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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포항 흥해를 찾아서: 성지가 아닌 유배지, 포항 흥해(최해두의 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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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2-12 ㅣ No.1434

[성지에 가다] 포항 흥해(興海)를 찾아서 ① 성지가 아닌 유배지, 포항 흥해



대구에서 약 300여 리 떨어진 포항에서 영덕방향으로 20여 분 달려 흥해읍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하얀색 패널로 지어진 예쁜 흥해성당 모습이 보인다. 이 지역 어디에선가(현 향교부근으로 이야기함)에 200여 년전 신유박해(1801년)가 일어나면서 초대교회 지도자급에 있던 신앙선조들이 순교 혹은 배교로 나뉘어지면서 한쪽에는 승리의 월계관을 다른 쪽에는 배교를 하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무한한 슬픔과 회한에 젖어 깊은 성찰과 상등통회(上等痛悔)와 하등통회(下等痛悔)를 하며 하느님의 자비하신 사랑을 갈구하며 “스스로 꾸지람”하는 글을 후손인 우리에게 남긴 최해두의 ‘자책(自責)’을 한국천주교회사 이야기 중 [정두희]가 쓴 글을 정리하여 옮겨보면 이러하다.

… 최해두는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자신의 처사촌인 윤유일의 권고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지도급 인사들과 함께 교회의 일을 많이 했던 사람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1801년 신유대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자신의 부친 최상은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관청에 자수하였다. 그는 심문 과정에서 천주교를 다시는 믿지 않겠다고 배교하였으며, 그로써 사형을 면하고 저 멀리 경상도의 흥해 땅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한 많은 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는 순교자가 아니라 배교자였다. 사실상 영광스러운 순교의 역사를 강조하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그가 차지할 자리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어쩌면 나 역시 그 박해의 시대에 태어나 천주학쟁이가 되었다가 잡혔다면 최해두처럼 배교하였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해두의 불행했던 생애는 그대로 나의 것이 됨직도 하지 않나 생각해 보며, 최해두에 대해 연민(?)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그의 지극히 평범하고 결코 드러날 수 없는 생애를 통하여 현세를 살아가는 나의 미약한 신앙생활을 꾸짖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쓴 자책의 서두 부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두루 심란하고 답답하여 두어 줄 기록하노니, 슬프고 슬프도다.

… 나는 (천주교에) 입교하여 근 20년이나 죽기로써 봉사하노라 하였다. (그러나) 시절이 불행하여 성교회에 대한 박해가 크게 일어나니, 평일에 열심 봉사하여 그 믿음을 크게 이룬 이는 모두 우리 주 예수의 가르침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순교의 큰 은혜를 받았지만, 나같이 아무런 공도 믿음도 없이 죄에 가득찬 인생은 지난 신유년에 천주께서 내리신 순교치명의 큰 은혜에 참례치도 못하고, 나 혼자 빠져 나와 이 (경상도 구석지인) 흥해의 옥중에서 욕된 목숨이 붙어 있으니 이 어찌 절박하고 원통한 일이 아닌고…!〕

많은 동료 신자들이 목숨을 다하여 신앙을 지켰지만 자신은 그러지 못했던 것을 크게 뉘우치고 상심하며 지냈던 것이다. 그는 슬프고 기막힌 자신의 인생을 더듬으며 너무나 “심란하고 답답하여” 이런 글이라도 쓰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살아서는 이 세상의 복도 다 잃고 죽어서는 천상의 복도 또한 잃을 것이니…. 이 세상의 시련과 저 지옥의 벌을 어이 다 견디자는 말인고! 나 죽을 날이 날로 가까이 오고 그에 따라 지옥이 내 앞에 가까이 오니, 뉘를 원망하며 뉘를 탓하리까?”라고 탄식하였다.

이 책을 보면 그가 회한에 젖어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항상 성경을 읽고 그 뜻을 묵상하며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 어느날은 산상설교를 읽으면서 또다시 자신의 가슴을 후려치기도 하였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산상설교는 예수님께서 어렵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축복하고 자신이 선포하는 하느님의 나라가 곧 그 고통받는 사람들의 것임을 천명하였다. 이 대목은 미천한 사람들에게 진정 위로가 되는 것이지만 최해두는 더욱 깊은 회한에 빠져 다음과 같이 썼다.

〔… 진복팔단에 가로되, 고난자가 진복이라 하였으나…

이 세상 괴로움을 나 홀로 다 받은들 무슨 진복의 사람이 되리요. 내 행위를 생각컨대 천주를 믿는 이로서의 도리를 행했다 할 수 있느뇨? (나는 지금) 육신의 복을 취하여 이 옥중(유배지)에 앉았느냐? 육신의 안일을 위하여 이 옥중에 와 앉았느냐?〕

그는 현재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그 고통이 하느님을 위해 살다가 얻은 고통이 아니요, 자신의 목숨을 얻기 위해 살다가 얻은 고통임을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읽으면서도 위안만을 받을 수는 없었다. 만약 하느님을 증거하다가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고통 중에 있었더라면 이 말씀이 얼마나 커다란 위안이 되었겠는가? 그 어려운 중에도 자신은 얼마나 떳떳하다고 느꼈겠는가? 이렇듯 인간적인 고뇌와 후회가 한시도 그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늘 부끄러웠다. 순교했던 동료들을 생각하면 더욱 부끄러웠고, 아직도 살아서 그래도 천주교의 신앙을 지키며 산다고 하는 자신을 주변 사람들이 비웃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는 이 수치심을 이고 지고 살며, 끝내는 이를 이겨내야만 하는 처지에 있었다. 부끄러워 숨기만 하며 살 수는 없었기에 때로는 그도 자신을 분발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때문에 항상 안으로만 움츠려드는 자신을 크게 책망하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우리 주 예수는 지극히 높고 지극히 귀하며 허물이 없으시되, 남의 나무람과 비웃음과 업신여김과 욕함을 감수하셨거늘, 나는 지극히 작고 지극히 천하며 죄악과 과실이 켭켭이 쌓인 사람이니, 남의 나무람과 비방을 받음이 마땅하다 할 것인데, 무엇을 참기 어려워 하느뇨?”라고 스스로를 꾸짖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제라도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던 그였지만 그러한 결심조차도 한결같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마음은 다시 해이해지고 세속의 쾌락과 나쁜 버릇에서 온전히 빠져 나오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더욱 가련해 보였다. 그런 자신의 딱한 모습을 대하면서 그는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그는 “이 곳에 오던 초년에는 그래도 양심이 조금은 남아 있었으나, 이제는 몹시 그릇되어 음담패설을 도리어 기뻐하다가 점점 물들어 입으로 그런 말하기를 믿지 않는 속인에게 지지 아니하니, 이 무슨 일이뇨? 나의 행실을 생각컨대, 믿지 않는 속인도 지각이 있는 자는 잘 하지 않는 버릇을, 천주를 믿는다 하는 자가 버리지 못하니 가이 한심하고 서럽지 아니하랴?”하고 탄식했다.

* 박철수 님은 경산성당 신자로, 관덕정순교기념관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월간빛, 2015년 2월호, 박철수 보니파시오(경산성당)]

 

 

[성지에 가다] 포항 흥해(興海)를 찾아서 ② 성지가 아닌 유배지, 포항 흥해



그는 새로운 삶을 희망하며 열심히 기도하고 진정으로 영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 했지만 나날의 일상적 생활 속에서 자신의 기도가 형식화되어 가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쓸데없는 말과 죄 되는 생각은 부러 일삼아 부지런히 맛있게 하고, 유익하고 공(功)되며 덕(德)되는 기도문을 외울 때는 어서 바삐하고, 무슨 큰일이나 있는 듯이 입만 놀려 맛없이 지나치니, 이렇게 하고도 때를 잃지 아니하랴?”고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였다. 이렇게 산다면 자신의 영혼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느님을 증거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목숨이 아까워 배교한 자신의 행실을 깊이 뉘우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게 여겨졌다. “육신의 때는 물로 씻고 영혼의 죄는 깊이 뉘우침으로 씻는다 하였으니, 죄를 짓고도 통회의 눈물이” 없는 자신의 삶을 어디다 내어놓을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진정한 뉘우침(통회)을 통하여 새로운 삶이 시작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뉘우쳐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성찰하였다. 자신이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만리 타향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깊이 뉘우치는 생활을 하고자 하였으나, 실은 그 뉘우침의 삶이란 것이 너무나 안일하고 본질에서 멀어진 것임을 발견하고 무척 안타까워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뼈저린 고백을 하였던 것이다.

<… 통회(깊이 뉘우침)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천당에서의 영원한 복락을 잃고, 지옥에서는 영원한 고통을 면치 못할까 두려워, 죄를 범한 것이 서러워 눈물을 흘리고 뼈를 아파하면 이른바 하등통회(下等痛悔 : 지극히 평범한 뉘우침)니, 이는 자기 신세를 위한 통회이기 때문이다. … (우리의 창조주요 우리의 큰 부모이시며) 지극히 높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가 우리 죄에 빠짐을 불쌍히 여기사 십자가 위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으시고, 머리에는 가시 테를 메우시고, 수족에는 쇠못이 박히시고, 늑방을 철창에 찔리사 만신에 피를 흘리시고, 입에는 초담을 맛보시니 이는 다 우리를 위하여 천신만고를 받으신 것이다. 자식이 되어 제 부모를 저 지경에 이르게 하고, 이제 또다시 죄를 지어 부모의 성심을 상하게 하였으니, 자식의 도리로 이럴 데가 어디 있으리까? 범죄한 것이 서러워 눈물을 흘리며, 뼈가 아파하면 이른바 상등통회(上等痛悔 : 진정한 뉘우침)니, 이는 주의 깊으신 정리를 위하여 나는 통회라. 그러므로 가장 크고 가장 귀한 통회니라 ….>

배교 이후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의 뉘우침의 생활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기 행위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남 보기에 아니 스스로 생각하기에 부끄럽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차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깊이 깨우쳤던 것이다. 결국 그는 지난 과거에 천주를 배반하였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천주를 저버린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이런 뼈아픈 심정은 다음과 같은 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 이곳 사람들이 매양 이르되, 우리들을 “천주학 죄인, 천주학 죄인” 하니, 어찌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우리 주 천주를 위하여 죄인 될 일을 내가 했으리요 마는, 헛된 이름만 가지고 내용은 없이 성교회만 욕되게 하였으니 진실로 나는 천주학의 죄인이 되리로다.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요? ….>

자신을 두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천주학 죄인”이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입에 오를 만큼 자신이 천주를 위하여 이세상의 죄인 될 일을 과연 하였던가?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천주학 죄인”이라고 말 듣는 것조차도 자신에게는 과분하다고 여겼다. 결국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르는 사람들에게만 “천주학 죄인”으로 보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 통회의 삶을 살지 않았으니, 실은 천주의 가르침만을 욕되게 하였을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 자신은 진실로 천주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으니, 그런 뜻에서는 자신이 진정 “천주학 죄인”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두고 그는 가슴을 치며 슬퍼하였으며, 그런 심정을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 한 날을 살면 하루 죄과요, 이틀을 살면 이틀 죄과요, 한 달을 살면 한 달 죄과요, 한 해를 살면 한 해가 죄과라. 나날이 다달이 해해년년, 죄는 첩첩 산과 바다처럼 쌓이는데 성사를 받고 죄를 면할 길은 아주 없도다. 애고애고 나 죽으리로다. 이를 어이할꼬? 나 죽으리로다. 죽을 가슴이 터지는 듯, 미칠 듯, 취한 듯, 생각하면 할수록 그저 원통하고 애닯기만 하도다. 앞으로 잘하면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면한다고는 하나 연옥을 어이할꼬? 그러나 우리네가 실망치 말고 부지런히 힘써보세 ….>

이보다 더 절실한 참회를 어디서 찾을 수가 있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잘못을 꾸짖고 가슴만 치면서 살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에 대한 환멸과 실망에 빠져 삶을 포기하고 그 모든 죄인을 다 용서하신다는 천주의 사랑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그는 “그러나 우리네가 실망치 말고 부지런히 힘써보세.”라고 자신을 다시금 격려하고 채찍질하였던 것이다. 그런 속에서도 그는 천주의 존재를 다시금 성찰하고, 천주를 지향하려는 자신의 마음을 다지고 다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한 천주를 만유 위에 흠숭하라.”는 십계명의 제1계를 깊이 묵상하면서 천주의 실재와 자신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사람은 아무리 재주 있어도 무엇을 만들려고 하면 다 죽은 것이로되, 천주가 만드신 것은 … 다 살아 생동하느니 그 능하심이 어떠하시며, 사람의 드러난 선과 숨겨진 악, 숨겨진 선과 드러난 악을 모르실 것이 없으시고, 사람의 털끝만한 마음먹는 것까지 다 아시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니 그 아심이 어떠하시며, 천주, 사람처럼 죄를 짓고 통회하여 착하게 되신 것이 아니고 본디 털끝만한 흠도 없으사 순전히 착하여 만 가지 선을 다 갖추시니, 그 선하심이 어떠하뇨? 못하신 것이 없으신 고로 가로되 전능(全能)이시오, 모르시는 것이 없으신 고로 전지(全知)시오, 착하지 아니하심이 없으신 고로 가로되 전선(全善)이시라. …천주는 지극히 높으사 비할 데 없으시고, 또 없는 가운데서 나를 내셨으니 이는 나의 큰 보모이사 마땅히 흠숭할 것이요, 하늘로 덮고 땅으로 싣고 해와 달과 별빛으로 비추시고 오곡백과로 먹여 살리시니 은혜 크신지라 마땅히 흠숭할 것이요, 세상 사람을 두고 말하더라도 하인된 이는 주인을 섬기거든 하물며 천주는 위 없는 위이시니 어찌 흠숭치 아니하리요?….>

이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통회하는 삶을 통하여 그의 신앙은 이제는 하늘로도 덮을 수 없고 바닷물로도 끌 수 없는 상태로 성장하여 갔다. 그는 대박해 때에 치명하여 순교의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그 이후 한평생을 오로지 순교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는 끝까지 자신을 놓지 않았으며, 최후의 절망적인 순간에 진정으로 하느님을 흠숭해야 할 자신만의 이유를 찾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마치 내 모습처럼 연약하고 일상적이고 보잘것없는 사람이었지만 끊임없이 천주의 사랑을 갈망하고 자신에게 절망하면서도 최후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였지만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찾음으로써 진정한 구원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조금 이르게 시작하는 이번 사순기간을 맞이하면서 최해두가 남긴 자책(스스로 꾸지람)을 통하여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싶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 아버지 찬미와 영광 받으시고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를 이땅에 보내주시어 124분의 하느님의 종을 복자로 시복해 주시고 저희들에게 그들의 순교 신심을 본받고 당신의 자녀답게 잘 살아 갈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배교의 삶을 살고 있는 저희에게 하루하루 성찰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도록 이땅의 모든 성인들과 복자들과 순교자들께 전구를 청하며 이 모든 것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월간빛, 2015년 3월호, 박철수 보니파시오(경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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