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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하느님, 자연, 인간: 환경문제에 대한 우리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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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23 ㅣ No.1275

[경향 돋보기 - 하느님, 자연, 인간] 환경문제에 대한 우리의 숙제



그동안 교황님들의 계속된 호소에도 환경문제는 더욱더 심각해졌고, 앞으로도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좀 더 낫게, 오래 잘 살기를 바란다. 인간의 타고난 욕구로서는 정당한 것이겠지만, 절제와 조화가 부족하기에 환경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번에 환경문제에 집중하여 발표하신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삶의 태도를 하느님께서 본디 원하신 삶으로 성숙해지도록 안내한다.


우리의 깊은 내적 회개가 필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찬미받으소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비, 낭비, 환경 변화의 속도는 지구의 한계를 넘어서 최대한 ‘쥐어짜는’ 데에 이르러, 현재의 생활 방식은 재앙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습니다”(161항, 205항 참조).

지구는 환경문제로 위기의 상황이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환경문제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곧, 환경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리의 깊은 내적 회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교회에서 영성은 인간의 몸이나 자연, 세상의 현실에서 분리되지 않고, 그 안에서 모든 것과 일치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피조물과 건전한 관계를 맺도록 참된 회개와 내적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환경 위기를 극복하는데 획일적인 해결책은 없다. 각 나라와 지역의 특성과 고유한 문제와 한계 때문이다. 그러나 에너지 절약의 장려와 교통 체제 개선 등은 각 나라가 함께 공유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일들의 연속성을 위하여 모든 이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열린 토론과 교육이 절실하다. 그리하여 모든 이가 소비를 줄이고 좀 더 검소한 생활 방식으로 살도록 이끌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발전의 개념을 새로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태위기의 심각성은 우리 모두 공동선을 생각하고 인내와 절제와 관용을 필요로 하는 대화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앞서 환경문제를 염려하면서 발표한 많은 문헌에 이어 교회 구성원들과 지구촌 전체 인류에게 이 시기에 참으로 어울리는 지침이다. 이 회칙은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더 깊이 깨달아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다함께 협조하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외친다. 이러한 염려와 환경문제를 다룬 문헌들이 발표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악화되어 있을 것이다.

교육을 통해 환경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등 서구의 선진국가의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들 나라의 지도자들은 당시 점점 커져만 가던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문제들의 현상과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끊임없이 발굴해 나갔다.

또한 가정과 학교, 교회와 언론매체 등을 통해서 강도 높은 교육과 실천 운동을 전개하여 오늘날 환경문제에 대한 모든 국민의 의식화가 이루어져 있고, 지속 가능한 개발과 태도를 통해 환경 친화적인 삶이 되려고 끊임없이 진단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헌을 작성하려는 교황님의 수고와 좋은 내용 그리고 교회 구성원들의 실천 의지에도 생태계와 환경문제는 여전히 심각하고 앞으로도 더욱더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찬미받으소서」 또한 앞의 수많은 문헌들의 뒤를 이어 교황청의 좋은 회칙 목록에 새겨지고 인용되며, 학문적 실천적 연구의 대상으로만 머물게 될 가능성이 높다.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는 매우 복잡한 요소들이 서로 얽혀있어서 몇 가지 지침들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노동과 분배를 통해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모두가 가해자요 피해자라는 사실은 큰 어려움이다.

“실제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신 교황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실제 상황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점검해 보자.


지구의 환경문제

사람이 모여서 사는 곳에서는 언제나 환경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인구 분포가 많은 큰 도시에서는 분뇨와 쓰레기로 공기오염과 토양오염 그리고 식수부족과 식량난 같은 심각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어 흔적이나 기록만 남은 채 폐허가 된 곳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전에는 이러한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어딘가로 떠나가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여유의 땅들이 있었고, 오늘날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놓인 문제는 인류가 지구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로 최근까지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것이고, 지구 전체에 걸쳐 확장되어 있는 것이다.

우주를 탐험할수록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고, 지구에 작용하는 온갖 물리 · 화학 · 생물학적 법칙을 알면 그 오묘한 조화와 상호작용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지구의 평균 반지름은 6,370km이고, 표면적은 5억 1,010만㎢이며, 육지의 면적은 1억 4,940만㎢이다.

태양계에서 인류가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이나 위성은 없고,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천체에서 생존의 가능성을 찾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인류는 지구의 조건에서 태어나 지구에서 살아가야 하는 지극히 지구적인 존재인 것이다.

지구 위의 생명체들은 지구가 제공하는 땅과 물과 공기 그리고 태양이 제공하는 햇빛을 재료로 하여 서로 복잡하고 엄밀하게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 지구촌의 모든 생명체는 지구 생태계의 식물이 햇빛을 광합성한 것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허락하는 만큼 번성할 수 있고,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을 때에는 굶주림과 질병 그리고 다툼으로 죽게 된다.

지구촌의 생태계에 의존하여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의 개체수에는 한계가 있다. 어느 한 종이 지나치게 불어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이 원리에 따라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경작하지 않고 생태계가 주는 것을 채집과 수렵에만 의존할 때, 지구 생태계가 문제없이 지속적으로 부양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약 2억 명이다.

그런데 지금 지구에는 약 70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해마다 약 1억명씩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많은 문제가 있고 이전에 없던 문제들이 새로 발생하는 것이다.

70억 명의 인구가 선진국 수준으로 소비하면서 살아가려면 지구가 세 개 정도는 더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온갖 환경문제와 갈등 그리고 다툼들이 발생하고 더욱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교황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개인들의 선한 의지나 더 나은 기술 개발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 새로워져야 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가져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좀 더 합리적이고 자발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생태계의 법칙에 따라 고통이 올 것이다. 대기오염과 수질오염, 토양오염과 산업재해와 폐기물 그리고 기아와 질병, 갈등과 전쟁 등이 필요에 따라 약하게 또는 강하게 개입하여 생명체의 수를 조절하거나 멸종시켜 버린다.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환경문제는 우리가 여기서 더 나아가면 파국이 올 수 있다는 신호로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환경문제

우리나라는약 10만㎢ 크기의 땅에 약 5천만 명이 살고 있다. 50여 년 전인 1960년대에는 1인당 연간 소득이 100달러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보다 두 배로 늘어난 인구가 개인당 3백 배 정도의 많은 소득으로 생활함에도 각 개인과 사회의 갈등과 불안은 오히려 더한 것 같다. 여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지구촌에서 인구를 늘리거나 제한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땅과 물 그리고 식량이다. 우리나라의 면적은 약 10만㎢로, 이것은 지구촌 땅 1억 4,940만㎢의 1,500분의 1이다.

이 땅에 지구촌 인구 70억 명의 140분의 1인 인구밀도는 1㎢당 5백명으로 세계에서 일반 국가 가운데 방글라데시, 대만 다음으로 높다. 이는 가로세로 100m 안에 다섯 명이 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마다 가로 20m 세로 100m정도를 차지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땅의 65%는 산지이다. 그리고 약 7%는 도시며, 약 8%는 강과 호수, 습지와 잡종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경작지는 약 20%인데, 이 좁은 경작지에서 일 년 동안 먹을 식재료를 다 생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22%에 지나지 않았다. 해마다 1,500만 톤을 수입해 필요한 곡물을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에서 이 정도의 곡물을 안정적으로 수입하려고 돈을 버는 것도 대단히 복잡한 일이다. 수천만 톤의 철광석과 석탄, 석유와 가스, 그리고 각종 원자재들을 수입하여, 전국에 산재한 엄청난 수의 산업체에서 자동차와 배, 반도체와 각종 가전제품 등을 만들어 수출하고 돈을 번다.

부산물로 해마다 엄청난 양의 각종 폐기물과 폐수, 오염된 공기가 배출되어 이 땅 어딘가에 묻히거나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더 이상 경작지를 넓히기 힘든 지구촌 사정을 생각하면 곡물을 수출하려고 시장에 내놓는 양이 지금처럼 계속 유지될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평균 약 1,150mm 정도의 비와 눈이 내려 약 1,150억 톤의 물이 공급된다. 그 중 약 260억 톤 정도가 댐과 저수지에 저장되어 활용된다. 지금과 같이 평화롭고 전기가 잘 공급되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면 5천만 명이 이 물을 안정적으로 이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전기가 부족해지거나 수돗물로 공급할 물의 취수와 정수에 문제가 생기면 마실 물은 구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상상만해도 소름이 끼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은 여러 가지 요소가 얽히고 설켜있다. 다양한 종류의 갈등과 투쟁, 궁핍과 넉넉함, 기쁨과 고통,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다양한 종교단체들, 신앙생활과 냉담 등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어 이러한 모습의 삶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좀 더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부에서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내수를 진작시켜야 한다며 더 많은 소비를 촉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각 가정과 학교, 언론매체와 사회, 각 종교단체, 특히 교회는 지금보다 더 센 강도로 국민과 교우들에게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야 한다. 또한 좀 더 차분하고 환경 친화적인 삶으로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도록 끊임없이 계몽해야 한다.

비록 우리의 노력이 이 땅에 완전한 사회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더 이상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땅으로 황폐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전헌호 실베스텔 - 대구대교구 신부. 인간과 영성연구소 소장으로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신학대학원 원장, 가톨릭사상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인간에의 연민」, 「자연환경, 인간환경」, 「태양을 먹고 사는 아이들」 등이, 번역서로는 「교의와 교의신학」, 「넉넉함 가운데서의 삶」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5년 11월호, 전헌호 실베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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