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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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자연과 인간의 쇄신을 위한 안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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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4 ㅣ No.1545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자연과 인간의 쇄신을 위한 안식년

 

 

안식년(Shemittah)은 안식일과 함께 이스라엘의 독특한 생태 제도이다. 창조의 주기적 활성화를 위해 하느님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안식일이요 안식년이다. 한 주간의 6일, 7년 주기의 6년은 인간과 자연이 활동하고, 이렛날과 일곱째 해는 인간과 자연이 하느님 안에서 쉬면서 자신을 회복하는 시기이다.

 

계약 법전: 탈출 23,11은 일곱째 해를 안식년이라고 부르고 이때에는 “땅을 놀리고 묵혀서, 너희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이 먹게 하고, 거기에서 남는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법전의 주요 관심사는 땅 주인의 소출 독점을 막고, 가난한 이들과 들짐승이 휴경지에서 자라난 것을 먹게 하는 생명 보호 사상이다. 아울러 소와 나귀가 쉬고 여종의 아들과 이방인이 숨을 돌리게 하는(탈출 23,12 참조) 생태적 배려가 담겨 있다.

 

성결 법전: 성결 법전에 나타난 안식년 규정은 “땅도 주님의 안식을 지켜야 한다”(레위 25,2)에서 드러나듯 종교성이 강조된다. 그래서 안식년은 땅의 주인이신 “주님의 안식년”이요 “땅의 안식년”(레위 25,4.5)이라 불린다. 땅은 주님의 것이므로(레위 25,23 참조) 안식년이 되면 땅도 하느님 앞에서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땅이 휴식하는 가운데 땅에서 나는 것은 땅 주인을 포함하여 남종과 여종, 품팔이꾼, 거류민, 그리고 가축과 다른 짐승이 먹도록 해야 한다(레위 25,6-7 참조).

 

신명기 법전: 신명기 법전은 일곱째 해를 “탕감의 해”(신명 15,9)로 부른다. 채무자의 빚은 7년이 되면 탕감된다. 이웃에게 빚을 준 모든 사람은 그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한다(신명 15,2 참조). 그러나 외국인에게는 빚을 갚으라고 독촉할 수 있다(신명 15,3 참조). 주님의 탕감령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가 없도록 하기 위해 선포된다(신명 15,4 참조). 탕감법은 이스라엘 동족에게만 적용되는 한계가 있지만, 이스라엘에는 더 이상 “가난한 이가 없을 것”(신명15,4)이라는 경제 평등주의를 지향한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이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는 완전한 경제 평등주의를 실현하여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이가 없었다고 한다(사도 4,34 참조).

 

안식년에 대한 강조점은 저마다 다르다. 계약 법전은 가난한 이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고, 성결 법전은 땅의 안식을 강조하는 생태주의를 표방하며, 신명기 법전은 채무자의 빚 탕감을 강조한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하면 안식년은 땅을 놀리는 휴경년이고, 빚을 없애 주는 탕감의 해이며, 땅의 휴경을 통해 종에게 자유를 주는 해방의 해이다.

 

안식년의 실천: 이사 37,30에 안식년에 대한 암시가 나온다. “올해에는 떨어진 낟알에서 난 곡식을 먹고 내년에는 뿌리지 않고 저절로 난 곡식을 먹으리라. 그러나 후년에는 씨를 뿌려서 곡식을 거두고 포도밭을 가꾸어 그 열매를 먹으리라.” 예레미야는 종들의 해방을 언급하는데 이는 안식년의 종 해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탈출 21,1-7; 신명 15,12-18 참조). 바빌론 유배 생활에서 본토로 귀환한 뒤에 느헤미야가 실시한 개혁 중 하나가 바로 안식년을 강력하게 실천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곱째 해마다 소출과 온갖 종류의 채권을 포기한다”(느헤 10,32).

 

1마카 6,48-54에 의하면 유다인들은 안티오쿠스 4세의 공격을 받아 벳 추르 방어를 포기하고 시온 역시 포기하였다(요세푸스, <유다 전쟁사> 2,4 참조). 그 해가 안식년이어서 디아스포라 출신 유다인들이 남은 식량을 다 먹었기 때문이었다.

 

요세푸스는 요한 히르카누스의 통치 때 유다 민족이 안식년 기간에 공격을 삼가고, 로마 황제 율리우스는 안식년에 연례적으로 행하던 조공을 면제해 주었다고 한다(안티오쿠스 XIV 10:6). 쿰란 공동체 역시 안식년에 토지를 경작하지 않고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식년이 가까이 오면 빚을 내기가 어려워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명한 라삐 힐렐이 프로스불(prosbul, 채권자가 원하는 때에 빚을 갚겠다고 하는 각서)을 발행하여 안식년이 끝나면 빚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생태 환경법으로 본 안식년: 안식년은 땅을 배려하고 땅을 회복시키는 생태 사상의 선구자적 모습을 제시한다. 인간이 안식년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 인간이 땅을 혹사시키고 땅을 오염시키며 착취할 때 땅은 인간을 저버리고 스스로 안식을 취할 것이다. 레위 26,34-35은 땅이 황무지 상태로 남아 스스로 안식을 취하는 땅의 안식년이라는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배 사건을 암시한다.

 

성경에 나오는 안식년이야말로 자연계와 인간의 근본적 연대성을 강하게 일깨워 주는 제도다. 성경은 이미 아벨과 카인 이야기에서 인간의 죄와 땅의 관계를 잘 암시한 바 있다. 라삐들은 아벨의 죄 없는 피가 땅을 오염시켜 땅의 생산 능력이 반감되었다고 말한다. 아담이 죄를 범한 후 인간은 이마에 땀을 흘려 일함으로써 밥을 먹어야 하는데, 카인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자연계를 오염시키고 노동 조건은 더욱 악화되었다.

 

카인의 죄에 담긴 경제적·종교적·성적 동기를 분석하면, 안식년 제도가 인간의 활동에 대한 일체의 정지를 지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행위를 중단함으로써 소유에서 해방되고, 안식년 기간 중에 얻어야 할 양식을 오로지 자연에 대한 하느님의 배려에 의존하여 하느님의 주권과 창조 권능에 인간의 생명을 되돌려 드린다.

 

안식년 제도는 존재의 깊은 휴식을 통해 오로지 종교적 주제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고, 성적(性的) 유혹에서도 자유로워질 것을 권장한다. 일부 라삐들은 안식년에는 자녀 출산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식량이 충분하지 않아 자녀를 올바로 양육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간의 화살은 외적인 곳에서 내적인 곳으로 방향을 바꿔 날아간다. 그러므로 안식년은 한 주기(7년)를 마감하고 새로운 주기로 넘어가는 창조적 쉼의 기간이다. 이로써 자연과 인간은 한 주기 동안 축적한 왜곡과 파괴, 변질과 쇠잔을 일신하고 새로운 면모로 창조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땅과 인간의 쇄신과 새 창조는 안식년 제도를 통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2014년 한 해를 마감하며 끝없는 생산과 소비와 소유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인간과 자연의 해방을 위한 안식년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고 싶다.

 

* 백운철 신부는 1985년에 사제품을 받고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며, 신학대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2월호(통권 465호), 백운철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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