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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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직장에서의 세족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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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15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79) 직장에서의 세족례

 

 

Q. 새내기 직장인입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가끔 신입사원 발을 닦아주는 이벤트가 있습니다. 성당에서 신부님들이 성 목요일에 신자분들 발을 닦아주는 것은 봤지만, 막상 직장에서 어른들이 제 발을 닦아 주겠다고 하니 왠지 당황스럽고 불편한 감정이 듭니다. 그분들 마음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제가 문제인가요? 아니면 사회에서 하는 발씻김예식이 문제일까요?

 

 

A. 자매님이 불편한 마음을 갖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사회에서 하는 발씻김예식과 교회에서 하는 예절은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수난의 길을 가시기 전 성 목요일에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다가 갑작스럽게 제자들 발을 씻겨주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본받아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도 성 목요일에 본당신부가 열두 분의 발을 씻어 드리는 발씻김예식을 거행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제자들 발을 씻겨주겠다고 하신 걸까요? 남의 발을 씻겨준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누가 나에게 발을 내밀면서 닦으라고 한다면 참으로 심한 모욕감을 느낄 것입니다. 왜냐면, 상대방이 나를 자기 발바닥의 때보다 못 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시대에는 주인 발을 닦아주는 사람들은 종살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다른 사람 발을 닦아준다는 것은 자신이 상대방의 하인처럼 살겠다는 언약의 표시라고 볼 수 있고, 주님께서는 그런 심정으로 제자들 발을 닦아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직장상사 중에 그런 마음으로 신입사원들을 대할 사람이 누가 있을지요.

 

오히려 ‘내가 이렇게 해줬으니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무의식적 요구가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의심이 가는 것입니다. 또 심리학에서는 발이 성적 감정을 표현하는 지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 여인들은 자기 남자 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발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중국 여인들은 전족을 해서 남자들 마음을 동하게 할 정도로 발을 성적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당에서 하는 발씻김예식도 구설수를 막으려 발씻김예식 대상자를 연세 높으신 분으로 하거나 남자 봉사자들로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에서도 발씻김예식은 여러 가지 것들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하는데, 일반 사회에서 신입사원들 특히 젊은 여인들 발을 나이 든 남자 어른들이 씻겨준다는 것은 취지는 공감하나, 동양적 관념을 무시한 채 행하는 이벤트성 행사로 보입니다. 그래서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더 드는 것입니다. 자매님이 불편한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차라리 발을 씻겨주는 이벤트성 행위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들에게 인생 선배이자 직장 선배로서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이 젊은 여인들 발을 닦다가 오해를 받거나 입방아에 오르는 것보다 더 나은 진정한 의미의 발씻김예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발씻김예식은 신앙생활을 함축한 행위입니다. 일반인들이 교회와 사회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질문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답이 있습니다만, 그중 하나는 서로 상대방 마음의 발을 보듬어주는 공동체 즉, 서로 헐뜯지 않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인들의 희생이란 남의 말을 하고 싶은 욕구를 절제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의 말을 안 하는 것이 뭐 그리 큰 희생이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사람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 특히 다른 사람 잘못을 지적하고 싶은 욕구가 큰 존재이기에 그 욕구를 절제하는 것이야말로 희생 중의 희생이며, 다른 사람 발을 닦아주는 것 이상의 봉사입니다.

 

어떤 신부가 죽어서 천당에 갔습니다. 그 신부는 생전에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했기에 자신이 천당에서 상당한 보상을 받을 것을 은근히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줄지어 서 있는 신부들과 면담을 하는데 무엇을 물어보시는 게 아니라 신부들 입 냄새를 맡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입 냄새가 심한 신부들을 보고서 얼굴을 찡그리시면서도 천당 보직은 아주 높은 것으로 발령을 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신부는 저 신부들이 저 정도라면 나는 아주 높은 자리겠구나 하고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하느님께서 입 냄새를 맡으시더니 “너는 천당 화장실 청소 책임자를 하거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힌 신부가 항의하자 하느님께서는 “저 아이는 입 냄새가 심할 정도로 남의 말을 하지 않아서 높은 보직을 줬지만 너는 일은 많이 했는데 남의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입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네가 하는 구린 말을 들어주는 고역을 치렀기에 너를 화장실 담당으로 임명했다”고 하셨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듯,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숨기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자기 문제를 숨기려고 하는데, 자기 것은 숨기려고 하면서 남의 것은 건드리려고 하는 것은 병적 심리이니, 다른 사람 발을 닦아주는 마음으로 남의 말을 하고 싶은 욕구를 절제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평화신문, 2010년 11월 28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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