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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정신의 병과 정신병, 그리고 마귀들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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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5 ㅣ No.93

정신의 병과 정신병, 그리고 마귀들림 (4)

 

 

2) 50대 중년의 여인(사람들은 마귀들린 여자 또는 미친 여자로 봄)과 40대 여인(사람들은 신이 내렸다고 이야기함) (『사목』 311호(2004.12.), 106-109면 참조)

 

(1)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 현상 식별의 세 가지 조건

 

가. 세 가지 기본적 인식의 틀

 

이제 이전에 예로 들었던 두 사건을 한데 모아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의 식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이 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필자가 그동안 신경증과 정신분열증의 차이점과 분별법을 설명하면서 사용했던 구조적인 틀을 이해하는 독자라면 여기서도 같은 방식이 서술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필자는 신경증과 정신분열증을 식별할 때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서술했다. 곧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몇 가지 뚜렷한 증상을 찾아볼 수 있다 하더라도 일단 ① 섣부른 판단의 배제, ② 가능성의 정도에 따른 진단, ③ 고정관념과 편견에 따른 편파적 판단의 배제라는 기본적인 인식의 틀을 유지해야 하며, 이에 따라 “~`정도 정신분열 증상이 엿보인다.”라든지 “정신분열 증세가 심하게 보인다.” 등의 표현을 조심스럽게 할 수는 있지만,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다.”라는 식으로 단언하는 것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1) 이것은 어떤 정신이상 증상에 대해 아무리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진단을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오류의 가능성이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여 최대한 오류를 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소한도의 학문적인 객관성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다. 

 

이제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에 관한 식별에서도 이러한 기본적인 세 가지의 자세가 요구된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과학적으로 아직 규명되지 않은 정신의 진단을 내리기도 이처럼 어려운데, 하물며 영적인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과학 이상의 다른 차원의 도움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가능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영에 관한 세계는 과학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사실 이렇다 저렇다 할 과학적 진단의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무지가 판단의 모든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영적인 세계에 관한 모든 판단은 신중하고 겸손해야 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판단 중지를 요청한다고도 할 수 있다. 

 

나. ‘판정(conclusion)’이 아닌 ‘배제(exclusion)’를 통한 식별 

 

그럼에도 정신분열증 환자와 마귀들린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인식의 구분점을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영의 세계를 명확히 알 수 있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적어도 정신분열증에 대한 축적된 과학적 지식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곧 마귀의 장난이나 귀신들린 사람에 대한 과학적 진단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현상이 마귀의 장난이라고 명확히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신분열증의 경우는 어느 정도 그 증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진단을 위한 축적된 지식들과 임상 경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정신분열 증상과는 전혀 다른 어떤 초월적 현상을 정신분열증과 분리해 내면서 그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는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두 대상을 명확히 이해하여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한 현상(정신분열증)에 대한 나름대로의 객관적 이해를 바탕으로 아직 이해되지 않은 다른 현상(악령의 세력)을 구별해 나가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다. 원인적 접근

 

위의 두 가지 조건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나 증상만 가지고는 정신의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식별하는 것이 절대 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따라서 하느님께 영의 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초자연적 은총을 받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나마 영의 세계를 식별하려면 그 최소한의 조건을 증상적 접근 또는 현상적 접근이 아닌 원인적 접근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곧 겉으로 드러난 증상과 현상을 가지고 진단이나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에 대해 추론하면서 계속해서 탐험해 나가는 가운데 최소한도의 식별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2) 구체적인 식별의 시도

 

가.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의 유사성 인식

 

앞서 설명한 대로 “악령의 작용이다.”, “마귀의 장난이다.”, “귀신이 들렸다.”라고 말할 때에는 사실 상당히 신중해야 하며, 어느 면에서는 판단을 아예 유보하거나 중지하는 편이 낫다. 왜냐하면 이렇게 판단해서 얻어지는 유익보다는 그에 따른 피해가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 심지어는 그렇게 판단하는 사람에게까지 고루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귀신들림의 상태는 특정한 정신분열 증상과 비슷한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비전문가가 그 차이를 알아내기가 어렵다는 것도 이러한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어떤 사람이 귀신들렸다고 하면 그 사람과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행동하고, 인성(人性)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상황을 상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는 ‘다중 인격 장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들이다. 다중 인격 장애가 있는 환자는 자신 안에 수많은 인격체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여러 다른 사람들의 독특한 특징이 특정 환경과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곧 어느 시점이 되면 전혀 다른 목소리와 행동적 특징이 나타나서 언뜻 다른 사람이 볼 때 완전히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보일 가능성이 아주 큰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혀 다른 인격체가 어떤 사람 안에서 발견되는 상황에서 그가 다중 인격 장애자인지 아니면 마귀가 들린 사람인지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논리는 실제로 마귀들린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예를 들면 실제로 마귀들린 사람의 경우에도 정신과 의사들은 이를 단순히 다중 인격 장애로 취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의 상이성 인식

 

아무리 정신이상 증세에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의 차이를 드러내 주지 못하는 애매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현상은 명백히 마귀들림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꽤 오래전에 출판된 고(故) 오기선 신부님의 자서전에는 마귀들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명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부님이 이 여인을 위해 기도하러 집에 찾아가셨을 때, 이미 이 여인은 자신을 해치려고 신부님이 오고 있음을 보지 않고도 알고 있었다. 이 여인은 사제의 기도를 받지 않으려는 의도인지 높은 선반 위로 몸을 날려 올라갔으며, 그곳에 비스듬히 누워서 신부님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그래도 신부님이 방에 들어가시려고 하니 이 여인은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고, 그 피를 신부님 앞에 선을 그리듯 흩뿌렸다. 그러면서 그 핏자국 너머로 한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자신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신부님은 도저히 평범한 여인에게서 들을 수 없는 그 소름 돋는 목소리의 협박에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신부님은 이 여인은 분명 마귀가 들렸음을 알 수 있었고, 또한 마귀가 자신에게 해코지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결국 돌아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한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 초자연적인 힘과 움직임, 영적인 투시력과 예언력 또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과 같은 능력을 보이면서 그 행동들이 악하고 파괴적으로 작용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마귀들림에 대한 절대적 분별점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김진, 『정신분열증에 대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 뜨인돌, 2002년, 180-187면 참조).

 

① 초능력을 동반한다 

 

이는 보통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든지(마태 8,28-34; 사도 19,11-17 참조) 아니면 예지나 예시 또는 배우지 않은 언어를 말한다든지(사도 16,16-19 참조) 하는 등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말한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분명 이러한 초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② 영적인 민감성을 보인다

 

영적인 민감성은 영에 관련된 물질에 대한 반응을 말한다. 곧 성수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든지 십자가나 성호경 기도문에 강하게 적대 반응을 보이는 경우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정신분열증 환자는 이러한 과민 적대 반응을 보이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평소에 종교나 영에 대한 콤플렉스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종교적 상징물에 대한 거부감이 배어있을 수 있고 이것이 과민 적대 반응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③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이것은 다중 인격 장애와 비슷한 증상이다. 하지만 좀 더 엄밀히 구별한다면 다중 인격 장애는 몇 개의 다중 인격이 한 시점에서 동시에 공존하며 드러나지는 않는다. 다중 인격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독립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2) 하지만 귀신들린 사람은 자신 안에 동시에 또 다른 인격체가 말을 하거나 행동을 지시하는 것을 느낀다. 곧 한 시점에서 원래의 자기가 아닌 다른 존재가 활동하고 있음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④ 약물로 치료가 안 된다

 

정신분열증은 분명 약물로 치료 효과가 나타나고 상태가 호전되지만 마귀들린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다는 것도 분별을 위한 기준이 된다. 오늘날에는 과학의 발달로 거의 모든 정신과 질환에 대해 실제로 반응하는 약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효과가 나타나는 속도와 증상이 호전되는 상태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거의 모든 증상에 대해 약물치료는 그 효능을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약물로 도저히 증상의 개선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초자연적인 증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⑤ 증상의 발현과 치유가 갑작스럽게 발생한다

 

정신분열증은 발병 시기를 분석할 수 있을 만큼 그 증상이 매우 점진적이며 대개 1-2년의 잠복기를 거친 뒤 표면화된다. 물론 가족이 보아서 얼른 어떤 현상이 정신분열 증상의 시초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이전에 필자가 정신분열의 음성 증상에 대해 서술했던 것을 참조하면 어느 정도 쉽게 그 발병 시기를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마귀들림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또한 회복의 과정에서도 정신분열증은 서서히 단계를 거쳐 증상의 완화를 보일 뿐 결코 갑자기 없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귀에 걸린 사람에게 마귀가 나갔다면 곧바로 정상인이 될 것이다.

 

한편 증상 면에서도 같은 경우가 발생한다. 갑작스럽게 악령에 사로잡히는 것은 갑작스런 정신이상 현상을 동반하지만, 제정신으로 돌아와서는 이러한 정신이상 증상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단, 여기서도 주의해야 할 점은 갑작스런 증상의 발현과 소멸은 ‘단기 반응성 정신분열증’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단기 반응성 정신분열증은 극도의 심리적 충격으로 일시적으로 찾아올 수 있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할 환자가 마귀들린 사람으로 오인된다면 이처럼 불행한 사태도 없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세 가지 기본적 인식의 틀, 곧 섣부른 판단의 배제, 가능성의 정도에 따른 진단 그리고 고정관념과 편견에 따른 편파적 판단의 배제라는 기준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다. 종합적 식별

 

앞에서 언급한 정신분열과 마귀들림의 유사성과 상이성에 대한 인식을 통해 우리는 이 두 영역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실제적인 목적은 이 두 영역을 명확히 식별하는 데에 있지 않고 간혹 잘못 식별하여 드러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이는 데 있다고 하겠다. 세상에는 분명히 마귀들린 사람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인식되는 많은 경우가 실제로는 그러하지 않을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마귀들림과 정신분열증을 명확히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란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입은 사람(1고린 12,10)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식별의 자세를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 ① 일단 증상이 어떻든 간에 누가 마귀들렸다고 단언하면 안 된다(조건 가). ② 그러고 난 뒤 혹시 그가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는지를 확인하고 그러한 증상이 확인되면 일단 마귀들린 사람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사용한다(조건 나). ③ 마지막으로 도대체 왜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보이게 되는 것인지를 추론해 나가는 원인론적 접근 방식을 쓴다(조건 다 : 곧 그 원인이 뇌의 이상에 있는지, 심리적인 충격에 있는지, 아니면 약물이나 기타 물질 남용에 있는지를 밝혀감). 

 

[사목, 2005년 3월호, 박현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본지 주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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