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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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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유럽의 성모신심 순례지: 스페인 몬세라트, 오스트리아 마리아젤, 폴란드 쳉스토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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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5-28 ㅣ No.916

[성모성월 기획] 유럽의 성모신심 순례지 (하) 스페인 몬세라트 · 오스트리아 마리아젤 · 폴란드 쳉스토호바


당신의 품에서 항상 쉬게 하소서

 

 

스페인 몬세라트 : ‘루카’ 만들고 ‘베드로’ 옮겨와

 

성 베네딕도회 산타마리아 데 몬세라트 대수도원 성당에 모셔져 있는 검은 목각 성모상.

 

 

스페인 동북부 카탈루냐주에 있는 몬세라트(Montserrat)는 스페인의 3대 순례지로 꼽힌다.

 

몬세라트는 ‘톱니 모양의 산(Mons serrtus)’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톱으로 썬 듯한 거대한 바위 기둥들이 기묘한 형상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성 베네딕도회 산타마리아 데 몬세라트 대수도원, 그리고 수도원 성당에 모셔져 있는 검은 목각 성모상으로 인해 유명해진 장소다.

 

이곳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십자군전쟁 때 이 산에서 아랍인들과 전투를 벌인 위프레도 백작이 은수처에 대한 내용을 남긴 것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 후 1023년 위프레도 백작의 증손자 리폴 신부가 은수처를 확장해서 수도원을 설립했고, 12세기에 목각 성모상을 모신 성당이 건축됐다고 한다.

 

몬세라트에 있는 성모상은 검은 얼굴빛으로 인해 ‘흑인 성모’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는데 전승에 따르면 복음서의 저자인 루카가 조각한 것을 사도 베드로가 스페인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이후 8세기경 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이 지배할 때 동굴 속에 감춰졌던 것을 880년 우연히 발견했다는 것이다. 12세기경 성모 발현과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번지면서 남유럽 각지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왔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몬세라트 성모에 대한 신심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던 시기 국론을 모으는 구심점이 됐으며, 몬세라트 출신의 보일 신부가 중남미에 선교사로 파견됨으로써 몬세라트는 중요한 선교 거점이 되기도 했다.

 

몬세라트는 스페인 국왕들 대부분이 방문한 순례지라는 점에서도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외에 프랑스 루이 14세와 오스트리아 페르난도 3세 등도 직접 방문했다고 한다. 또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및 괴테, 실러, 바그너 등 유명 예술가들이 몬세라트 성모상 순례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오스트리아 마리아젤 : 은총 서려있는 ‘마리아 모신 방’

 

마리아젤대성당 중앙 제대에 모셔진 성모상을 보기 위해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스트리아 카펜베르그 북쪽 스티리아 알프스산맥 북부 산중, 잘차 계곡에 있는 마리아젤(Mariazell)은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성모신심 순례지다.

 

과거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시대에는 가장 중요한 성모신심의 장소였고, 현재도 동유럽 지역 안에서 성모신심을 북돋우는 성지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마리아젤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마리아를 모신 작은 방’의 의미다.

 

해마다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헝가리 등 인근 지역에서 수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오는 곳인데, 이는 바로 대성당 제대 중앙의 라임나무로 조각된 성모상에 대한 신심과 공경 때문이다. 이 성모상은 그간 많은 기적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기원은 11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막뉴스(Magnus)라는 수도사가 현재의 마리아젤 마을이 있는 첼러탈(Zellertal)에 오면서 나무로 만든 성모상을 가져왔고 이후 경당을 만들어 성모상을 보관했다는 것이다. 마리아젤이라는 마을 이름은 여기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의 마리아젤대성당은 헝가리의 루이 1세가 1644년 그 자리에 있던 작은 목조 경당을 확장해 건립한 것이며 1780년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됐다.

 

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으며 2007년에는 마리아젤 850주년을 기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방문했다.

 

 

폴란드 쳉스토호바 : 침략, 항쟁에서 지켜준 ‘수호자’

 

폴란드 야스나고라수도원에 보존된 검은 성모화.

 

 

매년 전 세계에서 500만 명 이상의 순례객들이 찾아오는 폴란드 최대의 순례지이며 영적 수도라 할 수 있다. 야스나고라수도원에 보존된 검은 성모화를 보려고 수많은 신자들이 쳉스토호바를 방문한다.

 

전승에 따르면 이 그림은 성 루카가 그린 것으로 300년 동안 예루살렘에 숨겨져 있던 중 성녀 헬레나가 성 십자가를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헬레나 성녀는 이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왔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화를 위한 성당을 봉헌했다고 기록돼 있다.

 

검은 성모화는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벨즈를 거쳐 최종적으로 1382년 4월 오폴레 공작 부아디수아프 오폴츠치크에 의해 쳉스토호바에 도달하게 됐다고 한다. 17세기에는 성화가 기적을 일으켜 야스나고라수도원을 스웨덴 침략으로부터 구해주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또 성화를 보관하고 있던 성당을 검은 성모화가 화재로부터 구해냈다는 설도 있다.

 

검은 성모화는 특히 뺨에 두 줄의 상처가 나있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것은 1430년 후스파가 성모화를 약탈하는 과정서 그림을 실은 마차가 떠나지 않자 성모화를 땅에 내동댕이쳤고 일당 중 한명이 칼로 초상화를 내리치면서 두 줄의 상처가 났다는 것이다.

 

이 성화는 처음부터 정치적 불안 시대에 살던 수도자들과 기사들 그리고 치유 은사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병자들, 교회의 일치를 위해 기도해온 신자들로부터 큰 공경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18세기 폴란드가 독립을 지키기 못하게 됐을 때, 성모화는 모든 항쟁의 수호자가 되었고 민중들은 마리아를 해방과 국가 통치권의 수호자로 열렬히 공경했다. 현재에도 폴란드교회의 심장 역할을 하는 곳으로 주교회의를 비롯, 다양한 교회 관련 회의 심포지엄 등이 모두 이곳에서 열린다.

 

[가톨릭신문, 2011년 5월 8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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