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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성령칠은10: 의견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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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9 ㅣ No.55

[성령칠은 제10강의] 의견(意見, counsel)의 은혜 - Renunciation(포기) (9월 9일 수요일 오후)

 

 

(마르10:28) 그 때 베드로가 나서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마르10:29)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마르10: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굳셈의 은혜를 통해서 성령은 하느님의 사랑의 힘을 주신다. 내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힘인 굳셈의 은혜를 사용하느냐 가 중요하다. 그러려면 착한 의견(意見)의 성령이 필요합니다. 의견의 선물을 통해서 성령은 특별한 마음 자세를 주신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현재 상황 안에서 교회를 위해서 어떤 것이 가장 훌륭한 것인지 선택하도록 하신다. 교회 건설을 위해서 주신다. 내가 처해 있는 그대로의 상황하에서 내가 어떻게 잘 섬길 수 있는가를 돕는다.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는가를 돕는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를 살펴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성녀 데레사의 마음에 힘을 주셨습니다. 사랑의 소명을 갖도록 해주셨습니다. 성녀는 사제가 되길 원했고 선교사나 순교자가 되길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고통을 받길 원했습니다. 5대륙에 가길 원했습니다. 모든 세대의 소명을 다 성취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점에서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그가 깨달은 것은 “그가 무슨 임명을 받았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용광로에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교회의 심장을 드러내 보여 줍니다. 교회의 어린아이임을 보여줍니다. 좁은 길을 택함으로서 그렇게 했습니다. 단 하나의 희생도 놓치지 않고 그렇게 했습니다. 표정 하나 시선 하나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모든 기회에 성녀는 하느님께 충만한 사랑을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성녀는 많은 선택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여기 저기로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선택해야 하는데, 어떤 것에 따라서 움직여야 하는지 이해했다.

 

우리가 읽은 복음으로 돌아갑시다. 성마르꼬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의견의 은총인 포기하는 것을 밝혀 줍니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의 충고를 필요로 한다. 전문가나 상담사가 필요하다. 사회에는 조언 고문단을 둔다. 위원회를 만든다. 충고를 전문적으로 줄 수 있는 기구들이 사회에는 있다. 성공하려면 좋은 충고를 받아 드려야 한다. 성령이 이런 충고를 하는 좋은 친구이다. 충고를 받아들일 때에는 어떤 가장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좋은 충고를 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선택에는 우선 순위가 있다. 좋지 않은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복잡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포기하는 것을 통해서 좀더 나은 포괄적인 통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때로 희생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희생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신 이유는 크고 깊은 친교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포기하는 것은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것은 더 깊은 친교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마르꼬 복음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라고 베드로는 말한다. 그것에 앞서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무엇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지”를 말씀하신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신다. [(마르10:27)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똑바로 보시며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말한다. 우리는 당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마태오 사가는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를 덧붙입니다. 마르꼬와 루가는 단지 “우리는 당신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랐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신뢰는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압니다. 그분의 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뢰하고 의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이 좋은 충고자라는 것도 안다. 마침내 예수님이 무언가를 요구할 때에는 그들 마음에 갈망을 아시고 그것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르10:29)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마르10: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자신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다. 스승의 충고에 따라서 스승께 대한 사랑과 신뢰를 가지고 소중한 것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면 좀더 소중하고 좀더 사랑스러운 사람을 얻게 된다. 그들을 좀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사랑을 포기하라는 말은 더 많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넓혀 주시려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이 12살일 때에 성전에 남겨 두었다. 마리아가 “예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라고 묻는다. (루가2:48) 그의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 “예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고 말하였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마음을 넓히는 대답을 하신다. 마리아로 하여금  아버지 하느님께 관심을 갖게 한다. (루가2:49) 그러자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에로 마리아의 마음을 넓히신다. 마리아는 인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이 걸리고 포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절대적으로 순결한 마음을 가진 마리아까지도 그렇게 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마리아의 마음은 티가 없으셨다. 이런 마음까지도 확장되어야 했다. 이것은 성령의 은총으로 가능하다.

 

예수님은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해야 넓힐 수 있는지”를 가르치신다. 우리 마음은 우리 자신에게 너무 쏠려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쏠려 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이 요구하신 포기를 하게 되면 이런 사랑하는 사람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포기를 통해서 우리는 그들을 더욱더 사랑하게 될 것이고,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무한한 사랑에로까지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이 부모님을 통해서 이것을 체험합니다. 그것은 희생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희생이 납득되지 않는다. 그러나 차츰 이 희생은 우리가 받은 사명과 연관이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쏠려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포기입니다. 성부께 우리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고 그분 사랑의 구혼에 우리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하느님은 강제로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초대하십니다. 당신 나라의 청지기가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게 당신의 온유하심을 증거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가 포기한 것을 100배로 보상을 받으리라고 하신다. 우리가 해야 할 과업을 실행하는 것은 구체적인 오늘의 삶속에서 입니다. 재산을 관리해야 하고,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몸과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억누르지 않는다. 우리는 한 남자 여자로서 사랑해야 한다. 열정과 느낌을 평화롭게 통합하면서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당신 나라에서 섬기라고 우리의 모든 능력과 인간성을 조화롭게 통합시키려 하신다. 우리 존재가 하느님의 사랑의 초대나 형제 자매에 대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려면, 우리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하느님은 우리들에게서 어떤 것을 떼어 내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 안에 세상적인 것을 정화시키려는 것이다.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욕망들을 정화시키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정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감각이나 감성등 우리의 모든 존재를 영적으로 만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빠스카의 신비에 들어가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은 마리아처럼 순결하지 못하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할 때에 특별히 여인들과 관계에서 그들을 100% 취하려고 한다. 이것이 우리 안에 저절로 흘러나오는 본능이고 이것이 죄의 표지이다. 이런 우리 모습에 놀라지 말자. 이런 우리 자신에게서 실망하지 말자. 하느님께 충실하자.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바라보도록 기도하고,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내 마음을 계속 봉헌해야 한다. “여러분은 100배로 받겠지만 박해도 받을 것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상황을 말한다. 우리 자신을 그렇게 완전히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에만 향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 마음을 자유롭게 해주시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읽은 포기에 대한 말씀은 예수님의 첫 수난 예고와 성변용 사이에 있는 말씀이다.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변모하는 것은 예수님의 고통과 부활의 신비에 동참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즉시 영적이 될 수 없다. 시간이 요한다. 어려움이나 유혹 때문에 속상해 하지 말자. 성령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런 유혹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변모시키는데 동의하십니까? ‘나와 함께 선택하십시오’라고 초대한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이 하느님의 사랑에로 계속 향하도록 우리를 가르치신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점점 더 우리 중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포기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아름다운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현세에서도 100배 받겠지만 내세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때에는 충만히 받겠지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포기하라고 할 때에 어떤 함정을 파 놓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함께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도록 이끄신다. 우리 중심주의를 포기함으로서 하느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에 더 충만하게 참여하라고 하신다.

 

본당에서 형성하고 있는 영적 가족이나 공동체는 하느님 나라의 가족을 증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 모든 천사들을 모으십니다. 영원토록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도록 불렸다. 특별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 포기를 해야 할 때나, 하느님 나라에 봉사하기 위해서 우리를 봉헌하게 될 때에 우리가 그럴 필요가 있는지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는 하느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서 마련해 두셨다는 볼 수 있는 ‘표지’가 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다. 예수님은 현재 여러분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고 싶으시다. 영원한 생명을 기대하는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깨닫게 하고 싶으시다. 이것이 의견의 선물입니다. 성령은 하느님이 어떻게 우리를 교육을 하실 것인지 우리가 체험하시기를 바라신다. 우리 마음을 바치도록 하신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좋은 것이다. 아주 풍성한 것이다. 때로는 우리는 우리가 희생하고 있다고 느낀다. 우리 공동체 안에 하느님은 얼마나 많은 형제 자매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사랑하도록 하시는가? 사랑과 온유로 이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배려하시는지? 아름다운 장소도 주시고 좋은 목자가 되도록 하신다. 이런 좋은 것을 체험하고 감사드리는 것을 잊지 말자. 기도 중에 이것을 음미하고, 우리가 이것을 음미하고 체험하고 감사드리지 않는 한 다른 세상 것에서 심리적인 보상을 바랄 것이다. 우리는 유혹과 어려움을 느낄 때에 기도하자. 우리 마음을 비추고 이끌어 주시어 그 의미를 맛보도록 성령께 기도하자.

 

실재적인 적용 방법 제시

 

1. 첫째로 포기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때에 평화를 느낄 때까지 빛을 구하고 기도하고 복음과 교회 전승 안에서 그것이 무슨 뜻인지 찾자. 하느님이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찾자. 모든 사람과 더 깊은 친교에로 초대하신다. 이 친교는 십자가 없이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서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 마음을 열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예를 들자. 마르타는 예수님께 충고하는 것을 본다. (루가10:40)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루가10:41)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루가10:42)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성령은 우리가 꼭 필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기를 바란다. 마리아는 귀를 기울이면서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마리아처럼 예수님께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우리 삶에서 더 많은 평화를 발견하게 된다. 마리아가 마르타를 도와서 함께 요리하는 동안에도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모든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 자신을 가장 필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기를 원하신다. 에디트 슈타인을 알지요. 그녀는 갈멜 수녀였고 철학교수 였다. 수용소에서 죽었다. 전생애를 자신의 동포인 박해받은 유대인을 위해서 바쳤습니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를 도와 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인간적인 성취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나 예수님의 수난’을 나누려는 것이다. 성령께서 그녀로 하여금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도록 이끄셨다. 성령은 우리가 본질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초대한다. 우리가 길을 잃을 때나 애매 모호할 때에 주님께 길을 보여 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어려울 때에 빛을 구해야 한다. 우리의 중심을 찾기 위해서 빛을 구하면 거기서 평화와 힘을 발견하게 된다. 이 성령의 열매는 어렵다. 포기는 항상 힘들다. 빠스카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은 항상 힘들다. 그러나 다시 한번 우리는 예수님의 약속을 바라보자. 더 많은 사랑을 보자. 더 넓고 깊은 일치(communion)를 보자. 예수님의 약속은 진실하다. 여러분은 100배를 받을 것이다. 이 믿음을 갖도록 성모 마리아와 함께 청하자. 이 예수님의 약속을 얻을 수 있도록 청하자. 우리는 십자가 밑에 계신 성모 마리아를 봅니다. 거기 계신 마리아는 모든 교회의 어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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