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신앙과 심리: 화가 나면 아기에게 마구 퍼붓게 돼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26 ㅣ No.245

[신앙과 심리] 화가 나면 아기에게 마구 퍼붓게 돼요

 

 

“아이를 야단치거나 때리고 나면 아기가 무엇을 알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요. 다시는 안 그래야지 하다가 다시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나서 마구 퍼붓고 있어요. 아이가 요사이 손가락을 너무 빨아서 손톱이 짓물러 제대로 자라지 않고 자꾸 엄마 눈치를 보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이런 저의 행동이 바뀔까요?” 

 

자매가 상담을 신청한 것은 아직 두 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딸을 키우면서 화를 많이 내고 그로 인해 아이에게 나타난 불안한 모습을 보며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었다. 30대의 자매는 아이에게 그토록 모질게 하는 것을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나이에 걸맞게 젊고 자신이 있어 보이는 활달한 모습이었다. 

 

과거의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며 좋은 부모라든가 나쁜 부모라는 부담을 받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 그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어려서 ‘착한’, ‘나쁜’ 자녀의 멍에가 이제는 ‘좋은’, ‘나쁜’ 부모라는 부담감으로 양육을 힘겹게 한다. 자녀 양육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육아 이상의 기쁨은 없다며 사랑으로 키우려는 부모들도 가끔씩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려 드는 것 같은 아이의 행동에 좌절할 때가 있다. 부모 중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분노와 좌절, 절망 사이를 오가며 진이 빠지는 경험 없이 아이를 키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최근에 상담실을 찾는 30, 40대 부모(대다수 어머니)들 중 많은 수가 자녀에 대한 분노조절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화를 내는 정도가 지나치고 일관성이 없으며 지속적이라면 부모자녀의 관계는 물론, 자녀의 자존감을 해치므로 다양한 도움을 통해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감정 조절을 하려면 먼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아이 앞에서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난다면 화가 나는 이면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찾도록 돕는다. 겨우 대소변을 가리고 자기주장을 조금씩하며 세상 탐험을 시작하려는 어린 딸에게 왜 그리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인지를 찾아가는 것으로 상담이 시작되었다. 

 

자매에게 유일한 형제인 오빠는 장애인이다. 어려서부터 오빠를 돌보는 부모의 힘든 모습을 보며 자랐고 자신에게 올 수 있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적다는 것을 일찍이 받아들여야 했다. 부모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으려고 너무도 일찍 철든 아이가 선택한 것은 무엇을 하든 부모에게 위안이 되는 착한 행동이었다. 공부도 스스로 하고 엄마의 가사를 돕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 이웃의 칭찬을 받으며 자랐으며 심지어 오빠를 돌보기도 했다. 그러나 부부 갈등이 심해지며 부모는 이혼했고 오빠는 시설에 맡겨지며 가족이 흩어졌다. 

 

자매와 같이 부모화된 아이들은 자신의 내적 욕구가 배제되면서 자신의 요구는 표현조차 못하고 가족들의 요구에만 민감하게 반응해 자신에게 필요한 다른 측면의 발달을 이루지 못한다. 이들은 종종 우울, 불필요한 걱정, 자기비난, 낮은 자존감, 수치심, 과도한 죄의식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신적 분열, 피학적 성격, 자기애적 성격, 신체화 장애, 극단적인 무력감, 과도한 충성심, 초기 애착 및 경계선 혼란 등과 같은 행동을 보일 수 있다. 트라우마 연구를 한 주디스 헤르만은 형제들의 질병이나 장애, 혹은 부모의 비교 등은 자녀들에게 지속적인 트라우마로 경험되어 감정 조절, 특히 화의 조절을 어렵게 한다고 했다. 

 

자매가 부모를 배려하고 장애 오빠를 보살피는 행동은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이런 행동의 위험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겉으로 적응적인 사람일수록 그들 내면의 고통이 간과되기 쉽고 누적된 심리적 억압이 어느 한 순간 표출되기 쉽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화가 분출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착한 딸이고 지금까지 오빠를 명절마다 집으로 초대해서 챙기는 착한 동생이며, 결혼 후 좋은 며느리, 좋은 아내 역할을 하고 좋은 엄마가 되기를 소망하는 자매의 마음과 달리 심하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어린 딸에게. 

 

자매는 어려서 장애 오빠에게 화가 났고 동네친구들이 ‘오빠가 바보니 너도 바보지?’하고 놀리는 말에 오빠라는 존재는 물론 자신까지도 수치스럽게 느꼈다. 그럴수록 오빠에게 잘 대하며 속으로 죄책감을 키웠다. 오빠 걱정으로 눈물짓는 엄마에게 ‘나도 좀 잘 대해줘. 힘들단 말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참으며 눈물을 삼켰다. 그럴수록 억울했다. 부모의 어려움을 도우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음에도 부모들이 이혼하자 자매는 무기력감으로 좌절했다. 

 

상담 중에 고통스런 내적 소통을 통해 드러내기 두려웠던 감정을 말하며 자매는 많이 울었다. 그녀가 자기 비난을 하지 않고 안전하게 수치심, 죄책감, 사랑받고 싶은 소망, 무기력감 그리고 두려움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엄마의 힘든 마음에 눈치를 보며 늘 주위의 평가에 맞추려 했던 어린 자기가 이제 또 다른 방법으로 엄마 눈치를 보게 하는 딸을 만들고 있음을 알게 됐다. 딸에게서 바보 같은 오빠의 모습을 보게 돼 화가 났던 것임을 알아차렸다. 딸은 바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아기임을 받아들이며 감정 조절을 회복하여 지금은 딸을 잘 돌보고 있다. 가슴 속에 화를 지닌 사람이 내적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그 감정을 녹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 

 

* 유정인(리디아)씨는 한국 가톨릭 상담심리사 및 한국 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상담심리사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외침, 2015년 1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글 유정인(유리심리상담연구소 소장)]



2,25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