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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별별 이야기: 부모와 어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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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2-07 ㅣ No.1022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51) 부모와 어른이 (상)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흔히 ‘어른이’라고 부른다. 안타깝게도 이런 미성숙한 성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충분히 성숙한 성인으로 살아가도 어른이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사랑이 넘치는(?) 부모의 눈에는 다 큰 자식도 항상 걱정되고 불안한 어른이일 뿐이다.

 

부모는 어른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사랑과 관심의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얘야, 운전 조심하고 다녀라” “손주 손녀들 인스턴트 음식 먹이지 마라!” “이번 대림절에는 꼭 판공성사를 보고 영성체해라!” 등의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자녀들은 없을 것이다.

 

이런 관심은 자녀의 가정생활과 사회생활 전반에 쏟아진다. 다 큰 자녀들은 부모의 노파심을 사랑의 표현으로 알아들으면서도 은근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분에 잔소리로 들리기 시작할 때 쌓아왔던 분노를 터뜨린다. 이때 부모는 자식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몰라주는 자식에게 마음의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자식 역시 부모의 과도한 사랑을 정서적 폭력으로 느끼며 저항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힘들어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코헬 3장).” 성인이 된 자녀에게는 청소년기와 다른 형태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도 때와 시기에 맞추어 그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지혜의 말씀일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신었던 꼬까신이 아무리 예뻐도 다 큰 성인에게 신길 수는 없는 법이다. 성인이 된 자녀들은 꼬까신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고무신을 요청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에 속한 동물들은 새끼가 젖을 뗄 때까지 대략 3년을 함께 지낸다. 아주 일부의 포유류만 새끼가 출산할 수 있는 때까지 기다린 후에 독립을 시킨다. 하지만 영장류인 인간만이 부모가 독립해야 할 자녀와 함께 살아간다. 설사 결혼을 통해 원가족과 물리적으로 독립했어도 새로운 가족관계 안에서 부모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사회의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세대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성인기에 접어든 자녀의 뇌 안에서는 독립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부모에게서 독립해도 좋다는 신호 혹은 메시지를 기다리는 것이다. ‘독립해도 좋다는 신호(sign)’, 이것이 성인기에 접어든 자녀들이 부모에게 유일하게 요청하는 ‘새로운 고무신’이다. 자연에서는 새끼가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어미가 새끼를 밖으로 내몰아 독립시킨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부모가 독립시켜주기를 무의식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부모가 그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자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모에게 독립의 신호를 요구한다. 청소년기 부모에 대한 반항심은 바로 독립이 가까워져 왔다는 생물학적 반응의 일부다. 자녀가 부모에게 독립을 청하는 메시지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며 대개 부모와 자식 간의 다양한 갈등을 통해 드러난다.

 

원시 부족사회에서는 자녀가 온전한 성인이 되었다는 독립의 신호를 개인적인 방식이 아닌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확인해 주었다. 바로 성인식이다. 불구덩이를 걷고, 신체 일부를 훼손하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서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공포를 이겨낸 아이들은 자신이 성인이 되었다는 자의식을 강하게 각인시킨다. 온전한 성인이 되었다는 자의식을 지닌 아이들의 뇌는 더 이상 독립의 신호를 요청하지 않는다. 성인식은 성인기 아이들의 생물학적 독립의 욕구를 충족시켜 부모와의 갈등을 공동체적으로 해결하는 중요한 갈등 해소 예식이었다.

 

현대 문명사회의 자녀들 역시 자신들을 온전히 성인으로 인정해 주는 그 어떤 것을 요청하고 있다. 부족국가의 성인식처럼 공동체 예식은 아닐지라도 부모가 자녀에게 ‘새로운 고무신’을 신겨줄 수 있다면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독립해야 할 어른이지만 독립할 수 없어 어른이로 상처받고 있는 자녀들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사랑의 표현인 ‘새로운 고무신’은 과연 무엇일까?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2월 6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 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52) 부모와 어른이 (중)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첫 1년 동안 조건 없이 부모(특히 엄마)로부터 들어야 할 말이 있다. “우리 아기 너무 예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빠와 엄마는 너를 지켜줄 거야!”라는 메시지다. 아기가 생후 12개월 안에(적어도 3년 안에) 부모의 조건없는 축복을 체험하면 정서와 지성, 영성 발달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아이가 사랑과 안정의 욕구가 해결된 건강한 양육환경에서 자라나면 5세 이후부터는 ‘건강한 자기개념’을 갖게 된다.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이며 버려지지 않는다고 확신하면 부모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어떤 환경에서도 손상 받지 않는다. 즉, 부모가 아무리 듣기 싫은 잔소리나 충고를 해도, 혹은 심하게 야단치고 처벌을 해도 자신과 부모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쉽게 잃어버리지 않는다. 건강한 자기개념을 기반으로 한 아이들은 성인기에 접어들어도 부모의 잔소리나 과도한 개입도 긍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 부모에게 실망한다 해도 그것을 승화시킬 수 있는 내적인 성숙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부모가 심리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나름 아이를 사랑으로 돌본다고는 하지만 부모의 심리내적인 불안정성은 자칫 아이에겐 부정적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다. 게다가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 키울 때는 아이의 기질에 따라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다. 아이는 부모와 떨어진 환경이나, 부모의 불안정한 감정상태에 의해 스스로 사랑받지 못한 존재로 인식하고 앞으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아이가 세 살까지, 아니 길게 잡아 다섯 살에 이르렀는데도 사랑과 안정에 기반을 둔 건강한 양육환경을 체험하지 못하면 결국 ‘부정적인 자기 개념’을 형성한다. 자존감의 핵심을 이루는 자기 개념이 부정적으로 형성되면 평생을 거쳐 성격장애의 후유증과 존재의 근본적인 불안을 체험한다.

 

어린 시절 사랑과 안전에 대한 결핍을 겪은 아이들은 성인기에 가까울수록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생물학적인 에너지가 강렬해진다.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세상에 버려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확신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 부모로부터 어른이로 대접받고 있다고 느끼면 강력한 반발심이 생긴다. 성인기 자녀들이 부모와 결별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떨어져 있으면 만나고 싶지만, 만나면 갈등하게 되는 심리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모로부터 온전히 다 큰 성인이 되었다는 메시지, 즉 이제 독립해도 좋다는 신호는 아이들의 결핍을 오히려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부모가 성인이 된 자녀에게 독립의 메시지를 주는 그 자체는 오히려 과거의 결핍을 해소할 수 있는 정말 중요한 치료제가 된다.

 

어릴 때 신었던 꼬까신을 벗어버리고 이제 새로운 고무신을 선사 받게 되는 이 독립의 메시지는 바로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말이다. 과거의 자녀가 어떤 아이였건 상관없이 이제 아이는 온전한 성인이며 스스로 자기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가 바로 “믿는다”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랑과 안정의 욕구에서 결핍을 체험한 자녀들이 치유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하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치료제이다.

 

어떤 부모는 자기 자식을 믿지 못해, 어떤 부모는 자녀가 다 컸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걱정과 염려가 되어서 믿는다는 말을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말은 자식이 “성공할 것이다” 혹은 “잘못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어떤 능력이나 그 결과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온전히 믿는다는 신뢰의 메시지는 자식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더 근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2월 13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53) 부모와 어른이 (하)

 

 

서울에 사는 요한은 추석 명절을 맞아 가족과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어머니 마리아는 외아들과 손주들을 만나 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요한은 농부인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 사이의 외아들로 한 번도 부모님 명을 거스르지 않은 착한 아들이었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해 서울의 명문대학에 들어가 남들이 선망하는 공직에 오르는 등 마을에서도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이런 아들이 귀성길에 오르니 마리아는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었다. 아들을 위해 경작한 각종 곡식과 채소, 남은 명절 음식들을 챙겨 차에 실어주면서 아쉬운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아들~ 떡과 과일을 챙겨 놓았으니 올라가는 길에 출출하면 애들하고 꺼내먹으렴. 혹시 체할 수도 있으니 너무 급하게 먹지 말고 보온병에 넣은 따뜻한 홍삼차를 같이 마시면서 먹어야 해. 그리고 아침 뉴스에 보니 교통이 많이 막힌다는데 걱정이네. 좀 더 집에서 쉬고 막히지 않을 때 올라가면 좋으련만. 바쁘니까 더 붙잡고 싶어도 할 수 없지 뭐…. 차가 막히면 졸릴 수 있으니 절대 졸음운전 해서는 안 된다! 알았지? 졸리면 꼭 갓길에 차 세우고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해. 무리하면 안 된다. 차에서 가족들과 함께 묵주기도 하는 거 잊지 말고!”

 

그런데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리아는 아들의 불만과 짜증이 섞인 고함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 이제 고만 좀 하세요. 저도 다 큰 어른인데 어련히 알아서 하겠습니까? 좀 마음 편하게 보내주시면 안 됩니까? 항상 이렇게 스트레스를 주셔야 하나요?”

 

아들이 걱정되어 몇 마디 당부의 말을 했을 뿐인데 아들이 이런 충격적인 폭언을 하다니. 마리아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들의 막말을 듣고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마리아는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고 아들을 다시 보게 되었으나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들이 왜 자신에게 화를 냈는지, 그 착한 아들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요한은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할 기회라 생각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모가 들려주는 말이 자신을 사랑해서 해 주는 말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고마운 마음보다는 짜증과 분노가 생기는 것이었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에 화가 올라온다는 말에 마리아는 황망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요한이 부모에게 이렇듯 화가 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메시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앞서 언급한 아들을 신뢰하는 부모의 말을 의미한다. 물론 마리아가 요한을 믿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염려와 걱정, 즉 노파심은 모든 부모의 보편적인 마음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자녀가 성인으로서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메시지를 듣지 못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모의 모든 관심과 사랑은 한낱 잔소리에 그치게 되며, 자녀는 부모의 노파심을 아직 자신을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요한아~ 엄마는 항상 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며 신앙생활 잘하리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부모 걱정 시키지 않고 잘 살아왔으니 어련히 잘하고 살지 않겠니? 엄마가 항상 기도하고 있으니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낼 거라고 믿는다. 안전운전해서 잘 들어가고 도착하면 전화 한 통 해주렴!”

 

이처럼 걱정과 염려를 담고 있지만, 아들을 인정해 주는 말을 듣게 됐다면 요한의 마음은 달라졌을 것이다. 믿음과 희망을 담아 당부하는 부모의 말 속에는 자녀를 온전한 성인으로 인정해 주는 메시지가 숨어있다. 이쯤 되면 어른이들과 소통하기 어려운 부모들이 이렇게 한탄할 만하다. “참, 부모 노릇을 하기 어렵구먼!”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2월 20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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