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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신유박해 유배지 흑산도: 천주교 문화 뿌리 내린 신앙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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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10-07 ㅣ No.1169

[르포] 신유박해 유배지 '흑산도'를 가다


천주교 문화 뿌리 내린 '신앙의 섬' 흑산도



흑산본당 예수성심상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흑산도를 품고 있다.
 

전라남도 목포에서 쾌속선을 타고 뱃길로 2시간을 달리면 여의도 두 배 크기(16㎢)의 작은 섬이 눈에 들어온다. 섬 주민 4500여 명 중 천주교 신자가 1100명이 넘어 신자 비율이 25%에 이르고 있다. 광주대교구 평균 복음화율(10%)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한 때는 신자 비율이 80%에 달했다.
 
멀리서 섬을 보면 검게 보인다고 해서 흑산도(黑山島)라는 이름이 붙은 이 섬에는 60여 년 전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 그리고 튼튼한 뿌리를 내렸다. 주교회의 미디어부와 함께 9월 26~27일 '신앙의 섬' 흑산도를 찾았다.


흑산항에서 진리 방향으로 20분 정도 걸어가면 바다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방문객을 맞는 예수성심상이 보인다. 흑산본당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2008년 만든 이 예수상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거대한 예수 그리스도상(높이 38m)을 본떠 만들었다. 크기는 브라질 예수상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져 "아름답다"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예수성심상 뒤로 흑산도 천주교회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흑산본당(주임 이준용 신부)이 자리 잡고 있다. 1957년, 목포 산정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면서 배를 타고 흑산도를 오가며 공소 신자들을 돌보던 진요한(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는 신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본당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성당 부지를 마련했다.

먼저 사제관을 건립한 후 사제관에서 미사를 봉헌했는데 신자들이 물밀듯이 모여들어 주일마다 사제관 앞마당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다. 성전 건립이 시급했다. 진 신부는 이듬해 3월 신자들과 함께 공사를 시작해 8개월 만에 돌로 지은 성전을 완성했다. 초대 주임은 진 신부였고 신자 수는 599명이었다.
 
이준용 신부(오른쪽부터), 조인기(마르코) 사목회장, 임송 선교사가 흑산성당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흑산도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본당 설립 7년 전인 1951년이었다. 흑산도 출신 조수덕(마리아)이 육지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적극적으로 전교활동을 시작하면서 신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신자가 계속 늘어나자 조수덕의 아버지 조준열(요셉)은 당시 산정동본당 주임 안토마스(성골롬반외방전교회) 신부에게 도움을 청했고, 안 신부는 정기적으로 섬을 방문해 가정집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1951년 8월 죽항리공소를 시작으로 장도(1954년)ㆍ심리(1956년)ㆍ사리(1957년)공소가 잇따라 설립됐다. 1953년 세례를 받은 이충방(마태오, 72) 장도공소 회장은 "1950년대 초반 흑산도 전체에 천주교 붐(대유행)이 일었다"고 기억했다.

"하느님을 믿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이야기가 돌았어요. 천주교를 안 믿으면 소외되는 기분이 들어서 너도나도 하느님을 믿겠다고 했죠. 저도 처음에는 분위기에 휩쓸려 신자가 됐는데 신앙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하느님을 깊이 알게 됐고, 진실한 신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살고 있어요."

당시 천주교 인기는 대단했다. 장도 마을 주민 70%이상이 천주교 신자였다. 찰고를 통과하지 못해 세례를 받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본당이 설립되면서 천주교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푸른 눈의 선교사들이 흑산도에 전한 것은 복음만이 아니었다. 골롬반회 선교사들은 전라남도에서 가장 가난했던 섬 주민들에게 가톨릭구제회에서 지원 받은 밀가루, 우유, 옷 등을 전달했다. 보릿고개 시기에는 육지에서 구입한 쌀과 보리를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비가 많이 오면 건널 수 없었던 하천에는 다리를 놓았고, 1960년에는 무료 교육기관인 성모중학교를 설립해 아이들을 가르쳤다. 당시 섬에는 초등학교밖에 없어 대부분 아이들이 초등학교 졸업 후 진학을 포기하는 실정이었다.

1960년에는 약국, 1969년에는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골롬반회가 설립한 모든 기관은 '흑산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1970년에는 '대건 조선소'를 설립해 주민들 배를 수리해줬고 1971년에는 발전소까지 만들어 주민들에게 TV, 라디오 등 문명의 이기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줬다.

본당이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 이른바 '밀가루 신자'가 생기기도 했다. 이준용 신부는 "당시 흑산도 주민 중에 교회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면서 "당시 섬 주민 2만여 명 중에 80% 이상이 천주교 신자였다"고 말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미사 복사를 서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견진성사를 받겠다고 자원하는 신자도 많았다. 복사를 서고 견진을 받으면 밀가루 한 포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뜨거웠던 주민들 신앙은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식어가고 있다. 흑산도가 관광지로 유명해지면서 돈 버는 일을 신앙생활보다 우선으로 두는 신자들이 늘어났다. 신자 비율은 줄어들고, 미사 참례율도 떨어지고 있다. 지금은 매주 100여 명만이 주일미사에 참례한다.

이 신부는 "신자들이 예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미사는 꼭 참례했는데 섬에 금전만능주의가 극성을 부리면서 신앙이 많이 후퇴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주일에는 장사를 해야 한다며 '주일미사를 월요일에 봉헌하면 안 되느냐'고 하는 신자까지 있다"고 말했다.
 
흑산도에는 천주교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사진은 세례명으로 이름을 지은 상점들 모습.
 

흑산도와 정약전
 
흑산도와 천주교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배교한 후 흑산도로 유배를 온 정약전(1758~1816)이다. 정약전은 1779년 주어사 강학회 회원으로 천주교를 연구한 한국교회 창설 주역 중 한 명이다.

정약전은 흑산도 인근 우이도에서 1806년까지 생활하다 1807년 흑산도로 건너와 섬 남쪽 사리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이 때문에 정약전이 유배생활을 시작한 1800년대 초반에 천주교가 전해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유배자들은 대개 유배지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하지만 대과(大科)에 급제해 승정원 부정자(副正字)까지 지낸 '지체 높은 양반' 정약전은 어부, 상민 등 낮은 계층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어부들은 서로 싸우면서 정약전이 자신의 집에 있어주길 바랐다고 한다.

1902년, 산정동본당 주임이었던 드예(A.Des hayes,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는 우이도를 사목방문한 후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정약전이 귀양 가 있던 집주인 박인수도 신자가 돼 있었고, 정약전이 조선어 성가를 짓기도 했다"며 "모든 사람이 그를 겸손과 정결함의 모범으로 이야기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약전의 삶을 연구하고 있는 사리공소 임송(아론, 59) 선교사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어울린 정약전의 모습에서 그가 신앙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1815년 다시 우이도로 건너간 정약전은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사리 마을 어르신들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는 정약전을 "약전 할애비"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드러낸다. 또 어르신들 사이에서 "우리 마을에 굉장히 훌륭한 분이 살았다더라"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평화신문, 2013년 10월 6일, 임영선 기자]

 

 

[기획탐방] 흑산도에서 다시 본 「흑산」


순교자 · 배교자의 신앙 모두 한뿌리로 품어낸 섬 …



- 두 팔을 벌리고 바다를 내려다보며 순례객들을 환영하는 언덕 위 흑산성당 예수성심상과 십자가의 길.



‘신앙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갈수록 줄어가는 요즈음이다. ‘순교’ 또한 박해시대의 옛 이야기로 치부하곤 한다. 그렇다면 예전의 신앙과 지금의 신앙은 그 가치가 다를까?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은 여전히 우리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다. 특히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실천돼야 할 가르침으로 강조된다.

‘가톨릭독서문화운동 - 신심서적33권읽기’ 9월 도서로 선정됐던 소설 「흑산」(김훈 저/학고재)은 천주교인들이 실천한 ‘이웃 사랑’에 감동한 조선시대 민초들의 이야기들을 세밀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이 「흑산」의 배경이 된 흑산도에는 뭍에선 사라져간 교회문화유산들이 꽤 풍성하게 남아있다. 순교자성월의 마지막 주간, 주교회의 미디어부 동행 기획취재 현장으로 이 섬을 찾았다.
 

■ 멀고 험난한 바닷길을 거슬러

깊은 바다와 우거진 숲이 푸르다 못해 검은빛을 띤다는 이유로 흑산도라 불린다. 조선시대엔 유배지로, 이후로도 1950년대까지는 오지 중의 오지로 꼽혔던 섬 흑산도를 향하는 뱃길은 여전히 멀다. 서남해 최남단의 섬 흑산도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목포항에서 다시 90여km의 바닷길을 거슬러 가야 한다. 일년 중 2/3 이상은 풍랑으로 발이 묶이는 날이 이어져 잔잔한 바닷길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흑산본당 사리공소.



지금은 쾌속선으로 2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여정을, 300여 년 전 귀양살이를 가던 손암 정약전(1758~1816)은 황토돛단배 바닥에 엎드려 3일간 곤혹을 치르고서야 마칠 수 있었다.

흑산 예리항에 들어서면, 인근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성당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순례객들을 환영하는 예수성심상과 마주할 수 있다.
 

■ 이웃을 사랑하는 진리에 감동

소설 「흑산」속에는 순교자와 배교자가 있다. 죽기 직전까지 맞으며 배교를 강요당하는 이들, 작가는 ‘그러한 배교가 과연 배교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소설을 기획했다. 배교자 정약전과 그의 조카인 순교자 황사영의 삶과 죽음에서 방점을 찍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전개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 인간의 삶이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바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단순 명료한 진리를 통해서다.

작가는 “초기 교회 신자들도 난해한 교리에 감동했다기 보다는, 이웃을 사랑하는 가르침과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에 감동했다”며 “ 이 소설은 사랑의 진리에 감동한 민초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검은 섬 흑산도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 흑산도와 천주교

 

이종암(시몬) 전 사목회장이 성당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에서 전시된 유물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흑산도와 천주교와의 인연은 18세기, 정약전의 유배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약전은 오랜 시간 배교자로서만 인식됐지만, 최근 그의 삶과 신앙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불붙고 있다. 지난 1902년 흑산본당의 모본당인 목포 산정동본당 주임 드예 신부는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보낸 보고서를 통해 ‘정약전이 유배와 머물던 집의 주인인 박인수는 신자가 되었고, 정약전은 조선어 성가를 짓기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약전에 대해 심층 연구 중인 흑산본당 사리공소 선교사이자 정약전 사촌서당 파견자로 활동 중인 임송(아론)씨는 “정약전이 흑산에서 서실을 처음 지었을 때 그 이름을 매심재라 했다”며 “이 한자어를 합성하면 회개를 의미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1950년대 들어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흑산은 그야말로 생활공동체와 신앙공동체가 하나를 이루는 모습을 보였다. 한창 때는 복음화율이 80%를 웃돌기도 했으며, 현재 복음화율도 25% 수준이다. 특히 선교사들은 복음 선포 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경제적 자립과 교육 등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영세한 어민들을 위해 지은 조선소와 발전소는 지금도 흑산에 힘과 빛을 불어넣는 주요 기반시설로 꼽힐 정도다.

흑산본당 주임 이준용 신부는 “선교사들이 지은 흑산의 첫 중학교인 ‘성모중학교’ 건물은 앞으로 ‘흑산도 생활사 유물전시관’으로 확장, 리모델링될 계획”이라며 “이 전시관에는 ‘천주교실’도 갖춰, 현재 본당이 운영 중인 ‘초장골 박물관’의 전시품과 유물 등을 일반인에게 선보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순교자의 신앙도 배교자의 신앙도 모두 한 뿌리로 품어낸 흑산도. 이 섬에 깃든 이웃 사랑의 따스함이 이어지는 한, 흑산도 주민 모두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질 때가 올 것을 믿는다.

 

[가톨릭신문, 2013년 10월 13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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