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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 - 파스칼의 팡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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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8-12 ㅣ No.86

[도서칼럼] 도서 ‘팡세’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 파스칼의 «팡세»

 

 

지난 6월 19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흥미로운 교서1)를 발표했습니다. 블레즈 파스칼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는 교서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파스칼(1623-1662)은 39세에 요절한 천재적인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하는 《팡세(Pensées)》라는 책을 남겼고, 신학적 논쟁으로 예수회원과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파스칼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그 천재성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파스칼은 그런 성취에 자만하지 않았고, 그래서 교황님은 그를 “지칠 줄 모르는 진리의 추구자, 보다 새롭고 보다 큰 지평에 개방되어 안주하지 않는 영의 소유자”라고 묘사합니다.

 

파스칼은 여러모로 제게 흥미롭습니다. 수학이나 과학에서 천재성으로 주목받지만, 공공의 문제에 관심을 보인 점에서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오늘날 대중교통의 시초가 되는 옴니버스 마차를 세계 최초로 파리에서 시도했습니다. 교황님은 이런 측면에서 파스칼이 당대의 문제, 그가 살았던 모든 사회 구성원의 물질적 필요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말합니다. 교황님은 지식인이나 엘리트가 자신의 성공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관심을 두기를 바라기에 이 측면을 강조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게 좀 더 흥미로운 지점은 파스칼의 ‘회심 체험’입니다. 교황님 서한에서는 이를 “회심, 주님의 방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체험은 그가 31살이던 1654년 11월 23일 밤에 일어났습니다. 그는 “불”, “확신”, “기쁨의 눈물”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자신의 강렬한 체험을 간접적으로 표현했고, 그 글을 옷의 천 사이에 넣고 꿰매어 가슴에 품고 살았는데, 그가 죽은 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이 만남의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엿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철학자와 식자의 하느님이 아닙니다.”라고 썼습니다. 이성과 지식을 넘어서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갖는 절대 지평을 느끼게 합니다.

 

파스칼이 남긴《팡세》는 단편적인 글을 모아 놓은 유고집입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칭찬받기를 원하면 자화자찬을 하지 말라.” 등 유명한 금언이 실려 있지만 재미있는 책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인간과 신앙에 대한 파스칼의 통찰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의 지평 안에서는 종교를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거나, 예수님을 ‘인생 코치’ 정도로 여기는 식의 현대 ‘합리적’ 종교인이나 ‘합리적’ 세속인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 책에서 “인간의 비참을 모르고 하느님을 아는 것은 자만을 낳는다. 하느님을 모르고 인간의 비참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 또한 “인간의 위대함은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데 있다.”라고 설파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구원을 옹호하고 전하고자 했던 파스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에게서 우리도 신앙의 보물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고자 하는 영감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Sublimitas et Miseria Hominis)>

 

[2023년 8월 13일(가해) 연중 제19주일 서울주보 7면, 김우선 데니스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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