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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비정규직의 현실과 양극화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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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21 ㅣ No.1245

[경향 돋보기 - 이 땅의 비정규직] 비정규직의 현실과 양극화의 위험성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지난 17년 동안 한국의 고용상황은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 비정규직의 고용상황이 계속 악화하고 있고, 대기업은 필요인력을 인력 파견업체나 중소기업한테서 공급받는 수탈형 노동력 이용방식을 확장해 왔다. 이로 말미암아 나뉜 노동시장의 하위 2차 층위의 규모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청년 고용률은 경제위기를 겪은 스페인보다 낮은 수준이며, 청년들은 십중팔구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다 그만두기를 반복한다. 노인 빈곤율은 4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세 배 가까이 이르고, 마찬가지로 월등히 높은 노인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자기 임금인 청년노동자, 중고령 최하층 노동자의 삶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OECD 국가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자영업자들의 3분의 2는 비정규직의 삶과 다르지 않다. 가계가 곤란한 여성 노동자를 저임금의 단시간 근로자로 활용하는 폭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데,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확대라고 반길 일이 결코 아니다. 절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절반을 넘는 현실에 가해진 이런 노동시장 상황은 IMF 위기 이후 가속화된 부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불안정 고용구조의 만연

서구 국가들은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두 자릿수 실업률을 기록한 실업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반면, 우리나라의 공식 실업률은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모두가 정규직은 아니지만, 고용기간이 1년 이상인 상용직 고용은 늘어나고, 1년 미만의 열악한 일자리인 임시 일용직은 줄어들고 있다.

현 정부는 일자리 정책과 관련해서 ‘아직 부족하나 노력한 성과’라고 평가하지만, 실상은 매우 비관적이다. 1년 이상 고용기간을 가진 상용직이라 해도 수시 해고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정규직의 숫자가 많이 늘었을 뿐이다. 고용률은 60% 아래에서 여전히 답보상태이며, 실업률은 낮다지만 실질 실업률은 올해 1월에 11.9%, 2월에는 12.5%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 임금 노동자 중위임금 3분의 2미만의 임금 노동자로 정의되는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25.0%(2014년 3월 기준 중위임금 190만 원의 3분의 2인 127만 원 미만의 노동자 비율)로 OECD 국가 평균 16%보다 높고, 미국과 함께 저임금 노동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OECD 고용자료, 2011년).

청년 실업률은 11.1%로 고공행진 중이고, 구직 단념자와 18시간 미만 취업자,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 준비생과 ‘쉬었음’으로 응답한 숫자까지 합한 실질 실업률은 30%를 넘는다.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분석으로 작년 8월에 45.7%)가 절반의 임금(같은 자료로 정규직 월평균 임금 289만 원 대비 144만 원)을 받는 악성 고용구조도 큰 변동이 없다.


비정규직의 차별과 빈곤

최근 비정규직의 비율은 45.2%이며,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비율은 49.7%로 나타났다(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2014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 인구조사 부가조사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절반의 노동자가 절반의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은 지속되고 있다. 비정규직 규모는 850만 명에 이르며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통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의 추이를 살펴보면, 비정규직의 비율은 꾸준히 감소해 왔으나 비정규직의 규모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2007년과 2011년의 비정규직 증가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영향 등으로 예상할 수 있으나 2014년 비정규직 증가는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를 권장하면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비정규직의 절대 규모가 유의미한 감소세를 보이지 않으면서 비정규직 중심의 불안정한 고용구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비율은 49.7%로 나타나 비정규직의 임금은 여전히 정규직 임금의 절반에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적어도 사용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임금 인상을 거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2000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73만 원 정도였다. 그러나 2014년 8월에는 145만 원으로 절대적인 금액의 차이가 두 배나 더 커졌다.

저임금 노동의 개선을 위한 거의 유일한 장치인 최저임금은 시급기준으로 2013년 4,860원에서 2014년에는 5,210원으로 전년 대비 7.1% 인상되었다. 월평균 최저임금은 1,088,890원이다. 시간제를 제외한 전체 임금 노동자 가운데 월평균 임금 수준이 최저임금(최저임금 시간당 5,210원을 월 단위 환산)에 못 미치는 노동자들이 11.6%에 이른다.

그런데 정규직의 경우 최저임금을 못 받는 비율이 1.9%인데 비해, 최저임금도 못받는 비정규직의 비율이 26.1%로 18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뿐 아니라 성별에 따라 최저임금을 못 받는 경우가 중첩되어 있다. 같은 비정규직이면서도 남성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최저임금 미달 비율이 15.7%수준인데 비해, 여성 비정규직의 경우 최저임금 미달 비율이 36.7%에 이른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노동자들의 비율이 2년 전인 2012년 8월 자료와 비교해 15.7%에서 11.6%로 줄어 들었으나 비정규직인 경우 성별과 관계없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율이 오히려 더 늘어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득 격차가 늘어남과 동시에 사회 양극화가 더욱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임금 격차 외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사회보험 혜택의 격차 또한 여전히 해소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 직장가입 비율이 정규직은 97.0%에 이르는데 비해, 비정규직은 32.8% 수준인데다가 절반 이상인 53.3%가 아예 적용을 받지 못 한다. 건강보험도 정규직의 직장가입 비율은 98.9%, 비정규직의 경우는 38.1%에 머물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가운데 고용보험에 해당 없는 경우는 약 0.6%에 불과하나, 고용보험에 가입된 비율은 37.9%에 머물고 있다.


악성 고용구조가 낳은 불평등 구조의 지속

악성 고용구조가 더욱 악화된 결과, 소득 불평등과 대량 빈곤층 양산으로 시름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구 소득 기준으로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불평등이 심하지 않은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김낙년 교수(동국대학교 경제학과)의 보정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이러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OECD 최하위 수준의 불평등도를 보여준 것이다.

최근 청소년과 청년층이 아르바이트 등 저임금 노동의 늪으로 내몰리고 있고 고령층의 취업률도 매우 높아지고 있는데,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에 몰려있다. 사회복지제도가 불충분해 사회소득으로 보전하지 못하기에, 청년층도 고령층도 저임금 일자리에 취업하여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현 정부는 비정규 종합대책과 임금소득 등 가계소득 증대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한다면서 파견제와 기간제 합리화를 내걸었지만, 결국 ‘가늘고 길게 평생 일하라.’는 메시지만 던지고 있다. 일해도 가난한 문제를 풀려는 획기적 대책은 없고, ‘고용보장이 되지 않는 비정규직 일자리로 여러 직장을 전전하더라도 눈높이를 낮춰서 저임금 일자리라도 마다하지 말라.’고 채찍만 가하는 형국이다.

이미 우리는 전체 노동자의 25.7%가 저임금 노동자에 속한다(저임금은 전체 노동자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 비정규직 가운데 저임금 노동자는 69.1%에 이른다. 한국 경제가 장기불황 상황으로 빠지는 것을 막으려면 소득을 상승시키는 정책과 함께, 노동권 보장을 통해 저소득 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선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경제구조의 극한적 편중성의 산물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는 일자리 구하기 어려워서 가난하고,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로 집약된다. 저임금의 한계로 일자리의 늪에 갇히게 되는 비율이 높고 그 주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게 된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올린다’(늘지오 정책)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공약의 실현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통해서 드러나듯이,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해법을 정규직 과보호와 비정규직 확대를 의미하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책임론을 거론하지만 10%가 안 되는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다고 해서 저임금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할 수 없다. 오히려 상층 노동자의 임금 압박은 중하층 노동자의 임금 축소로 이어지는 것이 노동시장의 구조적 작용 원리다.

더구나 경력 초반에는 연봉제, 후반에는 성과급제, 말기에는 임금 상한제로 임금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노동자 전반적 생활의 불안정성을 대가로 얻는 것인데, 과연 그 이득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정책이다. 경기는 침체하여 소득의 증가는 갈수록 어려운데, 생활비는 나이가 들수록, 해가 갈수록 오르는 실정이다. 베이비 붐 세대의 중도퇴직, OECD 평균의 세 배에 이르는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 영세 자영업으로 내몰리나 실업과 빈곤의 나락에 직면하는 현 실태의 심각성을 외면한 채 한 줌의 정규직의 안정 기제를 해체하려는 통념만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정규직 과보호론은 대중의 빈곤을 희생양으로 기업 살리기에 전념하는 불황 탈출의 전략일 뿐이다. ‘가늘고 길게 평생 이곳저곳 전전하며 일하라.’는 정책 방향도 잘못되었지만, 이제까지 정책 실패를 반복한 타성에 기댄 정책으로 현실성도 없다.


일자리는 기업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현실의 절박성은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경제 규모도 커지고 수준도 높아지면서 저성장 구조로 빠르게 진행하고 있어 성장에 따른 고용창출 여력도 줄었지만, 더 심각한 것은 성장에 따른 취업자 증가율이 2000년대 들어 급격히 떨어졌고 비교 대상 OECD 국가 가운데 일본을 제외하고 최저이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는 모두 일자리 창출 공약의 반의반도 이행하지 못했다. 일자리 수백만 개(최근 정부는 그 변형으로서 제시한 고용률 70%도 같은 맥락)의 공약은 허황됨은 물론이고, 되돌릴 수 없는 고도성장기의 성장을 통한 고용창출이라는 인식을 왜곡되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일자리는 대기업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책 기조의 변화를 통한 구조적 변화의 산물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 청년고용 의무 고용제 등 이런 기조 변화를 담는 정책들은 고용을 창출하고 안정화하는 사회적 작용 원리의 구축이 핵심이다.


일자리는 경제민주화, 복지체제 구축과 노동중시 체제 조화의 산물

새누리당이 총선 때 구호로 쓴 바 있는 ‘일자리가 가장 중요한 복지이다.’라는 명제는 보수와 제3의 길 노선의 정치 구호이긴 하지만, 복지를 중시하는 사민주의 노선이나 개혁과 진보 노선에서도 다른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구호이다. 전자가 추구하는 ‘노동 의무를 수급권으로 삼는 복지(생산적 복지)’와 달리 ‘노동과 복지의 공존’과 ‘의무가 아니라 권리로서의 노동’에 대한 인식이 양극화 해소에 긴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안정되고 좋은 일자리 없이는 몇 년 간의 관성적인 복지제도 확충만으로 불안정 노동 대중의 생활 불안정과 양극화 심화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소득 개선의 통로로서 가장 중요한 복지의 원천은 좋은 일자리이며, 복지제도와 선순환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이제 불안정 고용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는 대안적인 고용체제 형성의 과제를 재벌체제를 극복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제도 재편성이라는 하위과제로 다룰 것이 아니라, 삼각체제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로 우선순위가 계속 맴돌고 있는 세 주요 과제의 상호 연계성을 인식하고 그에 기초한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그 밑바닥에는 ‘권리로서의 노동’이라는 고용 중시의 발상이자, 노동권 존중의 노사관계가 기초가 된다는 점을 빠뜨리게 되면 삼각형의 진취적 방향성은 상실될 것이다. 비정규직과 실업의 문제는 소득과 돈의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련된 과제이기 때문이다.

* 김성희 -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사)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지금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연구교수이며,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5월호,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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