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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미혼모 보호: 생명존중 사회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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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23 ㅣ No.866

[생명의 문화를 향하여] 미혼모 보호 - 생명존중 사회 만들기

 

 

미혼모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불문율에 해당했다. 그러고 보면 미혼모를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쉽게 볼 수 있는 최근의 상황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최근 버려진 영아의 시신이 발견되는 끔찍한 사건이 몇 번이나 보도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영아의 부모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여인이었다. 무엇이 이 여인을 그런 행위를 하도록 내몰았는가? 부도덕한 행실을 탓하고 끝낼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미혼모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렇지 않으면 미혼모에 얽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으며 더 큰 죄를 용인할 수 있다.

 

 

미혼모에 얽힌 현실

 

미혼모라는 용어에 얽힌 현실을 바라보면, 우선 우리 사회에서 첫 성경험의 연령이 낮아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이 현상의 원인으로 ‘피임기술의 발달’과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자의식’이 지적되어야 한다.

 

문화의 개방은 청소년들에게 성에 대한 자의식을 일찍 일깨우는 충분한 조건이 된다. 자의식의 표출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런 사실을 거부하는 데서 발생할 수 있다. 말하자면, 보수적인 성도덕 관념이 자연스러움을 억압하고, 그 결과 죄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혼모에 얽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죄의식보다는 청소년들이 성적 자의식을 올바르게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런 교육은 청소년들을 성에 책임을 갖는 건강한 성인으로 키워내는 일이며, 이 일의 첫 단계는 지금 청소년들에게 자연스러운 사실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것이다. 이 일은 더욱더 완벽한 피임기술이 발명되기를 기대하는 일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두 번째 현실은, 미혼모는 ‘우리 사회의 현대판 마녀사냥’이라는 점이다. 혼전 임신한 여성은 미혼모라는 불명예와 불이익을 감수하든지 아니면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극단의 상황으로 내몰리기 쉽다. 낙태는 미혼모가 겪을 수 있는 불이익을 겪지 않을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낙태도 여성에게 육체적 · 정신적으로 심한 부담감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우리는 왜 ‘미혼부’라는 용어에는 낯선가? 그 이유는 뻔하다. 혼전 임신에 대해 대부분의 남성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 책임은 온전히 여성의 몫이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요한 8,3-9).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돌을 맞아 죽을 처지에 놓였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알고 보면 다 죄를 짓고 산다는 심오한 뜻이기도 하며, 돌을 들고 있는 ‘너희들이 그 여자와 공범이 아니냐.’라는 일침이기도 하다. 사실 그들이 돌을 놓고 도망친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간음 또는 임신은 혼자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남성들은 여인에게 자신의 죄마저 뒤집어씌우고 마녀사냥을 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번영과 평화를 누리면서도 남성의 공격적인 성향을 부추기는 향락주의적 방종의 문화에 젖어 부패된 사회에서 저질러지는 잔학 행위를 생각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를 선택하는 것은 중죄입니다. 그러나 여성을 탓하기 전에, 그것은 남성의 죄이며, 사회 전반의 환경이 그 공범자입니다”(여성들에게 보내는 교서, 5항, 1995년 6월 29일). 부도덕한 마녀가 되지 않기 위한 혼전 임신 여성들의 고뇌는 바로 우리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혼모에 얽힌 세 번째 현실은, 미혼모는 ‘가난이 대물림 되는 자리’라는 점이다. 중 · 고등학교에서 임신한 학생들에게 내리는 조치는 퇴학이다. 그 학생들에게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것을 허락하는 일도 가끔 있었다. 이런 경우 다른 학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전학시키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라도 학교는 임신한 학생들을 퇴학시키는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다.

 

대학졸업자도 취업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중 · 고등학교 중퇴자가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들이 혼자 몸으로 생활비와 자녀양육비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한 부모 가족이 겪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자녀 양육문제다. 게다가 어머니 혼자일 경우에는 대부분 경제적 문제도 안게 된다.

 

여성정책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의 연평균 소득수준은 남성들의 절반 수준에 머무른다. 소득 수준은 자녀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에는 교육 체계가 팽창하면서, 가난해서 공부 못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소득 수준과 교육 기회의 관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학력 수준은 경제 수준과 비례하며, 저소득층 학생들의 학업 성취 능력은 중산층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부모의 교육 수준과 직업 · 사회적 환경이 자녀 교육에 영향을 미치며, ‘개천에서 용 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은 당사자에게 고통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하나의 요소다.

 

이외에 미혼모에 얽힌 또 하나의 중요한 현실은,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독신, 이혼, 결혼의 지연 등은 오늘날 ‘가정의 위기’를 실감케 한다.

 

결혼이 지연되거나 감소하는 원인은 ‘가정 공동체’에서 독립하려는 개인주의적 성향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가정을 꾸리려는 준비기간이 길어지는 것이라 추측한다. 이 현상은 오늘날 경제 위기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집 장만, 자녀 양육, 노부모 부양 등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심적 · 물적으로 큰 부담감이 되고 있다.

 

이와 비례하여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이른바 정상 코스보다는 혼전동거라는 비정상 코스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만큼 혼전 임신의 가능성은 더 커지는 것이다. 이 문제는 가정이 갖는 부담을 줄여야 하는 과제를 던진다. 노부모 부양, 자녀 양육 등과 관련하여 가정이 원하는 복지가 반드시 강화되어야 한다.

 

 

미혼모는 사회 문제

 

미혼모에 얽힌 현실들을 알고 보면 그 문제들이 대부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청소년들을 인정하는 문제, 남녀평등 문제, 개인적 · 사회적 빈곤 문제, 가족복지 문제 등이 미혼모라는 용어에 녹아있다.

 

따라서 미혼모를 보호하는 일은 우리 사회를 생명존중 사회로 만드는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녀들이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를 출산하게 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창세기 2장 7절에는 인간 생명의 속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인간 생명은 흙으로 빚어진 몸과 하느님이 불어넣으신 바람(영혼)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 내용을 두고 신학적 인간학은 ‘전(全) 인간’을 말한다. 인간 생명은 육체만 또는 영혼만을 뜻하지 않는다. 또 경제적으로만, 사회적으로만, 종교적으로만 파악될 수 없다. 생명은 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관련하는 수없이 많은 모든 차원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생명존중 사회란 사람들이 육체적 · 정신적 · 사회적 · 경제적인 모든 차원에서 존엄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곳이다. 생명존중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미혼모를 보호하려고 한다면, 미혼모에 얽힌 문제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녀가 있어도 학교에 갈 수 있고, 직장에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결혼 전에 자녀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불이익을 감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또 결혼 전에 낳은 자녀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공동책임을 가져야 하고 그 자녀들이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또래의 아이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부담 때문에 결혼 또는 자녀를 원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서도 안 된다.

 

이를 위해 국가는 필요한 혜택을 제공해야 하며, 사회는 시대에 맞는 사고방식을 갖추어 청소년 교육에 힘써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형성되지 않고는 혼전 임신한 여성에게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당위적 말은 폭력에 불과하다.

 

 

미혼모 보호

 

결혼하지 않고도 혼자 자녀를 키우는 여성들의 사정은 다양하다. 그들 가운데 자녀를 입양하여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정적으로만 인식되는 미혼모의 다른 표현들도 나타난다. 출산을 앞두거나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를 ‘두리모’, 혼자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를 통칭하는 ‘싱글맘’이 있다.

 

여성가족부에서는 미혼모부자지원기관을 운영하며 두리모 가정에게 출산비와 기타 생필품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것으로 싱글맘 가정을 위한 복지수준이 양호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우리 신앙인은 모든 생명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신앙적 진실에 근거하여 일찍부터 교회는 미혼모 보호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교회가 운영 중인 시설은 미혼모 시설과 미혼모자 공동생활 시설을 합쳐 열다섯 개다. 정부가 운영하는 대략 열일곱 개보다 적다고 할 수 없을뿐더러, 미혼모자들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생명 수호를 위한 큰 공헌이 아닐 수 없다.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는 올해 초에 “새 생명 프로젝트”를 세우고, 청소년 조기 생명 교육, 미혼모에 대한 사회 인식 재고, 두리모 복지지원 등을 위한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더구나 정부 관련단체와 다른 종교들과의 연대활동을 적극 모색하기로 했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교회활동이 갈 곳 없는 미혼모자들을 보호하는 수동적 활동에서 사회가 그들을 생명의 선물로 받아들이게 하는 적극적 활동으로 변화하고 있다.

 

교회는 더 나아가 가정을 수호하는 범위까지 활동을 넓힐 필요가 있으며, 우리 모두는 우리 사회를 생명과 화해시키는 ‘생명의 복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 심현주 율리안나 -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가톨릭 사회윤리를 전공하였고,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9월호, 심현주 율리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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