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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1: 사랑과 생명의 터전, 가정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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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03 ㅣ No.1105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 (1) 사랑과 생명의 터전, 가정공동체


사랑과 생명으로 세워진 가정의 본질은 일맥상통

 

 

이번 호부터 김문태 교수의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을 연재합니다. 오늘날에도 그 가치가 빛나는 우리나라와 동양의 전통 문화를 바탕으로, 보다 올바른 가정 공동체의 모습을 제시하는 장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대학』)

 

가족과 가정공동체의 소중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동양의 금과옥조다. 나를 갈고 닦아 가족들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고 원만한 가정공동체를 이룰 때,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원대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가정공동체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가장 먼저 접하는 사회이자 보다 넓은 공동체로 발전하고 성장해나가는 시발점인 것이다. 사랑도 가족애부터 시작해야 이웃사랑, 조국애, 인류애로 점차 확산될 수 있다. 살을 맞대고 사는 가족 간에 사랑을 주고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어찌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미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족과 가정공동체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소중하게 여겨져 왔다. 

 

입양과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견지에서 볼 때, 가족과 가정공동체는 남녀가 사랑으로 결합함으로써 탄생한다. 부부의 사랑으로 인하여 생명을 주고받은 부모와 자식, 그 생명을 나누어 가진 형제자매가 탄생해 가정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가정공동체는 창조주의 협력자인 부부가 사랑으로써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지성소이자 자녀를 양육하는 못자리이다. 이처럼 생명을 공유한 가정공동체의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는 어떤 관계인가. 

 

동양에서는 가족 관계를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이자 윤리라 칭했다. 부부유별, 부자유친, 장유유서, 형제우애 등 가족 간에 지켜야 할 덕목들이 그러하다. 오죽하면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환과고독(鰥寡孤獨)이라 지목했을까. 환은 늙고 아내가 없는 사람, 과는 늙고 남편이 없는 사람, 고는 어리고 부모가 없는 사람, 독은 늙고 자식이 없는 사람이다. 즉 가족의 일부가 없어 원만한 가정공동체를 유지하지 못해 서로 의지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이들이 가장 가련하다는 것이다. 가족과 가정공동체의 소중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 위에 세워진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친교에서 태어난다.’(「사목헌장」48항)는 교회의 가르침은 전통적인 가정공동체에 대한 관념과 다르지 않다.가톨릭신문자료사진아울러 가족과 가정공동체는 중요한 순간마다 의례를 치러 관심과 사랑을 통해 결속력을 다져왔다. 아놀드 반 게넵이라는 프랑스의 인류학자는 이를 통과의례(通過儀禮)라 명명했다. 나이와 직위에 따라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통과할 때 특별한 행위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과의례는 예로부터 관혼상제뿐만 아니라 탄생과 이주 때에도 행해져왔다. 이를 통해 가족 간에 깊은 관심과 뜨거운 애정을 각인하는 한편, 끈끈하고도 단단한 결속력을 지닌 가정공동체를 유지해왔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가족과 가정공동체의 현실은 어떠한가. 수렵농경 시대에서 산업정보화 시대로 발전하면서 과거처럼 집단적이고 협업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단독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거주 형태 역시 대가족이 아닌 핵가족,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단독가구 내지 일인가구의 형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자연히 가족 간의 밀착된 관계에 틈이 생기고, 가정공동체의 끈끈한 연대가 약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이에 전통적으로 가정공동체에서 이루어지던 출산의례, 성인식, 혼인식, 이주의례, 장례식, 제사 등과 같은 의례가 소략해지고 말았다. 따라서 통과의례를 통해 새 사람으로 거듭나거나 새로운 삶으로 진입하는 계기도 사라져 버렸다. 뿐만 아니라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혼과 낙태와 자살은 증가하고 있어 가족과 가정공동체의 의미가 퇴색을 넘어 소멸의 위기에 처했다. 강력범죄의 70%가 이혼, 가정폭력, 무관심, 과잉보호, 빈곤 등 가족과 가정공동체의 위기로부터 발생하는 ‘홈 메이드 크리미널(Home Made Criminal)’이라는 보고는 문제의 심각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가족과 가정공동체가 생명의 문화가 아닌 죽음의 문화에 경도되고 있는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의미가 오늘도 새로운 까닭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땅의 전통문화로 굳건히 자리매김해온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 생명으로 이루어진 가정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오늘날 가톨릭 가정의 바람직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이 빚은 고귀한 생명체이자 하느님을 닮은 존엄한 인격체인 가족이 서로를 독립적 인격체로서 존중하며 사랑의 관계를 맺어가는 한편, 가톨릭의 전례뿐만 아니라 삶의 중요한 순간에 치러지던 전통의례를 통해 거듭 나고자 하는 온전한 가톨릭 가정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다.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 위에 세워진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친교에서 태어난다.’(「사목헌장」 48항)는 교회의 가르침이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과 가정공동체에 대한 관념과 다르지 않다. 가톨릭의 토착화 측면에서 바람직한 가톨릭 가정의 모습을 전통적인 가정과 비교하여 되새기고자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문태 교수(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현장과 강단에서 고전문학과 구비문학을 연구해왔으며, 중국선교답사기인 「둥베이는 말한다」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가톨릭신문, 2018년 7월 1일, 김문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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