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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천주가사의 유래와 가치, 보존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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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01 ㅣ No.26

[천주가사 특집] 천주가사의 유래와 가치

 

 

새 천년기 들어 한국교회에서 천주가사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청주교구가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 3월말 천주가사 심포지엄을 가졌고, 가톨릭대 출판부도 조만간 '천주가사 자료집'(하, 김영수 지음)을 낼 예정이다. 이에 최근 들어 다시 부각되는 신앙선조들의 천당 노래이자 토착화의 대표적 사례인 천주가사를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한다. <편집자주>

 

 

지난해 11월20일 가톨릭대 출판부에 우편물이 하나 전달됐다. 발신자는 장익(춘천교구장)주교. 내용물은 "구령 사정은 사람이 일평생 을픈 것입니다. '가련하올 우리 인생 거년 금녀 장관일세' 이 말은 사람이 백년을 산다 할지라도…"라는 고어투의 노래로 시작되는 육성이 담긴 테이프 하나. 춘천교구 신자인 박기석(바오로)씨가 직접 부른 천주가사였다. 아직도 우리 교회엔 초기 신자 대중의 소박한 신앙의 운율이라 할 천주가사를 부를 수 있는 연배의 신자들이 생존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천주가사란 무엇이며 우리 현대교회는 이 노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 천주가사는 한마디로 신앙 선조들에게 민족의 노래 아리랑 같은 생명력을 지닌 노래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래 입교 권유나 신앙고백, 교회의 가르침 전달을 위해 우리 고유의 형식으로 씌어지고 불려진 노래로, '가사'라는 노래 자체가 주는 특유의 감동과 호소력으로 교리서와 묵상서의 역할을 해낸 복음화의 수단이자 귀중한 신앙의 보화라 할 수 있다.

 

교회가 지역문화와의 동일화를 모색하고 이를 통해 복음화의 본질을 구현해나가는 과정이 토착화(Inculturation)라면, 천주가사는 초기 조선 교회가 토착화를 어떻게 실현시켜 나갔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단초다.

 

김진소(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장)신부는 이에 대해 "아리랑이 애국을 강요하지 않아도 조국 사랑에 가슴이 미어지게 하는 어머니의 노래인 것처럼, 천주가사는 역경의 시대를 살아왔던 신앙의 선조들에게 희망과 극복, 그리고 해원의 노래이자 천당 노래였다"고 말한다.

 

전승자들에게 '천당노래', '천당강론', '사주구령가(事主救靈歌)' 등으로 불리는 천주가사는 다른 가사문학작품과 마찬가지로 4/4조라는 게 공통적이며, 후기에 와서는 7/5조나 8/5조의 노래가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

 

천주가사의 효시로는 학계 일각에서 이벽의 '천주공경가'와 정약종의 '십계명가'를 든다. 하지만 이 작품을 수록한 이벽의 '만천유고(蔓川遺稿)'가 시기적으로 후대 인물의 작품이 포함되는 등 서지학적 재검토가 필요해 천주가사의 첫 작품으로 꼽기엔 아직 이르다. 따라서 차기진(루가) 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 연구소장은 천주가사의 효시로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성 민극기(스테파노)와 성 이문우(요한)의 '삼세대의(三世大義)'와 '옥중제성(獄中提醒)'을 꼽는다.

 

지금까지 발굴된 천주가사는 총 300여종. 국문학자들의 가사문학 연구의 일환으로 발굴된 천주가사는 ▲ 1830년대 이후 박해시대 ▲ 1880∼1910년 개화기 ▲ 1910∼1930년 일제 강점 초기로 각각 그 발전 양상을 나눠 볼 수 있다.

 

천주교 교리 발전사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시기인 박해기에는 베르뇌 주교 등 순교성인들과 최양업 신부의 작품이 노래로 불렸으며, 주로 인간이 종말에 치러야 할 죽음과 심판, 천당, 지옥의 사말(四末)을 준비시키고 성사를 교육하며 수덕생활을 지도하는 내용의 '사향가', '사심판가', '공심판가', '칠성사가', '피악수선가' 등이 있다.

 

개화기와 일제 강점 초기의 작품은 고백록적 성격의 자탄가(自嘆歌) 류와 개화 권면, 신앙교육과 영성에 중점을 둔 작품이 주류를 이루며, 작품으로는 '경향신문'과 '경향잡지' 등에 발표된 '권학가', '망본국태평가', '권농가', '셩탄찬양가', '대구 김 신부 회갑 경축가' 등이 있다.

 

이처럼 가사문학적 요소와 함께 천주교회사적 요소를 동시에 지니는 천주가사에 대해 최근 들어 토착화된 천주 교리, 혹은 교회음악으로서의 천주가사가 지니는 의미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평화신문, 2001년 4월 8일, 오세택 기자]

 

 

[천주가사 특집] 천주가사의 보존과 과제

 

 

초기 한국교회의 성공적인 토착화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천주가사는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며 한국교회, 특히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는 '잊혀진 신앙의 유산'이 돼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0년대 초 문헌은 구하기가 어렵고 필사본들도 교회기관이 주로 소장, 일반 신자들의 접근이 갈수록 힘들어졌다. 현재 발간된 자료집도 김영수(44, 스테파노) 경희대 강사의 '천주가사 자료집'(상, 가톨릭대 출판부)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나 천주가사는 이렇게 쉽게 잊혀져도 괜찮은 교회의 유산이 결코 아니다. 천주가사는 그 시대의 신앙생활상, 그리고 천주교 전교 과정 연구와 직결되는 중요한 유산인 만큼 ▲ 비발굴 자료의 적극적 발굴과 자료 수집 ▲ 각종 필사본과 원전의 보존 및 연구 ▲ 신자들이 알기 쉽게 현대어로 풀어내는 작업 ▲ 천주가사의 CD수록 작업 ▲ 교회음악으로서 천주가사가 갖는 의미의 조명 등이 요청된다.

 

지난 80년대 초 한 때 교회 내에서 관심을 끌다가 식어버린 연구이기 때문에 교회의 지속적 관심이 선결 과제다. 이후 연구소와 각 교구 및 본당간의 긴밀한 협조 체제 아래서 사멸돼 가는 천주가사를 찾아내고 복원하고 현대화하는 과정이 차근차근 진행돼야 한다는 게 천주가사 연구자들의 지적이다.

 

더 나아가 천주가사와 그 저작 배경이 된 여러 교회 서적들과의 관련성(교리나 용어 사용 등)을 규명하는 등의 전문적인 연구 과제까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 수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과제들이 해결될 때, 우리 교회와 신자들은 천주가사를 통해 신앙 선조들이 어떻게 자신의 신앙을 노래하고 믿음의 삶을 살아왔는지를 살필 수 있고, 오늘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평화신문, 2001년 4월 8일, 오세택 기자]

 

 

[천주가사 특집] '최양업 신부와 천주가사' 심포지엄

 

 

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관장 류한영 신부)는 최양업 신부 탄생 180주년을 맞아 3월31일 오후 1시30분 청주교구 연수원에서 '최양업 신부와 천주가사'를 주제로 연구소 창립 1주년 학술 심포지엄을 가졌다. 이번 심포지엄은 김진소(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장)신부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최양업 신부가 지은 천주가사와 이에 대한 국문학적, 교부학적 연구, 천주가사에 나타난 신관 등에 대한 주제발표와 토론 차례로 진행됐다. 다음은 발제 요지.

 

■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와 저작 배경(차기진 양업교회사연구소 연구소장) = 천주가사의 종합편이라 할 '사향가'와 사말(四末)의 일부를 노래한 '선종가', '공심판가', '사심판가' 등 4편은 최 신부 저작의 천주가사가 분명하다. 최 신부가 천주가사를 짓게 된 배경은 글을 잘 알지 못하는 여성신자와 하층민 신자들이 증가하는 전파 대상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최 신부가 천주가사를 지은 목적은 재교육의 측면에서 일반 신자에게 다시 한번 주요 교리를 가르쳐주고 이를 통해 그들 스스로 묵상과 교리실천, 신심 함양에 힘쓰도록 하는 데 있다.

 

■ 국문학의 입장에서 본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양희찬 전북대 교수) = 내용 성향을 보면 '사향가' 등 4작품은 죽음과 심판, 곧 천당과 지옥을 말함으로써 현세에서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이 공통적이다. 네 작품의 공통된 글감은 사람의 행실, 죽음, 심판이며 이 세가지는 동반돼 사용된다. 또 네 작품의 공통된 표현방법은 논증적 설명식 방법과 열거적 방법이며, 반복적 음악성 또한 천주가사의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다.

 

■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에 대한 교부학적 연구(장인산 대전가톨릭대 교수 신부) = 최 신부는 한국교회의 두번째 사제지만, 실제로는 한국교회의 성장을 위해 헌신한 첫 조선인 목자이기에 '한국교회의 교부'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교부'의 자격 요건 중 하나인 고대성(古代性)은 최 신부에게 해당되지 않지만 교리의 정통성과 성덕으로 볼 때 교부 조건을 갖춘 것으로 간주된다.

 

최 신부가 교부라면, 그의 저서 천주가사와 서한은 교부 문헌의 가치를 갖는 것이다. 또 최 신부의 강론(선교 열정), 순교 영성, 겸덕, 기도생활 등을 살펴볼 때 그는 한국교회의 신앙인들에게 참된 표양을 제시한 목자였다. 특히 천주가사는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암송하기에도 용이한 언문체 가사로서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영적 성장에 자양분이 되는 소중한 작품이다. 천주가사는 교리서이자 기도서로서 최 신부의 신앙 정신과 영성을 읽을 수 있으며 교리의 토착화를 엿볼 수 있다.

 

■ 최양업 신부와  관련된 천주가사에 나타난 신관(류한영 양업교회사연구소 관장 신부) = 최 신부의 천주가사에 나타난 하느님의 개념은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전통인 보유론(補儒論)의 틀 안에서 설명된다. 유교에서 말하는 '상제'와 천주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이 근본적으로 같은 분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에서 밝히지 못하는 영혼과 사후 세계의 질서를 설명하며 천주교에서 말하는 신론의 고유성을 밝힌다. 그 대표적 호칭이 조물진주(造物眞主)다. [평화신문, 2001년 4월 8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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