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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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걱정도 팔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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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28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93) 걱정도 팔자인가요?

 

 

Q. 결혼 10년 차 주부입니다. 저는 남편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남편은 낙천적인 사람이라서 도무지 앞날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반면 저는 걱정이 많아 늘 마음이 불안합니다. 남편은 그런 저를 보고 “걱정도 팔자”라고 빈정거리면서 “당신은 레지오 단원이라면서 왜 그리도 믿음이 약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제가 화가 나서 대들려고 하면 남편은 늘 제 입을 막으려고 마태오복음 6장을 펼쳐 보입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이 부분을 보이면서 저보고 믿음이 약하다느니 세속적이라느니 하며 핀잔을 주는데 어린 시절에 세례받은 저로서는 결혼 당시 영세한 남편이 하는 말에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속을 썩고 있습니다. 정말 제가 믿음이 약해서 이런 것일까요? 정말 아무 걱정 말고 오로지 기도만 하면 주님이 모든 것을 다 이뤄주실까요?

 

 

A. 우선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진의를 파악할 필요가 있겠군요. 신문을 볼 때 행간을 읽으라는 말을 합니다. 신문기사 글자 하나하나를 읽어가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주는 의미를 읽으라는 말이지요. 이 복음 역시 행간을 읽을 필요가 있는 대목입니다.

 

간혹 이 부분을 “무조건 낙천적으로 살아라, 혹은 먹고 사는 것은 주님이 다 해결해주신다. 따라서 걱정을 많이 하는 것은 믿음이 약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이런 해석은 자칫 안전불감증이나 무책임한 삶을 조장할 수 있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앞날에 대한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걱정을 하면서 대응을 하는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한 그룹은 앞날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데, 다른 한 그룹은 그냥 걱정만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전자는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는데 반해, 후자는 걱정의 늪에 빠져 자기 인생을 허비하며 삽니다. 주님께서 걱정하지 마라고 하신 것은 후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인지치료 심리학자 리처드 칼슨은 “사람이 걱정에 빠지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심리적 혼란”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걱정이 생기면 머릿속에 걱정에 대한 생각을 채우고 온종일 걱정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은 오히려 합리적 생각이 균형을 잃게 하고 지혜와 상식에 이르는 창구를 막아버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또 앞날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현재 삶을 희생시킬 수 있습니다. 걱정거리가 머릿속에 가득 차면 입맛뿐만 아니라 살맛조차 잃어버려서 죽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걱정의 후유증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매님을 위해 이야기 하나 해 드리지요. 천당에 오랜만에 믿음이 강한 본당신부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서 하느님께서 너무나 기쁘신 나머지 천당 재정의 절반을 풀어 잔치를 준비하셨다고 합니다. 이 신부는 본당에서 강론 때 모든 근심걱정을 다 내려놓으라, 주님께서 뭐든지 다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해서 신자들을 하루종일 성당에서 기도하게 한 것으로 유명한 신부였습니다.

 

그동안 믿음이 약한 본당신부들만 보셔서 식상하신 하느님께서는 이 신부를 천당 신앙성장관으로 임명하고, 모든 천당 주민에게 강론을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베드로 사도가 근심어린 얼굴로 한 장의 공문서를 가져왔습니다. 이 공문은 법원에서 나온 손해배상 명령서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설명하기를 "저 신부가 신자들에게 아무 근심걱정 하지말고 살라고 해서 신자들이 있는대로 아이를 낳아서 인구 과잉이 됐고, 직장인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카드를 벅벅 긁어대서 신자 전체가 신용불량자가 됐으며, 주님을 믿고 아무데서나 뛰어내려서 신자 중 절반이 장애인이 됐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자 신자들이 집단으로 죽은 본당신부를 고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는 수없이 천당 재정 나머지를 풀어 손해배상을 하셨고, 그 바람에 그 본당신부와 하느님께서 노숙자가 되셨다는 썰렁한 이야기입니다.

 

걱정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생이란 크고 작은 걱정의 파도를 헤쳐가는 작은 배와 같습니다. 그런데 죽을 만큼 힘든 걱정들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거리들입니다.

 

따라서 걱정의 늪에 빠져들려고 할 때 '내가 앞으로 10년 후에도 이렇게 살까? 그때엔 이런 모든 일들이 추억이겠지?'하는 혼잣말을 자주 해서 스스로 위안을 주셔야 합니다. 사람을 걱정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해주는 힘은 걱정에서 오지 않고 '희망과 의지'에서 온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걱정거리가 클수록 주님을 믿으며 앞날에 대한 희망을 그리는 하루를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평화신문, 2011년 3월 13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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