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세계교회ㅣ기타

부온 프란조14: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4)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에 울려퍼진 즉시 성인으로! 외침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9-05 ㅣ No.685

[창간 34주년 기획 “부온 프란조(Buon pranzo)!”] (14)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④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에 울려퍼진 “즉시 성인으로!” 외침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형제, 자매 여러분, 밤 9시 37분, 우리가 사랑하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아버지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분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2005년 4월 2일 저녁, 성 베드로 대성전의 종탑에서는 선종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사도궁에 있는 그분의 방의 불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분의 임종을 지키던 광장에 모인 신자들은 큰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렸다. 모두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와 나는 그분께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아버지의 집으로 가시는 그분의 발걸음이 환하도록 기도로 불을 밝혀 드리고 싶었다. 광장에서는 그렇게 그분의 죽음 앞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파킨슨 증후군 투병하다 2005년 선종

 

스타니스와프 지비시(Stanislaw Dziwisz) : 39년 동안 카롤 보이티아와 곁에 있으면서, 저는 그분이 얼마나 끊임없는 고통을 오랫동안 겪으셨는지 이제서야 꺼냅니다. 어린 소년 시절에 겪은 부모, 그리고 형의 죽음, 독일 트럭과의 충돌로 인한 커다란 교통사고, 전쟁으로 인해 잃은 많은 친구, 나치 치하에서의 고통과 폴란드 공산 정권 치하에서의 힘겨운 주교직 수행, 1983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의 저격 사건 등으로 그분은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정신적 고통으로 힘겨워하셨습니다. 저격 후 치료받으셨던 로마 제멜리(Policlinico Agostino Gemelli)병원에서 퇴원하시던 날, 생명을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시며, 다른 환자들과 같이 겪은 고통의 경험을 잊지 못하셨습니다. 그 경험으로 사도적 서한 ‘구원에 이르는 고통’ (Salvifici doloris, 1984년 2월 11일)을 쓰셨습니다. 이기적 세상이지만, 그리스도께서 고통으로 사셨던 곳이기에 하느님의 눈으론 이 세상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분의 이 무서운 병은, 그러니까 1991년에 왼손의 몇 손가락이 떨리면서였습니다. 1993년에 넘어지시면서 오른쪽 어깨가 탈구되는 부상을 입으셨는데, 부조네티(Renato Buzzonetti) 주치의는 그분의 평형감각 상실을 의심하며 파킨슨 증후군이라는 소견을 조심스레 꺼냈습니다. 한 해 한 해, 이 병은 그분의 사목 직무나 해외 사목 방문 때 그분의 육신으로 고통스럽게 파고들었습니다. 고통 중에도 늘 침착함과 인내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선교 업무를 이어나갔습니다.

 

- 2005년 4월 8일 바티칸 성 베드로광장에서 거행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장례 미사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고별예식을 집전하며 분향하고 있다.

 

 

2005년 1월, 요한 바오로 2세의 건강은 악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월 마지막 주일의 삼종 기도를 힘겹게 하셨으며, 음성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제멜리병원에서 다행스럽게 호전되셨기에, 2월 9일 재의 수요일에 미사를 올리면서 나는 그분의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상태는 나빠지기 시작했으며 밤낮으로 호흡 곤란으로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2월 23일 저녁, 그분의 친구인 마리안 야보르스키(Marian Jaworski) 추기경께서 병자성사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제멜리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부조네티 주치의는 호흡 고통을 덜어 주는 처치로 기관절개 수술의 동의를 얻기 위해 그분께 다가가 “교황 성하, 아주 간단한 수술을 할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난 그분은 종이 위에 “주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 또뚜스 뚜우스(Sia fatta la tua volont… Totus tuus)”라고 힘겹게 적었습니다. 분명 ‘모든 것을 성모님께 맡기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교황 재위 기간에 처음으로 부활주간 전례를 집전할 수 없었던 그분은 성 금요일 콜로세움에서 있는 십자가의 길을 그분의 작은 경당에서 텔레비전 중계와 함께 십자가를 잡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고통의 예수님과 함께하셨습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엔 전 세계에 축복을 보내시고자 연습까지 하셨으나, 기관절개로 말할 수 없었던 그분은 슬프게도 세 번의 십자가 강복만 하셨습니다. “난 목소리가 안 나옵니다.” 흘리는 듯한 작은 그분의 음성을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들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뭔가를 표현하고자 하시는 그분의 힘겨운 노력에 감동했고, 박수로 답을 보냈으며, 그분의 이름을 외쳤습니다. 그분은 가실 준비가 다 된 듯했습니다. 다음 날 오전 11시께, 그분은 미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성당에 계셨는데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지시면서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하셨습니다. 부조네티 주치의는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기에 병원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마지막으로 받는 고통도 죽음도 집에서 맞이하고 싶어 하셨고, 베드로의 무덤에서 맞이하고 싶어 하셨으니까요.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방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계셨습니다. 미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을 때, 한 사람씩 그분의 손에 친구하였습니다. 저의 머리를 귀여운 듯 비벼주셨습니다. 그동안 수고했던 수녀님들, 의사들, 간호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주셨습니다. 4월 1일 금요일, 카롤 보이티와의 친구인 타데우스 스티첸(Tadeusz Styczen) 신부님이 오셔서 복음을 읽으셨습니다.

 

- 복자 요한 23세와 복자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식이 2014년 4월 27일 바티칸 성 베드로광장에서 거행됐다. 요한 23세는 시복된 지 14년, 요한 바오로 2세는 시복된 지 3년 만이었다. 성 베드로 광장과 그 일대를 가득 메운 신자들이 시성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CNS 자료 사진]

 


아파트 청소원 프란치스카와 마지막 인사

 

4월 2일 토요일, 나는 이날을 다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분의 방은 아주 조용하고 평온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분과 가까이서 일했던 사람들, 추기경들, 그분의 사무실에서 일하였던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아파트를 청소하였던 프란체스코와의 마지막 인사도 원하셨습니다. 그때까지는 의식이 또렷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요한복음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스티첸 신부님께서 요한복음을 읽기 시작하였으며 한 장 한 장…. 9장을 읽는 중에 그분은 서서히 떠나가시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토비아나 수녀가 아주 약한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입으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곤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놓아 주어요. 주님께 갈 수 있게요”라는 마지막 부탁을 하신 것입니다. 저녁 7시 무렵, 그분은 의식이 없는 상태이셨고, 2개월 전인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에 당신이 손수 축성하셨던 초가 그분의 방을 밝힐 뿐이었습니다. 베드로 광장에서 ‘요한 바오로!’ ‘비바 교황님!’ 신자들의 외침이 3층인 그분의 방까지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그분께서도 다 듣고 계셨음을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시성을 알리는 로마 시내버스 티켓.

 

 

8시 무렵,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를 드렸습니다. 복음은 요한복음으로 “예수님께서 들어 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을 봉독하였습니다. 성체는 병자성사 때 주는 것처럼 조심스레 영해 주었으며, 예수님의 거룩한 성혈도 영해 드렸습니다. 9시 37분, 우린 알았습니다. 더는 그분이 숨을 쉬지 않음을요. 모니터를 통해 몇 분간 움직이는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곧 멈추었습니다. 부조네티 주치의는 그분께 다가가 머리를 숙이고는 이내 작은 소리로 “주님의 집으로 가셨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선종 시간을 표시하기 위하여 누군가는 시곗바늘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찬미가’(Te Deum) 를 불렀습니다. 애도의 마음을 담은 레퀴엠(Requiem)이 아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교황님으로 보내주신 한 인간 카롤 보이티와란 선물에 감사의 마음으로 모두 떼 데움을 불렀습니다. 모두 울었습니다. 보내드리는 슬픔과 주님의 집으로 가신 기쁨의 눈물을 말입니다. 우린 방의 불을 모두 밝혔습니다.

 

선종 9년 만인 2014년 성인품에 올라

 

그 당시, 많은 언론이 “교황이 너무 자신의 고통을 보이는 게 아닌가”라는 비판에도 그분은 꿋꿋하게 대처하였다.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힘을 끝까지 지켜나가며 선교에 힘쓸 것을 맹세한 그분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2005년 4월 8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 수많은 신자들은 “즉시 성인으로!”(Santo subito!)로 외쳤으며, 2011년 5월 1일 시복(베네딕토 16세 교황), 2014년 4월 27일 시성(프란치스코 교황) 되었다.

 

같은 공간 로마에 살면서도 극심한 그분의 고통을 몰랐던 나는 참으로 죄송하고 불효를 저지른 듯하여 한동안 괴로웠다. 하느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다리’(Pontefice)로 함께해준 성 요한 바오로 2세를 알고 기억한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분이 평소 좋아했던 폴란드 전통 음식 ‘피에로기’를 오늘의 레시피로 정했다.

 

“저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어려운 시기에 여러분이 하느님의 자비와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에 자신을 맡기기를 권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레시피 : 피에로기(Pierogi, 폴란드식 전통 만두)

 

▲ 준비물 : 속 - 돼지 안심 125g, 닭가슴살 125g, 버터 25g, 당근 2분의 1개, 샐러리 10㎝ 정도 줄기, 파 10㎝ 정도 줄기, 양파 1개, 마늘 2쪽, 월계수 잎 2장, 소금, 후추.

반죽 - 중력 밀가루 100g, 물 30㎖, 올리브유 1작은술, 소금.

 

→ 모든 채소(양파와 마늘은 제외)는 잘게 썰어 고기와 함께 냄비에 넣고 월계수 잎과 함께 끓인다.

→ 어느 정도 고기가 익었을 때, 월계수 잎은 건지고, 삶은 재료를 체에 밭쳐 식혀 놓는다. 삶은 물은 체에 밭쳐 식혀 놓는다.

→ 식은 고기와 채소를 더 잘게 다진 다음, 소금과 후주로 피에로기 속의 맛을 낸다. 만약 속이 너무 뻑뻑하면 삶은 물을 조금 넣는다.

→ 버터에 잘게 다진 양파와 마늘을 노랗게 익힌 다음 소금을 넣고 식힌다.

→ 반죽의 모든 재료를 넣고 10분간 반죽한다.

→ 반죽을 3㎜ 정도의 두께로 민 다음, 지름 8㎝의 피에로기 피에 넉넉히 속을 채우고 반달 모양으로 접은 다음, 손끝으로 꼭꼭 눌러 만들어 놓는다.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2~3분간 삶아낸다.

→ 접시에 건져 놓은 피에로기 위에 마늘과 양파, 버터를 살짝 뿌려 얹는다.

 

▲ 모니카의 팁

 

피에로기 속은 찐 감자를 으깨어 만들어도 되고, 양배추를 삶아 잘게 썰어 양념하여 채워도 된다. 마늘과 양파에 버터 대신 올리브유를 쓰면 훨씬 라이트한 맛을 즐길 수 있다.

 

※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바티칸의 스위스 근위병 다비드 가이저(David Geisser)가 2015년에 낸 책 「부온 아페티토(Buon appetito)」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좋아하는 폴란드식 만두 피에로기(Pierogi)를 참고로 하였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9월 4일,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 대표)]



1,55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