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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영성의 바탕 (4) 성인 공경과 순교자 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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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10 ㅣ No.1974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영성의 바탕 (4) 성인 공경과 순교자 신심

 

 

성인 공경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성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해주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양업 신부는 특히 어려움과 곤경 속에서 성인들에게 기도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는 1849년 5월 중국에서 해로를 통해 조선 귀국을 시도하던 중 하느님의 섭리에 온전히 의탁하면서 동시에 모든 성인 성녀께 도움을 간청했다.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단 한 사람의 죄인의 회개나 어떤 특별한 은총을 얻기 위하여 10년, 20년, 30년, 40년 또는 더 오랜 세월 동안, 열렬한 기도와 크나큰 희생과 힘들고 지루한 극기와 보속을 하느님께 바치셨습니까? 참으로 이러한 모범을 묵상하는 때에 저는 어떤 정신으로 고무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최양업 신부는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특별히 전교의 모범을 보여주신 성인들에게 기도하고 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하였다. 1859년에 교우촌을 방문해서 신자들이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오! 만일 또 한 사람의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이나 베르나르도 성인이 여기에 나타나신다면, 저렇게도 빈궁한 이들한테서 얼마나 큰 열정으로 환영받을 것이겠습니까!”

 

최양업 신부는 사목 활동 중에 신자들에게 나누어 줄 사도들과 초대 교회 성인들의 성패와 상본들을 보내 주도록 스승 신부들에게 청하였다. 이는 그가 성인 공경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신자들에게 다양한 성인 신심을 가르치고 장려하였음을 보여준다.

 

최양업 신부는 순교자들에 대해서도 특별한 공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교우촌을 방문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순교자들의 행적과 증언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조선 교회의 순교자들로부터 굳은 믿음과 용기를 본받기를 원했다. 그는 1844년 중국에서 조선 교회의 박해와 신자들의 순교 소식을 듣고 이렇게 썼다.

 

“저는 우리 부모들과 형제들을 따라갈 공훈을 세우지 못하였으니 저의 신세는 참으로 딱합니다. 그리스도 용사들의 그처럼 장렬한 전쟁에 저는 참여하지 못하였으니 말입니다. 정말 저는 부끄럽습니다. 이렇듯이 훌륭한 내 동포들이며, 이렇듯이 용감한 내 겨레인데, 저는 아직도 너무나 연약하고 미숙함 속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참조

조규식, 「최양업 신부의 영성」, 『교회사연구』 14, 한국교회사 연구소, 1999.

여진천, 「최양업 신부의 삶과 영성」,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회, 2006.

양업교회사연구소,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서한집」, 2018.

 

[2021년 5월 9일 부활 제6주일 의정부주보 3면,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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