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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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교토(京都) 천주교 성지 (4) 묘신지 슌코우인에 있는 예수회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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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09 ㅣ No.1468

교토(京都)에서 분 바람 - 교토 천주교성지 ④ 묘신지 슌코우인에 있는 예수회의 종(鐘)



교토시(京都市) 서쪽에 위치한 우교구 하나조노(右京區 花園)에 묘신지(妙心寺: みょうしんじ)라는 절이 있다. 린자이슈 묘신지파(臨濟宗 妙心寺派)의 총 본사인 이 절은 3만평이 넘는 광대한 땅 안에 40여 개가 넘는 사찰이 들어서있다. 린자이슈 묘신지파는 중국의 송나라에서 수행을 쌓은 에이사이(榮西)에 의해서 열린 종교로, 불교 중 선종(禪宗)의 한 파이다. 그런 린자이슈 묘신지파 중의 한 사찰이 1590년에 처음으로 건립이 되었고 여러 번 개축되는 과정에서 그 이름이 슌코우인(春光院: しゅんこういん)으로 바뀌게 되었다.

슌코우인 절의 정면에는 훌륭한 두 개의 문이 있는데, 왼쪽 문은 황실(皇室: 천왕 일족) 등 특별한 손님을 맞이할 때 사용하는 문으로 평상시에는 굳게 닫혀있는 칙사문(勅使門: 쵸쿠시몬)이고, 오른쪽 남문은 일반객들이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이다. 어쨌든 이 절의 오른쪽 문으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건물이 이어져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곳에 교토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난반지(난반이란 유럽이나 동남아시아의 문물을 가리키는 말로, 난반지는 서양식 절을 뜻한다.)의 범종(梵鐘)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 방문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교토 최초의 난반지는 시죠신마치(四條新町)에 세워졌는데 이는 목조건축 최초의 난반지로, 키리시탄 대명(천주교를 믿는 영주)인 타카야마 우콘(高山右近) 등의 손으로 정성들여 세워진 아주 훌륭한 건물이다. 이 난반지가 세워진 이후로 일본 각지에는 100여 곳이 넘는 난반지가 건립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는 그 중의 단 한 곳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다행인 것은 교토 최초의 아름다운 난반지의 모습이 가노파(狩野派)의 화가에 의해 그림으로 그려져 지금도 코베시립박물관(神戶市立博物館)에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유의할 점으로 슌코우인의 범종(梵鐘)이 있는데 이 범종이 바로 최초의 난반지의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 범종의 표면에는 ‘1577’이라는 숫자와 ‘IHS’가 새겨져 있다. 예수회의 문장(紋章) IHS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여 그리스어로 “예수”의 첫 세 글자, 혹은 라틴어의 “인류의 구세주 예수”의 머리글자라고 한다. 또 범종의 표면에 1577년이라는 연호도 새겨져 있기 때문에 1578년에 세워진 근사한 성당인 난반지에서 아름다운 종소리를 울렸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종이다. 무엇보다 이 종은 슌코우인에서 지금도 여전히 하루 일과를 알리는 종으로, 그 아름다운 종소리를 매일 울리고 있다. 그리고 원래 동양의 종은 밖에서 치지만 이 종은 서양식 종이라 밖에서 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종을 치고 있다.

그런데 이 종이 어떻게 이 절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1854년쯤 묘신지 북쪽에 있는 닌나지(仁和寺)에서 받았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 당시에는 막부(幕府: 일본에서 군인 정치의 정부)의 눈치를 보고 조선에서 건너 왔다고 했었는데, 뒤늦게 포르투갈에서 가져 온 ‘예수회의 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태평양전쟁이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비행기나 대포, 군함을 만들기 위해 각 가정에 있는 가마솥까지도 군에서 몰수해 가던 시절에 이 절에도 군인들이 찾아 왔다. 그 당시 묘신지의 주지(主持)는 절과 직접 상관이 없고 또 그때까지만 해도 조선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던 이 종을 내놓으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연호가 새겨진 이 종이 실은 일본에 천주교를 전교하기 위해 보내온 유서 깊은 소중한 신앙의 증거라는 사실을 알고는 “이것을 내놓을 수가 없다! 키리시탄을 위해서 어떻게든 이 종은 지켜야 한다!”는 굳건하고 의연한 태도로 이 종을 땅에 묻어서 지켰다. 그리고는 종 대신 절에 있던 또 다른 소중한 비품들을 군에 제출하였다. 이 일로 인해 이 절에는 소중한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아직까지도 갖추어 두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처럼 슌코우인 주지의 사랑이 담겨져 있었기에 이 종은 오늘날까지 옛날 모습 그대로 지켜져 왔을 것이다. 새삼 우리 천주교의 소중한 유물을 지켜주었던 슌코우인의 주지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한편 이 종의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줄의 선이 그어져 있는데, 그 세 줄의 선이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종의 한가운데에는 연호가 새겨져 있고 연호와 함께 예수회의 문장(紋章)도 볼 수 있는데, 그 문장에는 세 개의 못 같은 것도 보인다. 그것들은 예수님의 양쪽 손바닥과 발에 박혔던 못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 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도 옛날 모습과 종소리가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에 더욱 하느님의 섭리를 느끼게 한다.

최근 교토 묘신지(妙心寺)의 슌코우인(春光院)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를 실시하고 있으며, 미리 예약하면 좌선(坐禪)체험, 다도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나아가 예수회의 종(鐘)뿐만 아니라 키리시탄과 관련이 있는 또 다른 미술품들도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참고도서 : 스기노 사카에 저서 《교토의 키리스탄사적을 돌아보다》, 산가쿠출판)

* 이나오까 아끼 님은 현재 프리랜서로 통역 및 가이드로 활동 중이며, 비산성당에서 10년째 교리교사를 하고 있다고 해요.

[월간빛, 2015년 4월호, 이나오까 아끼, 쥴리아(비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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