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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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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청주교구 신앙선조들과 함께 걷는 도보 성지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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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2-04 ㅣ No.897

[순례의 길 떠날 때] 청주교구 ‘신앙선조들과 함께 걷는 도보 성지순례길’


7만 리 길을 걸은 최양업 신부님처럼

 

 

걷는다는 것은

 

‘걷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걷는다’는 것이 갖는 가장 원천적인 의미는 ‘살아있다’, ‘향(向)한다’ 또는 ‘만난다’, ‘행동한다’라는 존재감이 아닐까 한다. 신앙인에게 ‘걷는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만나는 여정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섭리하시고, 말을 건네시는 가장 좋은 ‘만남의 장’이 우리의 인생여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우리 신앙인에게 인생여정은 ‘순례자’로서 끊임없이 떠나는 삶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걷기 열풍이 한창이다. 저 멀리 스페인 북부를 가로질러 북서쪽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성 야고보 사도의 순례길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 괴산 산막이 옛길, 그리고 각 교구 도보 성지순례길에 이르기까지, 이제 걷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필자는 ‘청주교구 도보 성지순례길’을 통해 ‘걸음의 여정’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어떤 여정을 걸을 것인가?

 

청주교구는 2008년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이하여 교구 시노드를 진행하였다.  그 후속 작업의 하나로 교구 복음화연구소에서는 신자들의 영성생활의 활력과 순교영성의 자리매김을 위해, 배티성지에서 연풍성지를 잇는 91.5㎞의 ‘신앙선조들과 함께 걷는 도보 성지순례길’을 만들었다.

 

이 도보 순례길은 보통 휴가기간이나 방학 때를 이용해 연이어 3박 4일로 순례하거나, 아니면 주일마다 구간별로 걷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하루에 25-30㎞를 걷기 때문에 ‘거점 본당’을 두어 순례자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중간에 쉴 수 있는 ‘경유지 공소’도 준비되어 있다(자세한 내용은 교구 누리집 참조 www.cdcj.or.kr/Pilgrimage.html).

 

이 순례여정은 4구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첫째 날은 배티성지 - 진천성당(20㎞), 둘째 날은 진천-증평성당(24㎞), 셋째 날은 증평 - 괴산성당(20㎞), 넷째 날은 괴산 - 연풍성지(27㎞)구간이다. 경유지는 백곡공소, 초평공소, 사리공소, 칠성공소이다.

 

 

걸어가다가 문뜩 느낌과 만나다

 

첫째 여정 첫 출발지인 배티성지는 조선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며,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1821-1861년) 신부님의 사목 중심지이다. 최양업 신부님은 1849년 4월 15일 사제품을 받은 뒤, 12년 동안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5개 도를 순방했으며, 초대교회의 바오로 사도처럼 ‘조선교회의 바오로 사도’요, ‘길 위의 사도’로서 7만 리 길을 걷고 장렬한 생을 마감하셨다. 그러므로 이 첫 시작은 최양업 신부님과 함께 걷는 ‘복음 선포’를 위한 순례여정이라 하겠다.

 

 

순례길 단상 : 가보아야 할 곳

 

배티성지 입구에서 오른쪽 울창한 소나무숲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쁜 숨을 몰아쉰 보상처럼 작지만 웅장한 ‘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성당’이 눈앞에 펼쳐진다. 진복팔단의 신비를 담은 8각형 성당 외벽이 이채롭다.

 

성당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연자맷돌 위에 14처가 길섶마다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14처가 끝나고 야외제대를 넘어 산길을 재촉한다. 교우들이 피난처를 찾아 숨죽여 걷던 황톳길에서 옷깃을 여미면 이내 1.3㎞ 팻말을 따라 핏빛이 연연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성재골 ‘무명순교자 6인묘’, 그리고 눈에 가까운 배티고개 ‘14인묘’가 포도송이처럼 줄지어서 아프게 잠들어 있다.

 

다시 그곳에서 성지입구 쪽으로 내려오면, 조선교구 최초의 소신학교와 성당터가 두 칸 남짓 초가지붕이 고즈넉한 언덕 위에 황톳빛 속살을 드러내며 서있다.

 

이제부터 순례의 시작이다. 맑디맑은 백곡 실개천을 따라 내려오면, 숨돌릴 만한 위치에 순교소설 “은화”의 주무대인 ‘삼박골 교우촌 비밀통로’가 우리를 맞이한다. 사람은 가도 추억은 남는다고 했던가? 골골마다 사연들이 솔가지 사이로 시름이 깊다. 그렇게 배티성지를 출발해 백곡공소를 거쳐 첫날 저녁이 넘어가며 거점본당인 진천성당으로 향한다.

 

둘째 여정 진천성당에서 둘째날 아침을 맞이했다. 메리놀 선교사 신부님이 지으신 적벽돌 성당과 사제관이 언덕 위에 앉아있다. 이제 시골 장터를 지나, 34번 지방도를 따라 펼쳐진 진천평야를 지나, 초평저수지를 향해 느린 발거름을 내딛는다. 낯익은 산속에 갇힌 초평저수지가 바다처럼 넓고 푸르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사셨다면 이곳이 갈릴래아 호수가 되었을 법하다.

 

때론 그날그날 스스로 정해놓은 목적지(목표)가 우리에게 걷기 과제를 떠맡기고, 걷는다는 것이 짐스러워지기 일쑤다. 결국 누적된 피로감과 내려놓지 못한 조급증이 나를 지치게 한다. 그리고 느린 발걸음 속에 지친 짐들을 내려놓는다. 내려놓은 만큼 가벼워지고, 가벼워진 만큼 눈에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진리인가!

 

오늘 순례의 경유지는 초평공소다. 이제 절반은 왔으니 둘째 날 몸 기댈 증평성당도 얼마 남지않았다.

 

셋째 여정 증평에서 괴산성당으로 향하는 발걸음마다 산이 높다. 괴산은 면적의 70%가 산이다. 연풍으로 가는 길목에는 유난히 많은 사과밭에 빨갛게 능금이 익어간다. 그 중간에 칠성공소가 있고, 오른쪽에 쌍곡계곡을 따라 산수가 수려한 자태를 뽐낸다. 물이 맑고 깊어서 괴산이라 하지 않던가? 굽이굽이 도는 34번 지방도를 따라, 눈앞에 성큼 다가온 산등성마다 녹음이 깊다. 머지않아 가을나기가 시작될 것이다. 여름이 이미 깊지 않는가? 걷다보면 계절과 만난다.

 

그리고 산도, 들도, 나무도, 그리고 바람 속에 사람도…. 예전에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환대하며 나와 조우한다. 연풍성지 표지판이 보인다. 괴정 실개천 아담한 다리를 넘어 갈대 사이로 사람들이 보인다.

 

넷째 여정 도보 성지순례길 귀착지인 연풍성지는 103위 성인 가운데 한 분이신 ‘성 황석두 루카’의 고향이요, ‘영원한 안식처’이다. 작두날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황석두 루카 성인의 삶을 통해, 우리가 선택해야 할 마지막 도전은 ‘영적 결단’의 순례여정이다.

 

 

순례길 단상 : 가보아야 할 곳

 

눈앞에 펼쳐진 연풍성지의 첫 느낌은 평지의 삶이다. 드넓은 잔디밭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굵직한 느티나무와 향나무의 향연이, 마치 아름다운 서양 정원에 와있는 기분이 든다. 어머니의 품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여기구나!

 

연풍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을 죽이기 위한 교수형돌인 ‘형구돌’이 발견되었다. 비오는 날이면 형구돌마다 아직도 신앙의 핏빛인양 붉게 석화가 펴 아프다. 쪽빛 하늘 아래 높은 ‘형방 건물’은 세월의 때만큼, 순교자들이 흘린 피와 고문의 흔적들이 지붕 위 풀섶으로 애잔하다.

 

그 오른편에 새로 단장한 ‘성 황석두 루카 묘소’는 세월의 잔상들을 뒤로한 채, 밝은 모시옷을 입고, 나에게 “대군대부(大君大父)이신 천주님을 배반할 순 없습니다.”를 종용한다.

 

우리의 도보순례 여정은 귀착지인 연풍성지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하느님께 향한 또 다른 순례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새로운 가나안 땅인 ‘하느님 나라’를 향해 길을 떠나라 재촉하신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는 또 다른 아브라함으로 믿음의 새 조상이 되도록 초대받고 있기 때문이다.

 

 

걸어가다 보면 누군가 만난다

 

올해 7월 말 청주교구에서는 ‘교구 청소년 대회’의 일환으로 ‘최양업 신부님과 함께 걷는 도보 성지순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4차에 걸쳐 800여 명의 중고등부 학생들이 여름 땡볕에 3박 4일 동안 91.5㎞를 걸었고, 얼굴은 검게 그을렸지만 가슴마다 뭔가 이루었다는 자신감이 가득찬 채 연풍성지에 도착했다.

 

3박 4일의 도보순례를 마지막으로 끝내던 4차 순례단 ‘말씀전례’ 때 일화가 생각난다. 잘 걷지 못하는 지체장애 여학생이 3박 4일의 도보순례를 위해 한 달 동안 걷는 연습을 했다며, 어눌한 말투로 울면서 외쳤다. “하느님, 감사해요. 끝까지 걸을 수 있게 해주셔서….”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이 훌쩍거렸고, 선생님, 신부님, 그리고 마중 나온 부모님들도 진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약 3,000여 명이 이 순례길에서 그 감동을 이어가고 있다.

 

걱정하지 마라! 때로는 멀게만 보이는 길도 걸어가다 보면 목적지에 이르게 되고, 걸어가다 보면 또 어느 누군가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왜 걸어야 하는가?

 

첫째, 걷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멈춰 서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위기 순간에, 신앙의 위기 때 하느님께서는 일상의 삶을 멈추고, 하느님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라고 재촉하신다. 멈춰 섰을 때 내면 안에서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둘째, 걷는다는 것은 ‘떠나는 것’이다. ‘안락한 삶의 자리’를 떠나고, 인간관계를 떠나고, 재물에 안주하고자 하는 삶의 가치에서 떠나라는 얘기다. 하느님을 만나는 여정은 ‘떠나는 여정’이다. 익숙하고 편안한 삶의 자리를 떠날 때, 장차 보여줄 새로운 가나안 땅인 하느님 나라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신앙의 도전이다.

 

셋째, 걷는다는 것은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삶에서 하느님이 싫어질 때, 믿음의 근본적인 불신앙이 밀려올 때, 신앙의 본래 자리인 ‘미사성제’ 안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임마누엘이신 하느님의 음성과 영원한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걷는다는 것은 ‘내려놓는 것’이다.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든, 사회인으로 살아가든 ‘삶의 조건’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고통, 죄, 죽음으로 일컬어지는 생로병사의 문제이다. 하느님은 바로 내 안에 근본적인 문제와 마주할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과 함께 ‘일대일’로 대면하는 여정을 걸으라고 말씀하신다.

 

[경향잡지, 2011년 1월호, 이현태 베드로(청주교구 연풍성지 담당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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