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부산교구 성지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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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23 ㅣ No.965

[순례의 길 떠날 때] 부산교구 성지순례길


“순교자들에게 감사하고 보속하며 배우는 순례”

 

 

신앙선조들과 교구 은인들에게 감사드리자

 

2007년 부산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이하여, 부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평협)가 전 교구민을 대상으로 3박 4일 도보순례를 실시하였습니다.

 

목적은 이 땅에 복음을 전해주신 신앙선조들의 순교 신앙을 본받고, 교구가 탄생하도록 노력하신 은인들에게 감사드리는 데 있었습니다. 아울러 부산교구 내 순교 신앙 사적지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시복 청원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알리며, 그분들의 삶을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각 본당의 대표자와 평협 간부들, 스스로 걷고자 하신 신자들과 사제들, 20대에서 70대에 이르기까지 200여 명이 약 85km를 기도하면서 걸었습니다.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다리가 아프고, 물집이 생겨도 참으며 큰 소리로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걷기가 불편한 사람이 생기면 두 명이 어깨동무를 하며 걸었기에 한 명의 낙오자도 없었습니다.

 

교구장님께서 주례하신 파견미사 때 모두들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쏟아내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의 삶을 배우자

 

도보순례가 교구 전체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고, 우리 교회 역사와 순교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2008년 평협의 요청으로 부산교회사연구소에서 주관하여 교구 내 성지 해설사 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4월부터 5월까지 7주간 교육과 성지순례를 실시하여, 116명의 성지 해설사를 배출하였습니다. 교육 과정에서 신자들은 부산교구에서 시복을 청원한 하느님의 종 이정식 요한과 양재현 마르티노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며, 현양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동래 북문 밖(현 명장동)에 살던 이정식은 젊었을 때 무과에 급제한 뒤 동래의 장교가 되었습니다. 59세에 교리를 배운 뒤에는 교회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동래 교우촌의 공소회장이 되어 충실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작은 기도방을 만들어 십자고상과 상본을 모시고 묵상기도와 교리공부에 열중하였습니다. 동래 북문 밖에 살던 좌수 양재현은 이정식을 만나 교리를 배우고 그를 대부로 삼았습니다.1866년 병인박해 때 이정식은 기장으로 울산으로 피해 체포를 면했습니다. 1868년 무진년에는 철저한 수색 때문에 이정식과 양재현은 체포되어 혹독한 형벌과 심문을 받았지만 배교하지 않습니다.

 

감옥에서 양재현은 이정식을 만나자, “대부가 여기 계시오니까? 반갑고 반갑도다. 천주의 은혜가 무궁함이라.”하니, 대부 이정식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마르티노를 만나게 되었으니 이렇게 된 일은 천주의 은혜올시다. 천주께 열심히 기구나 드립시다.” 이렇게 처형 직전의 대부 대자는 자신들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당으로 가는 길로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정식과 가족, 양재현 등 8명은 수영 장대에서 참수로 순교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의 삶에 동참하자

 

평협 간부들과 성지 해설사들은 순교자들의 삶을 더 깊이 알고자 2년간의 심화학습 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또한 순교자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본받고자 극기와 보속의 삶을 찾게 되었고, 땀 흘리는 도보순례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정식과 양재현의 순교의 삶을 현양하고자 하였습니다.

 

순례 코스는 이정식과 양재현이 순교한 수영 장대에서 시작하며, 온천천을 따라 그들이 묻혀있는 오륜대한국순교자박물관 뒤 동산까지입니다. 수영 장대에서 이정식의 친척들이 순교자들의 시신을 지고 동래 명장동(옛 가르멜 수녀원 자리)에 묻었듯이, 도보순례자들도 수영 장대에서 각자 마음속으로 시신을 메고 순교자들의 무덤까지 묵주기도 20단을 큰 소리로 바치면서 기도하면서 걷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지 벌써 3년, 지금까지 6,000여 명 정도가 걸었습니다. 순례 때마다 평균 150여 명이 추위와 더위, 눈과 비를 무릅쓰고 함께 걷습니다. 몇몇 분들은 언제까지 할 것이냐, 그 정도면 홍보가 잘 되었으니 그만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신자들은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걸으니, 자연히 자신의 한 달 생활을 반성하는 피정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토요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설렌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을 시복 청원기도와 더불어 자신에게 필요한 지향을 가지고 순례를 했는데, 몇 번 만에 그 지향이 이루어졌다고 감사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가족들이 흩어져 신앙으로 모일 수 없었는데, 어느덧 한 가족이 함께 순례를 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고 했습니다.

 

 

이정식을 본받아 성가정을 만들자

 

도보순례는 시복시성을 위한 것도 있지만, 성가정 운동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이정식은 본인은 물론 아들, 며느리, 조카도 함께 순교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부모가 순교를 하여 집안이 거의 몰락하고, 고향을 떠나 산골에서 어렵고 힘들게 살았지만, 그 자식들도 순교한 경우가 꽤 있습니다. 이것이 성가정의 모범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전해 받은 신앙 덕분에 모진 박해와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순교자들의 참된 성가정을 보면서 오늘날의 우리를 생각해 봅니다. 교회에는 여전히 많은 냉담교우들, 경쟁에 지쳐 신앙을 멀리하는 학생들, 바쁘다는 핑계로 주일미사조차 거르는 젊은이들, 이 밖의 많은 신자들이 순교자의 피와 땀을 헛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 무엇보다 참된 순교 신앙이 부모로부터 시작하여 자녀들에게 뿌리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 깊어집니다.

 

덥거나 춥거나, 비와 눈이 오더라도 계속되는 도보순례가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여 하루 빨리 순교자들이 복자 반열에 오르고, 성가정이 넘쳐나기를 기원합니다.

 

* 한건 도미니코 - 부산교구 신부. 부산교회사연구소 소장 겸 활천본당 주임.

 

[경향잡지, 2011년 9월호, 한건 도미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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