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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가쿠레키리스탄의 발자취: 숨어서 피운 신앙의 꽃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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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2-21 ㅣ No.887

가쿠레키리스탄의 발자취 - 숨어서 피운 신앙의 꽃 (중) 혹독한 박해 · 척박한 땅에서 일궈낸 기적같은 신앙

 

 

1902년 마르만 신부에 의해 완공된 쿠로시마성당. 척박한 섬에 사는 가난한 신자들의 손에 의해 지어졌다고 믿기엔 너무도 크고 장엄한 모습이다.

 

 

또 하나의 신앙의 섬 쿠로시마

 

쿠로시마(黑島). 검은 빛의 화강암이 뒤덮여 있어 흑도란 이름을 갖게 된 쿠로시마는 에도막부 시절 히라도한[平戶藩]의 영지였다. 농사를 짓고 살기엔 땅이 너무 척박해 히라도 영주의 방목지로 쓰이던 이 섬엔 소나 말을 관리하던 불교도들만이 항구 근처에 작은 취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척박했던 이 곳에 가쿠레키리시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다. 불교도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항구가 아닌 섬 뒤편 언저리에 배를 댔다고 한다. 1865년 당시 이 작은 섬에 약 600여 명의 가쿠레키리시탄들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으니, 섬의 척박함 정도와 이주해온 신자수를 생각해 볼 때 당시 박해가 얼마나 혹독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쾌속선에서 내려 항구를 지나 언덕을 올랐다. 땅 곳곳에 드러나 있는 검은 화강암과, 평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탈길들. 6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작고 척박한 섬에서 어떻게 살아갔을까 생각하며 걷다 고개를 드니 저 멀리 십자가가 보였다. 섬의 가장 높은 곳, 중앙부에 자리잡은 쿠로시마 성당이다. 폐가로 보일 만큼 허름한 단층집들이 성당으로 가는 길옆으로 늘어서 있었다.

 

이번 여행의 안내자 이리구치 히토시(나가사키 순례센터)씨는 “집이 허름해도 모두 사람이 살고 있다”면서 “그들 모두 교우”라고 귀띔한다.

 

쿠로시마성당 내부. 높은 천장과 화려한 제단 곳곳에 옛 신자들의 열망이 엿보인다. 현재 570여 명 섬 주민의 85% 이상이 신자로서 이 성당에서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고 있다.

 

 

쿠로시마성당은 화려했다. 이토록 척박한 땅 위에 이처럼 가난한 신자들의 손에 의해 세워졌다고 믿기엔 너무도 크고 웅장한 모습이었다. 그 화려함과 웅장함이 바로 신자들의 신앙심인 듯 보였다. 먹을 것 없이 가난해도 주님의 성전만큼은 크고 화려하게 지으려 했던 옛 신자들의 마음만큼 성당은 장엄했다.

 

쿠로시마성당은 1898년 쿠로시마 섬을 찾은 마르만 신부가 프랑스에서 조달해온 자금과 신자들의 노동력으로 지어 1902년 완공됐다. 열악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쿠로시마 화강암으로 기초를 튼튼히 다졌고, 40만 개의 벽돌을 쌓아 트리포리움(triforium, 교회 입구의 아치와 지붕과의 사이)과 높은 창이 있는 웅장한 교회를 지었다. 교회 내부는 놀라울 정도로 화려했다. 좋은 목재를 구할 돈은 없었지만 성당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신자들이 직접 손으로 그려넣었다는 나뭇결 무늬는 실제보다 더 실제같았다. 쿠로시마 화강암으로 만든 제대 밑 제단에는 아리마 지방에서 구해온 타일을 붙였다. 이 타일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압송된 조선의 도공들이 전수한 기법이다. 조선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하얀 바탕에 쪽빛 무늬 타일을 보니 일본 교회와 우리나라가 역사 속에 함께 있었음이 더욱 실감났다.

 

쿠로시마성당 공원묘지엔 유난히도 검은 화강암으로 만든 비석들이 살아생전 부귀를 누려보지 못한 옛 신자들의 묘역을 멋있게 장식하고 있었다. 사세보시 쿠로시마지구 공인관 주사 야마우치 카즈나리(요셉)씨가 가쿠레키리시탄들의 교우회장이었던 데구치의 묘를 소개한다. 쿠로시마성당이 지어지기 전 가쿠레키리시탄들은 데구치 교우회장의 집에 모여 오라쇼(구전으로 전해온 라틴어 기도문)를 바치며 신앙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1865년 ‘오오우라천주당 신도발견’이 있은 지 2개월 후, 데구치 교우회장은 오오우라천주당을 찾아가 사제를 만났고 쿠로시마 섬에 600명의 신도들이 있다고 알렸다. 쿠로시마가 가쿠레키리시탄의 섬이라는 것을 밝혀 훗날 페루 신부, 마르만 신부 등 선교사들이 이곳으로 찾아올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데구치 교우회장의 목숨을 건 나가사키 행의 결과물이었다. 600명의 신도들을 이끌었던 데구치 교우회장의 행적에서 오늘날에도 교회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평신도의 힘을 엿볼 수 있었다.

 

 

아픔의 기억 - 당신은 가쿠레키리시탄입니까?

 

259년간 신앙을 지켜왔던 가쿠레키리시탄은 이처럼 평신도 지도자를 중심으로 결속을 다져야만 했다. 평신도 지도자 중 빼 놓을 수 없는 인물, 바스챤의 흔적을 좇기 위해 쿠로시마 섬을 뒤로 하고 다시 배에 올랐다.

 

바스챤은 사제를 대신해 소토메 지방 교우들을 보살피며 도왔다고 전해지는 가쿠레키리시탄 평신도 지도자다. ‘바스챤 교회력’, ‘바스챤 예언’ 등이 소토메, 고토, 나가사키의 가쿠레키리시탄 사이에 전해져 신앙의 지주가 되기도 했던 바스챤. 그는 한낮에도 빛이 잘 들지 않는 울창한 산 속 깊이 삼나무 껍질로 된 작은 움막에 숨어 살며 희망의 예언을 전하고 나가사키 사쿠라마치옥에서 참수됐다.

 

나가사키 순례센터 마츠카씨가 이름모를 가쿠레키리시탄의 무덤을 덮은 돌 위에 돌멩이로 십자가를 만들고 있다.

 

 

그가 전한 예언은 ▲ 7대를 기다리면 사제가 다시 온다 ▲ 고백을 들어주는 사제가 큰 배를 타고 와 언제나 고백을 들어준다 ▲ 길에서도 키리시탄의 노래를 크게 부르며 활보할 수 있다 ▲ 길에서 이교도를 만나게 되면 그들이 먼저 길을 비켜주게 된다 등이다. 가쿠레키리시탄의 어두운 삶에 희망의 빛이 됐던 바스챤의 예언은 1873년 금교령이 해제됨으로써 실현됐고, 그의 이야기는 전설로 남게 됐다.

 

해가 질 무렵 바스챤의 스승 산 지완의 은신처였다고 전해지는 커다란 바위 앞에 섰다. 20~30명은 족히 들어가 앉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커다란 바위 아래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전해들은 이야기’와 ‘예언’에만 의지하며 신앙을 지켜온 가쿠레키리시탄들이 이 바위 아래 몸을 숨기고 낮은 소리로 오라쇼를 속삭였을 생각을 하니,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바위 인근엔 이름모를 가쿠레키리시탄들의 묘지가 낙엽에 가려져 있었다. 나가사키 순례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마츠카씨가 이끼 낀 무덤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작은 돌멩이들을 모아 십자 모양으로 만들며 말했다.

 

“그냥 돌멩이가 아닙니다. 이렇게 십자 모양으로 만들면 십자가가 됩니다. 당시 가쿠레키리시탄들은 신분을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에 무덤에 십자가를 세우지 못했지요. 기도를 할 때에만 돌멩이로 십자가 모양을 만들었고, 기도 후엔 다시 모양을 흐트러트려야 했습니다.”

 

마츠카씨는 잠시 묵념을 한 뒤 바위 인근에 있는 카레마츠 신사로 안내했다. 편의상 ‘신사’란 이름을 붙였지만 실제로는 가쿠레키리시탄들이 모여 기도하는 곳이다. 이곳에선 매년 한 차례씩 가톨릭 신자들과 아직 가톨릭으로 돌아오지 않은 가쿠레키리시탄, 세례명을 갖고 있는 불교 신자들이 모여 미사를 봉헌한다.

 

마츠카씨는 “이들이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이유는 가톨릭신자도, 가쿠레키리시탄으로 남은 이들도, 불교도이지만 세례명을 갖고 있는 이들도 모두 같은 신앙 선조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비석 옆에 조그맣게 십자가 모양이 그려진 한 불교도의 묘를 가리키며 ‘가쿠레키리시탄의 묘’라고 말했다. 신분을 숨기기 위해 ‘후미에(십자가 밟기)’를 하기도 했고, 불교 법명을 받아 ‘불교도’로 가장한 채 살다 ‘불교도’로 죽어야 했던 가쿠레키리시탄의 슬픈 역사가 카레마츠 신사 옆 공원묘지에 묻혀 있었다.

 

마츠카씨에게 “당신도 가쿠레키리시탄이냐”고 물었다. 마츠카씨는 “‘가쿠레’의 뜻이 ‘숨다’란 뜻인걸 알고 있지 않냐”고 반문하며 대답을 대신했다.

 

“가쿠레키리시탄에는 세 종류의 뜻이 있습니다. 복잡한 역사와 박해의 아픈 기억 속에 여러 의미를 띠게 됐지요.”

 

망설이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마츠카씨의 낮은 목소리 속에 가쿠레키리시탄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톨릭신문, 2010년 12월 19일, 임양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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