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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 미사 없이 성체께 드리는 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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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13 ㅣ No.143

[전례] 미사 없이 성체께 드리는 공경 (1)

 

 

“성체 신비 공경 훈령(Eucharisticum Mysterium)”(1967. 5. 25)의 제3부는 미사를 드리지 않을 때 성체께 드리는 공경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훈령은 1973년 6월 21일 경신성성의 교령과 함께 공포한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신심 예식서(De Sacra Communione et De Cultu Mysterii Eucharistici extra Missam)”로 결실을 맺었다.

 

미사 때가 아닌 보통 때 성체께 공경을 드리는 신심은 그리스도께서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교회는 이러한 성체신심과 관련하여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영속적으로 현존하신다는 교의를 밝히면서 성체신심이 믿음의 성장과 그리스도인의 삶에 미치는 귀중한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1. 성체 신비 공경

 

성체 공경은 그리스도께서 그 형상 안에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 교의는 아주 오랜 전통을 지닌 것이다. 그러나 “성체 신비 공경”이라는 표현은 고대 전승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말이다. “하늘 신비의 공경”이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더라도, 그것은 오늘 우리가 뜻하는 “성체조배”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성체성사 거행 전체, 곧 미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신학은 성체조배를 가리키는 말로 “성체 신비 공경”이라는 표현을 썼다. 더 나아가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제3부의 제목을 “영속하는 성사인 성체조배에 대하여(De cultu Sanctissimae Eucharistiae prout est Sacramentum permanens)”라고 함으로써 성체 공경을 명백하게 성사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훈령은 여러 곳에서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예배한다(co1ere), 흠숭한다(adorare), 공경한다(honorare)’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우리는 흠숭의 뜻을 지닌 여러 표현들이 성체께 대해 쓰여지고 있는 것을 이 훈령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in cultu sacrarum Specierum”(3g항) “latriae cultum”(3f항), “adorationis cultus”(49항), “cultus sanctissimi Sacramenti”(60항) 등.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드리는 흠숭을 가리키는 표현들이 성체께 쓰여지고 있다. 성체와 그리스도의 완전한 동일성에 대한 신앙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체를 공경하며 그리스도를 흠숭한다는 것이다. “미사 후에 성체를 모셔두는 두 번째 목적은 미사를 드리는 때가 아니라도 영성체를 시켜주고, 형상 안에 감추어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흠숭하려는 것이다”(49항). 또한 이 훈령은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대한 예배는 부분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것은 미사 거행 전체를 통해서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미사 거행 안에서나 미사 후에 미사 성제의 은총을 전파하고자 보존한 거룩한 형상께 예배를 드릴 때나 똑같이 완전한 성체 신비로 생각하여야 한다”(3g항).

 

 

2. 영성체와 미사 성제의 연결

 

거룩한 제사인 성체성사의 중심은 영성체이다. 영성체와 제사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완전히 결합되어 있는 하나이다. “미사에서 제사와 거룩한 잔치는 아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같은 신비에 속한다”(3b항).

 

그리고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행하는 잔치의 형식과 성체와 성혈을 이루는 말씀(“이는 내 몸이다. 너희는 받아 먹어라. 이는 내 피다. 너희는 받아 마셔라.”)은 제사가 영성체를 지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이 예수님의 뜻이었다. “하느님의 백성은 주님의 살과 피를 모심으로써 파스카 제사의 효과를 얻고 새로운 계약을 새롭게 한다”(3a항).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잔치의 형식으로 거행하는 성체성사를 강조하면서 좁은 의미의 성사의 열매들을 얻기 위한 길이라는 뜻에서 영성체와 제사의 밀접한 관련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밀접한 관련성을 생각하면 그저 습관적으로 영성체를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미사에는 참여하면서 영성체를 하지 않는 데에도 커다란 문제가 있다. 제사에서 영성체가 갖는 중요성을 간과하는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영성체를 통해서 우리는 성체성사의 거행으로 봉헌되는 그리스도의 몸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며 죄를 지었을 때는 곧바로 참회하고 고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과 형제들과 화해하여야 한다.

 

이것은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어린이들의 교리교육 때부터 잊지 말아야 할 사실임을 이 훈령은 지적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의 첫영성체를 준비시킬 때부터 이 모든 것을 생각하여 그들의 첫영성체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온전히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표현해야 한다”(14항). 또 다른 자리에서는 “주님의 만찬에 참여함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아버지께 제물로 바치시는 그리스도를 실제로 모신다는 것이다.”(3b항)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영성체와 성찬례의 일치를 분리시킬 수 없다. 성체는 우리 안에 들어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실제로 이루신 제사 안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 공로를 나누어 받는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나누어 받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방법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이것은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신학이고, 이러한 신학은 영성체 규정의 규범이 되었다. “신자들은 영성체로써 성체성사 거행에 더욱 완전하게 참여한다”(31항). 여기에서 자연적으로 현재 거행되고 있는 미사에서 축성한 성체를 모시도록 하는 규정이 나오게 된다. “외적으로 보아 영성체로써 현재 거행하고 있는 제사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도록 신자들이 같은 미사에서 축성한 성체를 받아 모시도록 배려할 것이다”(31항). 또 이어서 훈령은 완전한 표징의 성격이 드려나도록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외적인 표징이라는 뜻에서 거룩한 영성체는 양형으로 이루어질 때에 더 충만한 형태를 지닌다. … 양형 영성체는 성찬의 표징을 더 완전하게 나타내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피로써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의 뜻을 더욱 명백히 드러내고 성찬과 아버지의 나라에서 갖게 될 종말론적인 잔치의 연관성을 더욱 분명하게 표현한다”(32항).

 

그러나 한 가지 형상으로만 영성체를 한다 해서 불완전한 영성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어느 한 가지 형상으로 영성체를 하든지 완전한 그리스도를 전체로 받아 모시는 것이며, 참 성체를 받는다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32항).  [경향잡지, 1997년 2월호, 김종수 요한 신부(주교회의 사무총장)]

 

 

[전례] 미사 없이 성체께 드리는 공경 (2)

 

 

3. 미사 거행 없이 하는 영성체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영성체와 성찬례의 일치를 드러낼 수 있도록 현재 거행되고 있는 미사에서 축성한 성체를 받아 모시도록 가르쳐야 하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영성체를 청하는 교우들에게 미사 때가 아니더라도 성체를 영해 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33항). 그러나 이 훈령은 미사 없이 성체를 영해 줄 때 ‘말씀 전례’를 짧게 거행하도록 권고한다. 어떤 방식으로 영성체를 하든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또한 미사로 거행된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일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주어야 한다. 사실 성체를 보존하는 목적은 미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을 미사를 통하여 재현된 그리스도의 제사에 일치시키는 데에 있다(3e항 참조). 성찬례가 희생제사를 ‘드리시는(in atto)’ 그리스도를 현존하시게 한다면, 따로 보존하고 있는 성체는 희생제사를 ‘드리신(in stato)’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현존하시게 한다.

 

어떤 이유로든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신자들도 영성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참여하는 은총을 누린다. 노자성체는 그 좋은 예다. “노자 영성체는 미사 성제에서 거행되는 파스카 신비, 곧 주님의 죽음과 아버지께 넘어가신 그분의 신비에 참여하는 특별한 표징이다. 이 세상을 떠나려 하는 신자는 노자성체를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성체에서 힘을 얻고 부활의 보증을 받는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든지 죽을 위험에 놓인 신자들은 거룩한 성체를 받아모실 의무가 있다”(39항).

 

영성체는 위에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신자들을 일치시켜 줄 뿐만 아니라 신자 공동체와도 일치하게 한다. 그러므로 움직이기 불편한 노인이나 병자는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영성체를 통하여 신자 공동체에 속하여 있음을 확인한다(40항). 그러므로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목자들은 중병도 아니고 곧 죽을 위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병자와 노인들에게 자주 영성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40항)고 강조한다. 그리고 병자가 빵의 형상으로 영성체할 수 없다면 포도주의 형상으로 성체를 영해 주도록 권고한다(41항). 이처럼 영성체는 개인의 신심으로만이 아니라 온 교회와 일치를 이루고 계신 그리스도의 구원활동에 참여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성체조배

 

교회는 미사가 끝난 뒤에도 그리스도께서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믿음으로 성체께 공경을 드려왔다. 빵과 포도주는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고, 그렇게 하여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체로(substantialiter)’ 현존하신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다.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은 가톨릭 교회 안에 전해 내려오는 관례에 따라 이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공경하며 참 하느님께 드려야 할 마땅한 흠숭을 드린다. 주 그리스도께서 양식이 되시려고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다는 이유로 적게 흠숭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성체 안에 계시며 흠숭을 받으실 분은 주님 자신이시고, 주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변화를 통하여 성체 안에 ‘실체로’ 현존하시기 때문이다(성체 신비 공경 훈령, 3f항).

 

교회가 성찬례를 거행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말씀 안에 현존하시고 사제의 인격 안에도 현존하시며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제사를 봉헌하신다. 미사가 끝난 뒤에는 성체의 형상 안에 현존하신다. 이것이 교회가 미사가 끝난 뒤에도 성체를 감실에 모셔 병자에게 성체를 모셔 가게도 하고, 미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성체께 흠숭을 드리게 하는 이유이다. “미사를 거행하지 않을 때 성당 안에 성체를 모셔두는 첫째요 본래의 목적은 노자성체를 모셔가는 데에 있고, 그 다음의 목적은 미사 때가 아니더라도 성체를 영해 주며 성체의 형상 안에 현존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임을 기억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병자를 위하여 성체를 보존한 것이 성당에 모셔둔 하늘의 음식을 흠숭하게 된 아름다운 관습을 낳았기 때문이다.”(49항). 그러므로 신자들은 성체 안에 계신 주 그리스도를 공경하도록 힘쓰고, 목자들은 여러 시간 동안 성당을 개방하여 신자들이 성체조배를 하도록 자신의 표양과 말로써 이끌어주어야 한다(50항, 51항 참조).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사실은 그 현존을 가능하게 하는 성찬례와 연결되고 영성체로 열매를 맺을 때 그 뜻을 온전히 실현하게 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미사 때가 아닌 때 하는 개인적인 성체조배는 각 개인이 그 미사의 뜻을 마음 안에 새기고 실천하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신자들은 성찬례 거행에 참여하고 일상생활에서 자주 성체조배를 할 때 성체조배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되고 또한 성체성사의 은혜를 충만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사 때가 아닌 때 하는 성체조배는 미사 거행에서 이루어지는 파스카 신비에 신자들을 더 밀접히 결합시켜 주는 좋은 신심행위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비와 그분의 지체인 교회의 신비에 우리들을 온전히 결합시켜 준다. 성찬례는 신자들의 영성체로 완성되고, 신자들은 성체조배로 성체 신비를 더 깊이 체험하며 더 성숙하게 된다.

 

“신자들을 성체께 나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신심은 신자들을 파스카 신비에 더 완전히 참여하게 하며, 그리스도께서 인성으로 당신 몸의 지체들 안에 하느님의 생명을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응답하게 한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그들의 전생애를 아버지께 봉헌하고 그 놀라운 교환으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증진시킨다. 이로써 올바른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열심히 주님의 기념을 거행하며 아버지께서 주신 빵을 자주 받아 모시게 된다”(50항).

 

이처럼 미사 없이 드리는 성체조배는 성체성사의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성체의 신비를 더 잘 이해하게 하고 주님의 죽음의 기념인 성체성사를 올바로 거행할 자세를 갖추게 하며 영성체로써 성체성사의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한다. [경향잡지, 1997년 3월호, 김종수 요한 신부(주교회의 사무총장)]

 

 

[전례] 미사 없이 성체께 드리는 공경 (3)

 

 

5. 성체 보존의 장소

 

“성체 신비 공경” 훈령 52-57항에서는 ‘성체를 보존하는 장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같은 성당 안에는 하나의 감실을 두어야 한다(52항). 그러나 이 감실은 제단 영역 안에 안치하거나 아니면 다른 적합한 장소에 둘 수 있다(54항). 그렇지만 감실 안에 성체를 모셔두는 자리는 그곳이 성당이거나 소성당이거나 모두 “참으로 뛰어난 자리”(53항)이어야 하지만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끊임없이 성체께 조배를 드리고 기도하기에 적합한 장소여야 한다.

 

“가능하다면 감실은 성당의 중심에서 떨어진 경당에 안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혼인과 장례가 자주 거행되고 예술품과 역사적 유물을 찾는 방문객들이 많은 성당일수록 더 그러하다”(53항).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주요 모습들은 미사 성제 안에서 드러난다.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이름으로 모인 신자들의 회중 안에 현존하시고, 다음으로는 성서를 봉독하고 해설할 때에 당신의 말씀 안에 현존하시며, 또한 집전자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고 마침내 특별한 양상으로 성체의 형상 안에 현존하심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성체 현존은 축성의 열매요 또 그렇게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마사 거행 시작부터 미사가 거행되는 제대의 감실에는 할 수 있는 대로 외적인 표징인 성체를 모시는 않는 것이 성찬례의 본성에 더 잘 들어맞는다.” 이것은 “사제가 성체를 모신 다음에 신자들이 같은 성체에서 (축성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도록 하는 더욱 완전한 미사 성제의 참여를 크게 권장한다.”는 전례헌장 55항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모든 사목자들은,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성체 안에만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찬례를 거행하는 동안 줄곧 그 자리에 현존해 계시며 그리스도의 성체 현존은 그 성찬례 거행의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신자들은 그 미사에서 축성한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 사실을 더 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감실에 축성해 둔 성체만으로 영성체를 하다 보면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찬례 거행 자체를 의미없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감실은 성찬례 거행의 공간이 아니라 성찬례 밖에서 이루어지는 신자들의 신심을 위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성당과 연결되는 다른 경당이나 성당의 측랑 쪽에 감실을 안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6. 성체 공경의 여러 양식

 

“성체 신비 공경” 훈령 마지막 부분은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체 공경의 여러 행사와 예식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58항에서는 ‘거룩한 신심 행위’에 관하여 말하고, 59항에서는 성체행렬에 관한 지침을 주고 있다. 성체현시와 성체현시를 끝내는 성체강복에 관한 지침(60-66항)도 제시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성체대회에 관한 언급(67항)으로 이 훈령을 끝맺고 있다. 그러나 이 훈령이 성체신심 전반에 관한 결정적인 지침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음에 나올 실용 문서들을 통하여 구체화할 수 있도록 그 골격만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형태의 성체신심 행사들이나 성체조배는 성체성사의 뜻을 더 잘 이해하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58항). 그 행위 자체로 목적을 다 이루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장엄한 예식과 노래로 거리를 행렬하는 성체행렬은 성체성사에 대한 믿음과 신심을 일반인들에게까지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뜻이 있다(59항). 또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성합이나 성광에 모셔 현시하는 것은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깨닫고 마음으로 그분과 일치하도록 신자들의 정신을 이끌어주는 것이다”(60항). 그러나 성체현시가 미사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외적으로도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성체현시를 미사 끝에 이어 하도록 권고한다. 그리고 현시 때에 할 수 있는 장식은 되도록 피하게 하고 있다. 그러한 장식이 성체성사를 우리의 음식(cibum)과 치료제(remedium), 위로제(levamen)로 세우신 그리스도의 바람을 흐려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60항).

 

“성체를 현시하고 있는 동안 같은 성당 안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것은 금지된다. 비록 지금까지 상반되는 허가나 전통이 있고 또 그것이 아무리 중대한 것일지라도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61항). “법의 규정에 따라 잠시 성체를 현시할 때에도 성체로 강복하기 전에 적절히 하느님 말씀의 봉독과 성가, 기도 그리고 어느 정도 계속되는 침묵 조배에 적당한 시간을 바쳐야 한다…. 미사 끝에 강복만을 주기 위한 현시는 금지된다”(66항). 성체현시 예식의 절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성체현시가 신자들에게 잘 보일 수 있도록 현시대를 사용하더라도 너무 높거나 먼 거리에 올려놓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62항). 그것은 성체성사가 지닌, 형제들의 일치를 위한 식탁의 뜻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성체를 현시하는 동안에는 신자들의 정신이 온전히 주 그리스도께 집중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성서를 읽으며 강론으로 성체의 신비를 깨우쳐주도록 하고 있다. 하느님 말씀에 화답하여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거룩한 침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예식의 하나이다. 현시를 마칠 때에 성체로 강복을 준다. 강복 직전에 “탄툼 에르고”를 노래하는데, 이는 성체께 대한 다른 노래로 바꿀 수 있다(62항).

 

각 지역 교회는 성체의 신비를 더욱 깊이 묵상하며 흠숭하기 위하여 해마다 얼마 동안의 날짜를 잡아서 장엄하게 성체를 현시할 수도 있고(63항), 성체대회를 가질 수도 있다(67항).

 

우리는 미사 없이 또는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체 공경의 뜻과 여러 예식에 관련된 주의사항을 살펴보았다. 어떤 양식으로 이루어지든지 성체 공경 신심과 그 예식은 미사와 관련해서 이해해야 하고 미사 성제의 거행을 그러한 신심의 원천으로 또 지향의 정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성체성사 안에 담긴 그리스도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또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향잡지, 1997년 4월호, 김종수 요한 신부(주교회의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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