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9일 (수)
(백)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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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위령 성월에 기억나는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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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15 ㅣ No.1019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47) 위령 성월에 기억나는 스테파노 신부님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위령 성월을 맞이했다.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기억하는 미사 안에서 그동안 잊고 지내 왔지만, 항상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원로 신부님 한 분이 떠올랐다. 사제품을 받고 경기도 광주본당에서 첫 보좌생활을 할 때 본당 사제로서 삶의 모범을 보여주시고 그 누구보다 아들처럼 아껴주셨던 고 한종훈 스테파노 신부님이다. 신부님께서는 사제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몸소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신 분이다.

 

어느 날 밤늦은 시간에 갑작스러운 병자성사 요청이 들어왔다. 스테파노 신부님이 이미 잠자리에 드신 이후라 급히 성사 준비를 하고 사제관을 나서려는 참이었다. 그때 갑자기 내 등 뒤로 신부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 신부, 잠시만 기다리게. 나도 같이 갈 테니.” 나는 신부님께 “너무 늦은 시간이니 제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신부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옷을 챙겨 입으시면서, “내 본당 식구인데 그래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노자 성체는 본당 신부가 모셔드려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나는 본당 신부님과 함께 병자성사를 청하는 형제 집으로 향했다.

 

허름한 집에 도착하여 성사를 청하는 가족들을 만났다. 가족들은 임종이 가까운 남편이요 아버지와의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병명은 기억되지 않지만, 환자는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온몸의 뼈가 앙상히 드러난 상태에서 눈과 뺨 주위가 움푹 파여 있었고, 반쯤 열린 눈과 입에서는 약간의 눈물과 침이 고여 있었다. 누가 보아도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한 숨 한 숨을 힘들게 몰아쉬며 하느님께 의탁하는 모습이었다.

 

스테파노 신부님은 환자 옆에 앉아 조용히 손을 잡고 기도를 하신 후 그동안 고생 많았다 하시며 마지막으로 성체를 영하기 전에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것이 있다면 고해성사를 보라고 말씀하셨다. 성사를 드리나 싶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신부님은 나를 다시 끌어 앉히시며 같이 고해성사를 드리자고 하셨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 신부가 함께 한 영혼의 고해를 듣는 순간이었다. 하느님의 용서를 청하는 고해의 음성이 신음과 함께 묻어나기 시작하였다. 너무도 미세한 음성이라 좀 더 집중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속살이 썩어드는 냄새가 어떤 것인지를 체험하게 되었다. 구토가 나올 듯한 악취로 인해 나는 더 이상 고해성사의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스테파노 신부님께서는 더 자세히 고해의 내용을 듣기 위해 환자의 입과 코 위로 당신의 얼굴을 가져가셨다. 실로 신부님께서는 단말마의 고통을 견디며 어렵게 고백하는 환자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시려는 모습이셨다. 게다가 환자의 들숨과 날숨을 당신의 호흡과 함께하시면서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환자를 위로하셨다. 실로 살아있는 성인을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살이 썩어들어가는 악취라 하더라도 신자를 사랑하는 목자의 마음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나는 환자를 꼭 끌어안으며 병자성사를 정성스럽게 집전하시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면서 죽어가는 한 마리의 어린 양을 품에 안으며 깊이 슬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임종을 맞이하는 한 영혼의 모습은 마치 목자의 품에 안겨 하느님의 위로를 받고 있는 한 마리의 어린 양을 연상시켰다.

 

한종훈 스테파노 신부님은 당신의 장기를 포함하여 시신을 온전히 기증하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의 삶을 살다가 지금은 하느님 품 안에 평안한 안식을 누리고 계신다. 위령 성월을 맞아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신부님께서는 우리 사제들뿐 아니라 모든 하느님의 자녀에게 당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1월 8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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