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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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한국 순교 선조들 신앙 못자리는 성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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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24 ㅣ No.1486

한국 순교 선조들 신앙 못자리는 성가정


124위 순교 복자와 103위 성인 살펴보면 부부 · 형제 · 자녀 등 혈연관계 많아



“내 아들과 딸아…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고 어머니께 효의 도리를 다하는 데 힘을 쏟도록 하여라. 모든 사람을 상냥하게 사랑으로 대하고, 너희가 이 세상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면 너희는 당연히 천국에 오를 것이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다만, 그러나 아비가 자식들을 선(善)으로 독려하는 게 나쁠리는 없을 터이다. …옛 어른들의 지혜로운 격언을 마음 깊이 새겨, 비록 가벼운 잘못이라도 절대로 저지르지 말며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선이라도 항상 힘써 행하여라”(복자 이경언 바오로 ‘옥중 서간’ 중에서).

선교사 없이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여 교회를 시작한 것이 한국 천주교회의 큰 자랑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자랑스러운 것이 있다. 바로 성가정에서 순교자들을 배출하고 복자, 성인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124위 순교 복자와 103위 성인을 보면, 부모를 통해 신앙을 물려받은 이들이 가장 많고, 가족과 친척 등 혈연관계가 신앙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박해 시대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교우촌 중심으로 신자들끼리 혼인했기에 신자 간의 결속이 매우 돈독했다.

순교 복자 이경언 바오로(1792~1827) 집안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복자 이경도(가롤로)ㆍ이순이(루갈다)와 친남매다. 이들 세 남매의 어머니 안동 권씨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 5위에 속하는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ㆍ철신(암브로시오) 형제의 동생이고, 아버지 이윤하(마태오) 역시 한국 천주교 초기 공동체의 핵심 인물이었다. 이윤하와 안동 권씨 부부가 독실한 신자였기에 그 자식들 가운데 셋이나 순교 복자가 나올 수 있었다.

이순이의 남편 유중철(요한) 집안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유항검은 권일신에게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은 후 집안을 성가정으로 만들었으며, 자신은 물론 큰아들과 며느리인 유중철과 이순이 동정부부, 둘째아들 유문석, 동생 유관검, 그리고 부인 신희까지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유중철과 이순이가 동정부부로 맺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이순이의 외삼촌(권일신)과 유중철의 아버지(유항검)가 대부 대자 사이였다는 것과 무관치 않다.

그뿐 아니라 박해 시대에 가정 공동체로 신앙을 유지해온 순교 선조들은 매일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삼종기도, 아침ㆍ저녁 기도뿐 아니라 성경과 기도서를 읽고 외우며 주일과 축일의 의무를 충실히 지켰다고 전해진다. 가정 공동체의 이런 분위기가 순교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때로는 배교를 했다가도 다시 돌아오도록 하는 원천이 됐다고 관련 분야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방상근(석문 가롤로) 박사는 “박해 시대 신자 가정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신앙 교육이 행해졌나 하는 자세한 자료는 없으나 신앙의 지속성을 유지시켜 준 가정 교육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면서 “124위 순교 복자와 103위 순교 성인의 상당수 집안에서 3~4대에 걸쳐 순교자를 배출했고, 또 배교했다가도 다시 교회로 돌아온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신자들이 항상 아침ㆍ저녁 기도와 묵주 기도를 했다는 베르뇌 주교의 증언처럼 그 원천은 분명 가정 안에서의 기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가정이 위기에 처한 오늘의 상황에서 가정을 바로 세우고 또 가정이 집안 교회로 신앙 보금자리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가정 안에서 신앙 교육, 특히 기도 생활이 강화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이런 점에서 순교 복자와 성인들 삶을 새롭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03위 시성 추진 당시 청원인으로 활동했던 윤민구(수원교구 손골성지 담당) 신부는 “한국 교회처럼 공적으로 공경하는 복자와 성인이 가족과 혈연으로 얽혀 있는 예가 세계 교회 안에서 거의 없다”면서 “이는 오늘날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증명해 주는 귀감”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 종교 교육학자 토마스 그룸 교수도 강연회를 통해 “신앙의 씨앗을 뿌리는 곳은 결국 가정”이라면서 신자 부모들은 단지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녀들에게 꾸준히 신앙을 권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통해 가정을 성가정으로 가꿔야 한다는 것이다.

복자 정약용(아우구스티노)의 아들 정하상(바오로) 성인이 「상재상서」에서 한 고백을 200여 년 전의 낡은 이야기로 흘러버릴 수 없는 이유다.

“충효 두 글자는 만대가 흘러도 바꿀 수 없는 도입니다. 부모의 뜻과 몸을 봉양하는 것이 자식된 자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천주교의 가르침을 받은 자는 더욱 근신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섬길 때 예를 다하고 봉양할 때 힘을 다 바칩니다. 그 정성스러운 마음이 임금에게 옮겨가면 몸을 버려 목숨을 바치게 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피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십계명을 어기는 셈이 됩니다.”

[평화신문, 2015년 5월 24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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