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새로운 복자: 이중배 마르티노, 원경도 요한, 조용삼 베드로 - 부활 신앙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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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10 ㅣ No.1480

[새로운 복자] 이중배 마르티노, 원경도 요한, 조용삼 베드로 - 부활 신앙의 증인 (1)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교인에게 가장 큰 희망이자 믿음의 근거입니다. 특별히 우리 신앙 선조들에게 이 부활 신앙은 모든 어려움과 둘도 없는 부모와 자녀,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목숨마저 기꺼이 바칠 수 있는 큰 힘이었습니다. 이 부활 신앙을 멋지게 증거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전례적으로 기쁘게 맞이했던 분들 가운데 복자 이중배 마르티노, 원경도 요한, 조용삼 베드로의 삶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사촌 형제였던 이 마르티노와 원 요한은 1797년경 평소 가깝게 지내던 김건순(요사팟)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우게 되면서 새로운(부활) 삶을 시작합니다. 경기도 여주 지방 양반으로서 자기 뜻대로만 살던 삶을 내려놓고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이 마르티노는 본디 용기와 힘이 남보다 뛰어나고 호쾌한 기개가 있었지만 난폭하고 성을 잘 내는 성격이 있었는데, 천주교 입교 후에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부친과 아내에게 교리를 전하고, 교회의 지시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모진 박해와 교묘하게 다가오는 감언이설의 회유가 있었지만, 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원 요한 또한 교리를 배운 뒤에 온 가족을 입교시켰으며, 최창주 마르첼리노(새 복자)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며 부활 신앙을 간직한 가정의 가장이 됩니다.

조 베드로는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 슬하에서 자랍니다. 집이 가난한데다가 몸과 마음이 약하여, 사람들에게 조롱과 야유를 받으며 보잘것없는 사람 취급을 당합니다. 그러나 차츰 신앙을 배워가면서 누가 뭐라 해도 빙그레 웃으며 살아갑니다. 모욕과 조롱조차 신앙으로 극복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조 베드로의 모습을 바라보던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은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 마르티노, 원 요한과 조 베드로의 신앙은 예수 부활 대축일(4월 15일)에 멋지게 드러나는데 그 모습이 황사영의 「백서」에 잘 나타납니다. “1800년 경신년 예수 부활 대축일에는 고기를 삶고 술을 빚어 한마을 교우들과 길가(두메산골의 작은 길)에 모여 앉아 큰 소리로 희락경(喜樂經, 부활삼종기도의 옛말)을 외우고 바가지와 술통을 두드려 장단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가 끝나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나서는 다시 노래를 부르며 이렇게 날이 저물도록 계속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에 군중들이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미하여 외치던 모습, 그때 예수님께서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다.”하신 말씀이 기억에 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우리 주님 부활의 기쁨을 온 누리와 함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기 위한 그들의 부활 신앙 고백.

이 중대한 신앙 고백은 우리에게는 더없이 아름답고 고귀한 행위이며 사건이었지만, 박해자들에게는 천주교 신자들을 찾아내어 체포하고 박해하기 더없이 좋은 기회였으니, 관장은 곧바로 포졸들을 보내어 신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또 다른 부활의 신앙 고백이 준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2015년 5월 10일 부활 제6주일 수원주보 4면, 최인각 바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새로운 복자] 이중배 마르티노, 원경도 요한, 조용삼 베드로 - 부활 신앙의 증인 (2)



예수 부활 대축일에 찬미와 기쁨의 기도를 바치며 동료들과 음식을 나누는 등 큰 잔치를 벌였던 부활의 증인들은 체포되어 관청으로 끌려갑니다. 끌려가던 일행이 원경도 요한의 집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게 해달라고 애원하였지만 거절당합니다.

관청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혹독한 고문과 신자들을 밀고하라는 배교 강요였습니다. 이때 원 요한은 일행을 대표하여 “천주교에서는 다른 사람을 밀고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천주를 배반하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비신자였던 조용삼 베드로의 신앙 용기는 체포되자마자 빛을 발합니다. 조 베드로가 혹독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자 매질이 더욱 거세어졌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박해자들이 조 베드로의 아버지를 끌고 와서 “네가 배교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당장 죽여 버리겠다.”고 하면서 아버지에게 매질을 하자, 조 베드로는 마침내 굴복합니다. 이렇게 굴복하고 관청에서 나오다가 조 베드로는 이 마르티노를 만나게 됩니다. 이 마르티노의 권면을 받은 조 베드로는 곧바로 마음을 돌이켜 관청으로 돌아가 신앙을 고백합니다. 어둠이었던 신앙이 빛의 밝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박해자들은 조 베드로의 신앙이 이미 흔들린 것을 보았기에, 또다시 그의 마음을 꺾을 수 있으리라 여겨 더욱 혹독한 형벌을 가합니다. 조 베드로는 경기도 감영으로도 끌려가 여러 차례 문초를 받습니다. 그런 중에 옥중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마침내 세례를 받습니다. 이후로 더욱 착한 행동과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하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그는 결국 옥에서 숨을 거두고(3월 27일) 순교의 월계관을 받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박해자들에게 “하늘에는 두 명의 주인이 없고,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천주를 위해 한 번 죽는 것뿐이며, 다른 말씀은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조 베드로에게 신앙의 빛을 더해주었던 이 마르티노는 아버지의 설득에도 굳은 신앙을 표합니다. “아버지, 저는 효의 근본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도 저와 같은 신자이시니 부자의 정을 넘어 더 높은 곳에서 이 사실을 바라본다면, 인정에 끌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배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마르티노에게는 의술이 있었는데, 옥중에서 보여준 그의 의술은 평소와는 달리 기적 같은 효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을 치료받기 위해서 감옥이 장사진을 이루었고, 많은 이가 그 효험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 마르티노와 원 요한은 경기도 감영으로 옮겨져 또다시 배교를 강요당하며 혹독한 형벌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서로가 힘이 되어 용기를 북돋워 주면서 유혹을 뿌리치고 신앙을 견고히 해 나갑니다. 감사가 이러한 내용을 조정에 보고하자, 조정에서는 ‘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처형함으로써, 그곳 백성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하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이에 부활 신앙의 증인들은 여주로 압송되어 1801년 부활 시기(4월 25일)에 참수형으로 순교합니다. [2015년 5월 17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수원주보 4면, 최인각 바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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