왕족이 없었던 북 이스라엘은 불안정한 정권 교체기를 겪다가 오므리 왕 시대가 되어서야 어느 정도 확립되었고, 기원전 9세기 오므리의 아들 아합 왕 시대로 접어들었을 때 엘리야가 등장한다.

아합은 종교적으로는 매우 부정적인 왕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상당한 실력가였던 듯하다. 특히 지중해로 통하는 북 이스라엘의 통상로를 장악하려고 지중해 해변 시돈의 공주 이제벨과 정략결혼을 하여 국력을 강화했다. 그때 이제벨이 시집오면서 시돈의 신이었던 바알과 아세라가 본격적으로 북 이스라엘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고 바알 신앙이 그때 탄생한 것은 결코 아니다. 가나안 땅의 ‘잔재’라고나 할까? 억제되어 있긴 했지만 이스라엘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116쪽 사진 참조). 놀랍게도 사울의 아들 이름도 ‘바알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에스바알이었다(1역대 8,33 참조).

그러다가 이제벨이 들어왔을 때 바알 신앙의 물꼬가 터진 것이다. 사실 아합이 이제벨의 남편이기도 했지만 시돈과 계약관계에 있었던 아합은 시돈 공주였던 아내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반하여 야훼 하느님 신앙에는 소홀해진 듯하다.

그러나 야훼 하느님의 신앙을 완전히 버린 것 같지는 않다. 아합의 아들들은 각각 아하즈야(1열왕 22,52)와 요람(히브리어로 여호람, 2열왕 3,1)으로서 “야훼께서 붙잡으시다.”, “야훼께서 들어올리시다.”라는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합은 어느 한 종교를 선택하기보다 시돈과 이스라엘의 종교문화를 결합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탈출과 가나안 정복을 경험하고도 왜 바알과 아세라에게 많은 유혹을 당했을까? 그 이유는 생각 외로 매우 간단하다.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서 폭풍과 비의 신이라는 바알, 풍요의 여신이라는 아세라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다익선으로 야훼 하느님뿐 아니라 여러 다른 신들도 같이 믿으면 비도 많고 풍년이 올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엘리야는 종교적으로 타락해 가는 북 이스라엘에게 비는 커녕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재앙을 선언했고, 핍박받던 엘리야는 북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에 두고 바알 / 아세라 예언자 450명을 상대로 카르멜 산에서 신앙의 도전을 한다. 제단 두 개를 쌓고 각각 황소를 올렸을 때 불로 응답하시는 신이 참 하느님임을 증명하는 대결을 벌였고, 대답 없는 바알 제단 앞에서 참 하느님을 증명했다(1열왕 18장).

현재 카르멜 산에는 카르멜수도원 엘리야 기념 성당이 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엘리야가 불의 대결을 하면서 이스라엘 지파들을 상징하는 열두 개 돌로 쌓은 제단을 상기시키는 제대가 있다(위 사진 참조).

만일 엘리야가 없었더라면 북 이스라엘에 야훼 하느님의 신앙이 타락해 버렸을 역사의 산 증인, 카르멜! 구약의 성지이기 때문에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찾아오는 카르멜은 일종의 종교적인 화합을 느끼게 한다.

* 김명숙 소피아 - 부산교구 우정본당 신자로 이스라엘에서 성지순례 안내자로 일하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5월호, 글 · 사진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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